[기획] 정재은 감독이 직접 밝히는 <말하는 건축가> 제작 풀스토리 ①

2012-03-05 16:27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말하는 건축가>는 건축과 건축가를 다룬 한국 최초의 극장용 건축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을 다룬 휴먼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대장암 판정을 받은 정기용의 마지막 1년 여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죽음을 현실적으로 대면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의연한 태도를 담는다. <고양이를 부탁해> <태풍태양>의 정재은 감독이 오랫동안 국내 건축문화의 중심부에서 활동해온 정기용과의 첫 만남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일어났던 일들을 글로 옮겼다. (정재은 감독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원문 그대로 올린다.)

첫 만남_ 나는 오랫동안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간 내 영화에도 건축이나 도시 공간은 하나의 중요한 모티프였다. 2009년 서울에서 열린 건축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면서 건축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가운데, 주인공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을 접촉할까 알아보던 중 정기용 선생님을 추천 받고 그의 책인 <감응의 건축>을 읽은 뒤 무주 프로젝트를 둘러보러 갔다. 무주의 공공건축은 그간 내가 생각했던 건축과 매우 달랐다. 대개 멋있고 화려한 빌딩을 짓거나 유니크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건축이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의 작업은 좀 평범하고 보잘것없었다. 대체 이 건축가는 왜 이런 일을 그토록 열심히 했는가.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2009년 12월 말 처음 정기용 선생님을 만났다. 안국동의 선생님 단골집에 밥을 먹으러 가서 “이런저런 이유로 당신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건축에 관심이 많고 건축가에 대한 다큐를 찍어보고 싶고 무주도 다녀왔는데 영화로 찍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은 한참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네가 계속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냐, 그것 참 재미있겠다.” 그러면서 쉽게 오케이를 하셨다. 정기용 선생님은 어떤 기회든 건축가의 삶과 생각을 대중들과 일반인에게 전할 기회가 되면 마다 않고 실천하던 사람이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취재가 시작되었다. 두세 달 정도 매주 수요일에 선생님의 회사인 ‘기용건축’에 놀러 갔다. 선생님을 만나면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번에 한두 시간 정도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건축 경험도 이야기하고 했다.어떤 소재와 주제로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를 택하고 싶었다. 한 사람의 건축가는 어떻게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을 완성해 나가는가? 처음 접한 것은 소격동 한옥 프로젝트였다. 오래된 소격동의 한옥을 리모델링하고 새로 재건축하는 작업에 정기용 선생님이 참여하게 되었다.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조성룡 건축가와 정기용 선생님의 산책 장면이 바로 그 시기에 촬영한 것이다. 한데 두 번 정도 촬영했을 때 선생님이 말했다. “여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분관이 들어오는 자리 옆인데, 그러면 땅의 조건과 상황이 많이 바뀔 것이다. 그 이후에 이 한옥을 어떤 집으로 만들 것인가를 결정해도 될 거다.”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가 연기되었다. 애초의 내 의도대로 작품을 찍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나와 선생님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기용건축_ 서울 삼청동의 한 건물에 ‘조성룡도시건축’과 ‘기용건축’이 나란히 세 들어 있다. 기용건축은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설계사무소다.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씩 선생님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기용건축을 유지하고 있다. 기용건축은 일반적인 커다란 설계사무소가 아니라 아뜰리에 스튜디오인 만큼 정기용 선생님을 중심으로 그의 건축세계를 흠모하는 젊은 친구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직원은 10여 명 정도였다. 정기용 선생님의 제자이면서 30년 가까이 함께 일해온 김병옥 소장(영화 속 대전청사 설계경기 작업 영상 자료에도 김병옥 소장이 등장한다), 무주 프로젝트만 십여 년 했던 한동훈 실장 등이 선생님의 팔다리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서울 구로구 항동 아파트 프로젝트, 김해 기적의 도서관, 그리고 김해 故 노무현 대통령 추모관 등의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기용건축에서 인상적인 것은 방대한 자료들이었다. 기용건축 지하 창고에 선생님이 197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모아왔던 자료, 건축 도면, 사회 활동에 대한 보고서, 스케치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 가운데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을 선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정리가 안 되어 있다. 일민미술관의 정기용 건축전 이후,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자료들을 아카이빙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최초로 건축 아카이빙 대상으로 선정한 건축가가 바로 정기용이다.

