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님은 먼곳에> 이준익 감독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

2008-07-28 13:17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맥스무비= 맥스무비취재팀 기자]

<님은 먼곳에>는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하지만 음악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다. 이준익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정공법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갈등과 화해를 갈무리하는 극적인 구조를 갖췄지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스타일을 애써 뽐내지 않으면서 힘 있게 밀어붙이는 뚝심이야말로 이준익 감독이 만든 영화가 지닌 힘일 것이다.

상업영화에 있어 제작비를 맞추는 건 중요하다

“1년 전 인터넷에 뜬 베트남전 당시 한 여가수의 위문공연 사진을 보고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그이지만, 정작 크랭크인하기 전까지는 손에 땀을 쥐며 촌각을 다툰다. 돈 없이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는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법을 몸으로 체득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제작비를 초과하지 않았다. 촬영하면서 생길 수 있는 변수까지 계산하고 촬영에 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상업 영화에 있어 제작비를 맞추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70억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 돈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찍기 전부터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

달변가인 이준익 감독과 이야기하면서, <님은 먼곳에>에서 그가 보여준 재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그는 정식으로 영화를 배워본 적이 없다. 외화 수입 일을 할 때 수천 편의 영화를 본 게 전부다. 영어 실력이 남들보다 좋지 않았던 그는 그 때 영화를 보면서 신과 커트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다른 사람들보다 영화를 더 많이 이해하고 분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난 영화를 통해 영화를 배웠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관객을 길들이고 마비시키기 위해 수천 컷을 사용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감독이라면 어느 정도의 책임감과 사명감은 필수라고 말했다. “내가 만든 영화에는 디렉터스 컷이 따로 없다. 찍은 대로 붙이기만 하면 편집이 끝난다. 이번 영화의 경우 편집 시간이 8시간밖에 안 걸렸다(웃음).” 인터뷰 내내 그의 말투는 단호했고 전달력은 완벽에 가까웠다. “내가 갖고 있는 아이템은 대부분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다. 아무도 관심이 갖지 않는 인문학에서 나는 영화에 쓸 소재를 찾아낸다. 인문학은 나에게 있어 ‘로또’다.”

베트남 전쟁을 탈이데올로기 관점에서 풀어내다

직접 캐스팅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순이’ 역을 맡은 수애의 연기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순이 역을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다. 그녀에게서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고민하는 내면의 감정선이 얼굴에 드러나 있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순이는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는 상황을 설명한 뒤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연기는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고, 배우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들의 진심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내가 썼던 대사의 진짜 의미를 깨닫는다”는 그의 고백은 진심이었다. “인물 중심으로 보게 되면 비약이 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준익의 공식적인 이력을 들춰보면 한 번도 편하게 영화를 만들었던 적이 없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의 큰 성공으로 그 동안 영화 수입 일을 하면서 진 빚을 다 갚았지만 그는 여전히 영화를 '치열하게' 찍는다. 영화에 필요 없는 장면은 아예 찍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영화 일은 목숨 걸고 하는 일이자 운명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상의 결말은 지금과 같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이야기를 어디에서 마쳐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다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대신 시나리오에는 에필로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결말에서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표현했기 때문에 에필로그는 촬영하지 않았다.”

