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이정재 ② “딱 한 번 웃는다”

2015-07-29 15:31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암살> 이정재 ① 그릴 수 없는 얼굴에서 이어집니다 (클릭)

<암살>에 캐스팅 된 걸 “선택을 당했다”고 표현했던데. 사실 그게 맞으니까. 일단 최동훈 감독이 먼저 염석진이라는 역할에 나를 선택해야 내가 시나리오를 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최동훈 감독이 이 영화의 중심에 서서 사건을 쥐고 흔드는 염석진 역할에 ‘이정재’라는 배우를 떠올린 건 무슨 이유였을까? 감독에게는 배우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서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김윤석이라는 배우가 있다면 순정 멜로 연기를 시켜보고 싶다든가, 나 같은 배우가 악역을 맡아 주었으면 한다든가. 이정재하면 정갈하고 댄디한 이미지를 보통 생각하지 않나. 감독들은 그걸 깨서 숨어있는 다른 면을 보여주는 일을,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 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거다.

배우에게는 그런 욕구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내가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한 색깔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 그게 만나야 한다. 염석진은 악역이기 때문에 매력을 느꼈다기보다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2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등장해서 나이대만 바뀌는 게 아니라 한 남자의 극단적인 삶도 보여줘야 한다. 처한 상황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전해 볼 만한 역할이었다.악역이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았나. 촬영장에서 외롭기도 했을 것 같은데. 외롭지는 않았다. 컷 사인이 떨어지면 다 함께 모여서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울 사람은 담배 피우고 하니까.(웃음) 물론 부담은 있었다. 독립군 중 나만 비밀이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홀로 상대하면서 각각에 맞게 에너지를 뿜어내야만 했다. 외양으로 더 강인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고, 저음의 위협적인 목소리를 쓰면서 힘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쳤다. 대사 한 마디를 하더라도 상대방을 제압하고 긴장시킬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시종일관 힘을 주는 인물이라 ‘염석진이 살면서 과연 웃었던 적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후배 독립군들을 목욕시키는 장면에서 딱 한 번 웃는다.

“대사 한 마디를 하더라도 상대방을 제압하고 긴장시킬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에 극도로 집중하며 연기했다.”

그런 염석진에게 연민이 들기도 했을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염석진은 분명히 악인이라는 거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악인이다. 독립운동가였는데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에 신념을 포기하고 가장 초라한 자신과 직면한 뒤 밀정이 된 것 아닌가. 밀정이 된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다. 밀정임을 포기하는 순간 정체가 독립군 쪽에 밝혀지고, 독립군에게 죽게 된다. 죽음 앞에서 비굴해진 다음의 선택을 돌이킬 수 없는 거다. 그런 부분이 측은하게 느껴지는 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한 모든 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벌을 받는 게 맞다.

염석진이 극악무도한 악인으로만 느껴지지 않은 건 이정재가 연기해서가 아닐까. 악보다는 변질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였다. 염석진은 신념과 바꾼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1순위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구하려고 한다. 막판 총격 장면에서 당장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머리를 넘기는 장면이 있다. 나름대로 짧은 순간에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어떻게 제압할까’ 고민하는 것이다.

<암살>은 결국 ‘잊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모두 그 목적어가 이름 없이 사라져간 독립군이라고 생각하지만, 염석진을 잊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적은 외부의 적만이 아니다. 염석진은 내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암살>을 준비하면서 많은 자료를 찾아봤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조선에서 독립 자금을 만들어서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로 보낼 때, 돈의 1/100도 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일본군을 습격할 전투 계획을 세워 매복해있는데 무기가 도착하지 않아서 전투에서 지고. 중간에 누군가 돈을 가로채는 것이다. 염석진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로 인해 독립이 늦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들 또한 기억해야 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기 위해서.

그런 연기를 하면서 미움을 받을까 하는 염려는 없었나? 악역은 미움을 받아야 잘 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으니까. 뭐가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미움을 안 받으면 “내가 연기를 이상하게 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우가 미움을 덜 받을 여지를 두고 연기를 했다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되니까. 그런데 또 “이정재 너무 싫다”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서운할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언론 시사가 끝나고 나서 기자들은 사실 ‘이 역할이 이랬고, 이걸 이정재가 어떻게 소화했나’를 중심으로 보니까 인물 자체에 대한 반응은 모르겠다. 그래서 관객은 이정재가 연기한 염석진을 어떻게 볼지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된다.

그래도 말 그대로 나라를 팔아 먹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이 있지 않은가. 그럼. 강인국이 진짜 나쁘지. 그런데 이런 걸로 위안을 삼아야 되나? (웃음)

윤이나(영화 칼럼니스트)<암살> 이정재 ① 그릴 수 없는 얼굴에서 이어집니다 (클릭)

※ 7월 18일(토) 발행된 <맥스무비 매거진> 8월호에서 <암살> 이정재 인터뷰 기사 전문과 화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 maxpress@maxmovie.com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 maxpress@maxmovie.com
<저작권자(c) 맥스무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0/ 500
      사업자등록번호 211-88-91225 l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제2016-서울강남-02630호 l 대표이사 정이은
      ㈜맥스무비 l 06099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25길 8, 301호(논현동, 유진빌딩)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 02730 | 등록일자 2013년 7월 11일 | 제호 맥스무비 닷컴 | 발행인 : 정이은ㅣ편집인 : 이은지

      Copyright ⓒ Asiatribune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