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박찬욱어’로 들여다본 <아가씨> ②“모든 장면을 충격적으로 만들고 싶다”

2016-06-02 16:24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맥스무비=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레즈비언의 사랑이란 소재, 속고 속이는 스릴러라는 장르 외에 1930년대 일제 식민지 경성이란 배경 역시 <아가씨>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월한 일본(및 서구) 제국주의와, 열등한 자학적인 식민사관을 내면화한 당시 지식인과 지배 계층의 사고방식은 지금의 이른바 지식인, 지배층에게도 계승되고 있는 특징이다.

①공모 ②딜레마 ③사랑 ④성장 ⑤스핀오프 ⑥식민지 ⑦아름다움 ⑧저항 ⑨전복 ⑩충격

1930년대 식민지 경성이 배경이다. 배경에 대해 ‘식민지 시기에 만들어진 근대성의 뿌리’를 찾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주된 배경인 저택을 제공하는 코우즈키라는 사람을 보자. 그 시대에 정신적으로 철저히 식민화된 상류 계급, 먹물, 지식인을 대변하는 게 코우즈키이다. 조선 시대 중인 계급인 역관인 코우즈키는 백작의 설명에 의하면 ‘합방에 큰 공을 세워서’ 식민지 시기에 지위가 급상승한다. 그저 돈이나 벼슬 때문에 친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일본이 좋아서 내면 깊숙이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귀화를 한 것도 모자라 일본 여자를 사다시피 해서 결혼까지 한다. 모든 취향 면에서 조선은 열등하고 일본이 우월하다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 문화도 무턱대고 숭배하는 자발적인 식민지 근성의 소유자다. 열등감의 끊임없는 표현이자, 일본과 유럽에 대한 숭배다. 그걸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 코우즈키가 설립한 제국인 저택, 서양식과 일본식이 합쳐진 건물이다. 종반부 역시 일본 귀족이 아니라 한국인임이 탄로난 백작과 단둘이 있으며 편하게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일본어를 섞어 쓰는 모습은, 요즘 지식인들이 외국어를 섞어 가며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부류들이다.
<아가씨>의 모든 프레임과 색감은 말 그대로 그림처럼 아름답다.‘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던 건 아니다. 아름다움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추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팽 기사(기주봉)가 가족과 동반자살하는 곳은 달동네 하층민의 집이다. 그런 집을 묘사할 때도 아무렇게나 찍어서, 못 사는 ‘그들’ 의 집은 추하고 역겨울 것이란 보통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았다. 달동네에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마찬가지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에서도 이상한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그것은 아름다울수록 더 불편해진다. 역겹거나 무서운, 부정적인 감정이 담긴 장면이 아름다울 때는 부정적인 감정이 배가 된다. 잔인한데 아름답다면, 잔인성이 커진다. 그런 용도로 아름다움을 사용한다.

‘파이팅’ 기질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그게 여성이라면 좀 더 후련한 맛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여성이 등장한 영화가 별로 없다. 나는 보고 싶은데 잘 안 만들어지니까, 나라도 자꾸 만들게 됐다. 또 나 자체가 그렇게 싸우는 사람이 못 되고 언제나 순응하는, 나약한 소시민이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그런 사람을 묘사하고 싶기도 하다. <아가씨>에서는 두 악당 코우즈키와 백작이 이미 내면화된 식민지 근성과 계급 상승의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인 반면, 히데코와 숙희는 외부의 뭔가를 숭배하거나 따라 하려는 사람은 아니다.
영화 속 히데코와 숙희의 섹스 신을 두고 레즈비언 섹스를 궁금해하는 ‘남성 판타지’의 발현이라 보는 시각도 있을 것 같다.사람마다, 심지어 여성 관객마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 장면을 굉장히 관능적이라고 하더라. 구슬을 이용하는 마지막 장면을 두고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많이 사용하는 장난감이다. 중요한 것은 전복이다. 히데코가 억지로 읽어야 했던 음란도서에 묘사된 장난감이자 어렸을 때 이모를 만났을 때 매를 맞은 도구와 비슷한 구슬이다. 억압받고 학대당할 때 사용된 도구를 전복적으로 사용하는 쾌감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스스로 ‘남성’으로서 영화를 만든다거나, ‘여성이라면 더 잘 다룰 텐데’ 하는 생각은 안 해봤다. ‘여성을 다룬다’는 생각도 안 하려고 한다. 그저 히데코나 숙희라는 사람을 창조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물론 여성 동료와 아내, 딸의 조언과 도움을 받기는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가씨>의 섹스 신도 다소 충격적으로 묘사된다.관객 입장에서 자극적이고 주목이 되니까 두드러져 보이는 것뿐이지, 섹스 장면이라서 더 충격적으로 그린 건 분명히 아니다. 배우들이 느끼는 어려움, 관객이 느낄 불쾌함에 대해 신경을 쓰기는 하지만 말이다. 잘 보면 대화 장면이야말로 특히 공을 들이고 특별하게 찍으려고 애를 썼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사실은 모든 장면을 충격적으로 만들고 싶다. 가만히 앉아서 대화만 하는 장면도 충격적으로 보이면 좋겠다.

글 박보미 | 사진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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