영화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다. <님은 먼곳에>는 그의 어떤 작품보다도 대중적인 어법과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영화에는 그의 모습만큼이나 억지스럽고 화려한 포장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작품마다 분위기는 달라도, 이준익 감독의 시선은 언제나 보통 사람들을 향해 있다. “전작들에는 남성성을 정당화하는 일종의 비겁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비겁함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남자들이 쓰는 전쟁영화는 베트남군과 한국군 각자의 극명한 대립만을 부각시키지만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 똑 같은 전쟁터 속의 군인일 뿐이다.”이준익 감독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의 영화에 배어있는 '진정성'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기류를 정확하게 포착해 밀도 있게 영상에 담아냈다. 영화는 순이라는 한 여성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인류가 아직 안 망한 건 여성성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여성성이 있는 허스토리(Her-Story)가 존중 받아야 할 시대다. 이 영화에 사용된 많은 노래들은 여성성이 이데올로기를 무화시키는 시선임을 주장하고자 하는 은유적 의미가 내포돼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마지막으로 부딪친 베트남 전쟁을 탈이데올로기 관점에서 풀어내고 싶었다.” 여성성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님은 먼곳에>는 남편을 찾기 위해 베트남 격전지를 떠난 한 여자 순이의 여정을 따라간다. 처음으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에서 그는 높고 낮음이 없는 일관된 톤으로 이끌어 나간다. 대사들은 간결하고 경제적이며 불필요한 수식이 없다. 마지막 장면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주제가 모든 함축되어 있다고 밝힌 그는 “전쟁, 이데올로기 등이 여성성 앞에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님은 먼곳에>는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비교적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에 풍성한 가지를 다는 것은 배우들의 몫이었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게서 진심의 손길을 거둘 수 없었던 감독의 애정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사랑하지도 않는 것 같은 남편을 찾아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베트남 격전지까지 가는 순이의 행동은 ‘수애’라는 배우를 만나 설득력을 얻는다. “남편을 찾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난 여성의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더 크고 근원적인 관계를 끌어들여야만 했다. ‘순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성의 위대함'을 끌어낸 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영화로 치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는 있다. 화면은 천천히 전개되지만 이야기의 살은 풍부하다. 갖은 우여곡절을 거쳐 상길을 만나게 된 순이는 말없이 그의 따귀를 때린다. <님은 먼곳에>는 엔딩 장면에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비축해둔 영화다. 그렇다고 오직 마지막 순간만을 위해 달려가는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구구절절 엔딩 신의 가치를 역설하는 까닭은 이 지점에서 이준익 감독이 말하고자 한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스크린 밖의 못난 남성들이 그녀의 행동을 보고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결말,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다. “사랑의 끝에 있는 것은 용서야. 반성한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영화 속 남자들은 순이를 통해 구원받게 된다.”

볼 때마다 새로운 점이 보이는 영화다

<즐거운 인생>을 끝내고 그가 하고 싶었던 작품은 정진영이 주연을 맡기로 한 <매혹>(가제>이었다. 하지만 제작비를 구하기 싶지 않았다. 그래서 깨끗하게 마음을 접고 포기했다. 어느덧 여섯 번째 작품에 이르게 된 이준익 감독, 그는 인터뷰 중에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속내를 슬쩍 내비치기도 했다.

감독에게는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가 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유일한 단어가 있다면 ‘인간에 대한 진심’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을 가슴 뭉클하게 만들 때 한없는 행복을 느끼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딱 한 가지를 꼽을 수 없다고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지지를 보낸 관객이라면 이후로도 그의 영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세계는 루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화에 루저를 등장시킨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왕의 남자>를 통해 전 국민이 아는 스타 감독이 왰지만 이준익에게서도 과장된 흥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냉정하면서 따뜻하고 지적이면서도 감성을 드러낼 줄 아는 이준익 감독의 에너지는 끝이 없어 보인다. “영화 수입일을 하면서 외국에 준 천만 달러를 다 회수해오기 전까지 감독 일을 그만두지는 못할 것 같다. 현재 <왕의 남자>로 200만 달러만 번 상태다. 이번 영화의 경우 외국에 팔아먹기 위해 그들이 좋아할 요소들을 넣었다.”

대중의 흐름을 속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그는 "<왕의 남자>처럼 <님은 먼곳에>도 볼 때마다 새로운 점이 보이는 영화“라고 소개하면서 “제한적이지 않고 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영화 속에 숨겨놓은 감동의 코드들을 찾기 위해 극장을 두 세 번 찾는 관객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규한 기자 asura78@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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