사실 나는 극영화만 만들다가 다큐멘터리 작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작 단계에서는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면 찍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너무 촬영을 많이 못했다. 독립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만큼 제작비가 없고 카메라를 아무리 싸게 빌려도 진행비에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촬영을 많이 안 하면서 중요한 이벤트 중심으로 영화를 찍어나갔다. 2010년 초여름까지만 해도 영화의 메인 플롯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무주_ 2010년 봄, 선생님이 부산시 공무원과 함께 무주 공공 프로젝트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에 가신다고 해서 함께 촬영을 갔다. 무주에 온 부산 공무원들을 선생님이 안내하는 과정을 찍었다. 그때 선생님은 건축가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설치된 안성면 사무소 태양열 집열판을 처음 발견하고 웃고 말았다. 하지만 등나무 운동장에도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된 것을 보고는 격렬하게 화를 냈다. 그리고는 이후 답사 스케줄을 모두 접었다. 당시 나와 선생님의 관계가 많이 진전되었기 때문에 선생님한테 “화를 필요 이상으로 내시는 거 아니냐.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게 화를 내면 같이 간 사람들이 민망해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선생님께서 한참 생각하시더니 “그렇지. 아직은 이런 걸로 화를 내면 안 되지”라고 답했다. 몇 군데를 더 돌아다니셨지만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셨다.

이 일은 인간이 자기의 화를 사람들 앞에 격렬하게 표현한다는 것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맥락에서는 누군가 화가 나더라도 이를 감추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반응은 선생님의 멋있는 점이 아닌가 한다. 인간이 화를 내고 분노한다는 것, 정확히 자기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데, 그렇게 화를 낸다는 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자기가 한 것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격렬하게 자신의 감정과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선생님이 가진 가장 중요한 면모였다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는 게 멋있을 수도 있다.

당시 부산시 공무원들의 답사에서는 무주 추모의 집, 부남면 천문대, 향토박물관 등을 함께 돌아보았다. 화가 많이 나신 선생님을 보내고 나서 따로 찍은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무주 프로젝트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추모의 집’이었다. 이곳은 산꼭대기에 있는 납골당인데, 좀더 높이 올라가서 보면 한국의 산하와 자연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그 지역의 인삼밭을 모티브로 해서 마감한 지붕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어디든 좋아하는 공간에 가면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추모의 집에서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휴식과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공간. ‘추모의 집’이야말로 선생님을 많이 표현해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실상사_ 2010년 초여름 어느 날 선생님이 촬영을 그만하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했다.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너무 건강이 안 좋다, 대장암 수술을 한 지 5년이 되었는데, 보통 환자들은 5년째에 완쾌하거나 병이 더 깊어지는데 내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영화를 같이 하다가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냐, 그만하면 어떠냐”고 했다. 그때 난 “그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라고 얘기했다. “선생님의 건강이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그것도 영화의 과정이고 만일 영화가 완성된다면 그것도 포용해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지리산 실상사를 리모델링하기로 했는데 그걸 찍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실상사를 취재하고 불교 건축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왜 사찰 건축은 현대화가 되지 않았는가. 절이라는 게 결국 일반 대중들에게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를 공부하면서 실상사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상사에서는 ‘100년 내다보는 불사(불교건축을 불사라고 한다)를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늘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교수, 조성룡 건축가, 불교건축의 거두들이 세미나를 계속하면서 몇 개월을 세미나만 계속 찍었다. 이래서야 언제 건축 다큐멘터리를 만드나 회의에 빠져 있었는데,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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