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SPORTS MOVIE | 오만과 편견 그리고 변화, 스포츠 영화가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

2016-08-15 00:00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맥스무비=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저렇게 웃으니 미인대회에 출전한 선수 같네요" (KBS 펜싱 캐스터)"해변엔 미녀가, 바닷가엔 비키니"(KBS 비치발리볼 캐스터)"살결이 야들야들한데"(SBS 유도 캐스터)"박수 받을 만하죠, 얼굴도 예쁘게 생겨가지고"(SBS 수영 해설자)"스물여덟이면 여자 나이론 많은 거거든요"(SBS 유도 해설자)
올림픽 열기가 고조되면서 경기를 중계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성차별 발언도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나온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끊임없는 외모 품평에 내몰리며, 직업인이기에 앞서 '여성'으로 고정되기 일쑤인 처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스포츠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일상화된 미디어와 사회 일반의 성차별적 인식이 리우올림픽 중계 방송의 성차별적 발언을 통해 새삼 표면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급기야 한 익명의 네티즌이 리우올림픽 중계 해설진들의 성차별 발언을 기록하는 '2016 리우 올림픽 성차별 보도 아카이브(https://goo.gl/5ucFqc)'를 만들 정도다. 땀과 노력이 빚는 감격마저 저급하고 문제적인 발언으로 오염시키는 오래된 성차별의 앞에, 올림픽 연구 전문가인 심혜경 천안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스포츠 영화를 소재로 여성과 스포츠가 맺고 있는 상관 관계를 고찰하는 글을 보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스포츠 영화의 여성 재현스포츠 영화에서 선수와 코치 등 등장인물은 스포츠 지식과 정보, 가치, 정신 등을 전달한다. ‘루저’로 일컬어질 만한, 사회의 주변적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신체적·정신적, 경제적·사회적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성장기 혹은 성공기가 많다. 이쯤에서 궁금하다. 한국의 스포츠 영화는 여성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을까? 또 평단과 관객에게 스포츠 영화 속 여성은 어떻게 이해되고 소비되고 향유되는 것일까? ‘여성, 스포츠, 올림픽, 영화’란 단어를 앞에 두고 먼저 떠오르는 이름과 영화는 당연히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1938)다. 여러 부정적인 혐의를 받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최고의 올림픽 다큐멘터리로 꼽히는 이 영화는 1936년 히틀러 치하 베를린올림픽을 담았다.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제국 일본의 대표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마라토너 손기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되고, 다시 해방 공간 남한에서 상영되면서 손기정과 마라톤을 둘러싼 뜨거운 반응이 나왔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 스포츠 민족주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야구, 복싱, 태권도를 다룬 스포츠 영화가 만들어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핸드볼, 탁구, 역도, 스키, 아이스하키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영화가 등장했다.

밀리언달러 베이비
밀리언달러 베이비

다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스포츠 영화들을 떠올려보자. 2차 세계대전 중 여성 야구팀을 소재로 한 <그들만의 리그>(1992), 뉴욕 닉스의 명예 코치가 된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그린 <에디>(1996), 문제아 소녀가 복서가 되면서 희망을 배우게 되는 <걸 파이트>(2000), 늙은 복서와 트레이너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등이 있다. <그들만의 리그>와 <에디>는 남녀 간의 성차와 역할이 여전한 보수적인 스포츠 구단 세계를 보여주면서, 할리우드 영화가 상업주의를 중심으로 스포츠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있다는 한계를 노정했다. <걸 파이트>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남성 전용 경기인 복싱을 소재로 ‘여성도 복싱을 한다’라는 고정 관념의 변화를 보여주어,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 도전하는 여성의 성장기와 삶의 우아함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전의 스포츠 영화들보다는 진일보했다. 하지만 이 영화들도 여전히 남성 코치들이 여성을 올바른 스포츠의 세계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완성해 가고 잃었던 삶의 의지를 되찾아 사회로 복귀한다는 서사를 지닌다는 맹점이 있다.

걸파이트
걸파이트

상업화된 ‘스포츠 이데올로기’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오늘날 스포츠는 단순한 운동 경기가 아니다. 영화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스포츠는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옮겨와,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되었다. 본래 올림픽이나 국제대회 같은 스포츠 경기의 목표는 참여자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며 인간을 계몽하고 정신적인 해방감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협동 정신을 함양해 상호부조적인 인류애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 행사가 거대화되고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면서 ‘스포츠 이데올로기’는 기존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경기의 절정 속에서 잠시 화해시키고는, 곧 경쟁 원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도록 해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적 지배질서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게다가 경쟁적인 스포츠 세계에서 요구되는 신체적 강인함, 근력과 순발력은 남성적 특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겨지므로 여성의 스포츠 참여 기회 자체는 제한되고 억압당한다.

 

그러나 스포츠 행사가 거대화되고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면서 ‘스포츠 이데올로기’는 기존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경기의 절정 속에서 잠시 화해시키고는, 곧 경쟁 원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도록 해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적 지배질서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게다가 경쟁적인 스포츠 세계에서 요구되는 신체적 강인함, 근력과 순발력은 남성적 특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겨지므로 여성의 스포츠 참여 기회 자체는 제한되고 억압당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한국의 스포츠 영화들을 살펴보자.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스포츠 영화들 다수는 불운한 남자 주인공들의 새로운 도전과 응전을 통해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재현한다. 반면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킹콩을 들다> <코리아>는 여성적 성 역할에 저항하는 모습을 재현하면서, 서사의 중심에 스포츠-민족주의를 두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세 편을 각각 나눠 살펴보자. 지지하고 기념할 만한 영화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여성 등장인물들은 성 역할 고정관념의 극복과 양성성의 중요성, 자매애의 발견 같은 가부장적 사회의 변화된 인식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비인기 종목인데다 여성이 주목받지 못하는 역도를 소재로 한 <킹콩을 들다>는 역도 소녀들보다는 그들을 큰 경기로 이끌어 자아실현을 이루는 킹콩 코치에 더 중점을 둔다. <코리아>는 남한 현정화와 북한 리분희의 ‘쿨’한 자매애적 연대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잠재적 능력의 발현이나 자아실현보다는 노골적인 국가-민족주의를 드러낸다. 일부 맹점을 지니긴 했지만 이들 영화에서 여성들은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우먼십’,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의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고수한다. 그들은 활발하고 솔직한 중성적인 면을 잘 활용하고 감성적인 모성애로 여성적인 가치를 드러내며, 강인하고 당당한 남성적인 덕성을 표출한다.

킹콩을 들다
킹콩을 들다

‘충분히 여성주의적인’ 스포츠 서사를 기대하며한국의 스포츠 영화(뿐만이 아니라)에서 여성 선수와 여성 종목을 다룬 영화는 여전히 극소수다. 그 서사 역시 여성에게 기대되는 성별 역할을 어렵게 넘어서 ‘남성’ 코치의 지도하에 큰 대회를 석권한다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여성의 몸과 이미지 재현에 있어 서만은 퍽 앞서 나아가 있다.(아마도 여성감독이 처음으로 시도한 여성 핸드볼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여성 선수 이미지를 올바르게 재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들 영화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적인 특질로 여겨지는 것과 여성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것들을 동시에 끌어온다. 여성 주인공들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조금씩 나눠가진 중간적인 존재, 둘이 건강하게 통합된 정체성을 가진 여성으로 재현된다.

코리아
코리아

그럼에도 스포츠 영화에서 ‘여자가 무슨 운동을?’이라는 질문은 늘 ‘디폴트값’으로 작동한다. 스포츠에서 성차 자체가 문제시되는 이유는 생물학적 차이가 문화적인 차별로 귀결되고 이것이 자연적인 것으로 구조화되면서 스포츠에서의 각종 기준이 젠더 편향적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목에서 강인한 몸과 힘의 기준은 여전히 ‘남성적인 것’에 준한다. 현실 세계에서 여성 스포츠 스타들은 자신의 경기 실력뿐 아니라 아름다움과 여성다움 그리고 우아함 등도 중요한 능력이라고 강요당한다. 미디어는 그들의 신체적 강인함과 힘, 경기력과는 상관없는 머리 스타일, 의상, 몸매에 대한 가십들로 지면과 화면을 장식한다. 미디어에서 여성의 ‘스포츠-몸’이 전시되는 방식과 그 시선에 젠더적 편향은 없는가? 반드시 짚어야 할 질문이다.

펌핑 아이언
펌핑 아이언

 

현실 세계에서 여성 스포츠 스타들은 자신의 경기 실력뿐 아니라 아름다움과 여성다움 그리고 우아함 등도 중요한 능력이라고 강요당한다. 미디어는 그들의 신체적 강인함과 힘, 경기력과는 상관없는 머리 스타일, 의상, 몸매에 대한 가십들로 지면과 화면을 장식한다. 미디어에서 여성의 ‘스포츠-몸’이 전시되는 방식과 그 시선에 젠더적 편향은 없는가? 반드시 짚어야 할 질문이다.
장르영화에서 뿐 아니라 스포츠 영화에서도 여성의 몸은 항상 문제적이다. 씨네페미니스트 아네트 쿤이 분석한 세미 다큐멘터리 영화 <펌핑 아이언 2: 여성편>(1985)을 관람한 페미니스트 집단의 반응을 참고하자. 영화는 1984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여성 보디빌딩 챔피언 대회 이야기를 담으며 보디빌딩 챔피언인 레이첼 맥리시와 칼러 던럽(유일한 흑인 참가자), 호주 역도 선수 출신 보디빌더 베브 프랜시스 세 명의 여성에 집중한다. 누가 이길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즉, 여성 보디빌더로서 ‘최고의 몸’이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가 핵심 질문이다. 레이첼의 몸은 ‘여성적인 몸’에 가깝고, 베브의 몸은 ‘남성적인 몸’으로 보일 만큼 근육이 잘 발달했다. 결국 1등은 베브와 레이철의 중간 형태의 몸인 칼러에게 돌아간다. ‘여성 보디빌더에게 적합한 몸이 무엇인가’란 질문은 해결되지 못했다. 참고로 이 영화를 본 페미니스트들은 모순적 반응을 보였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신나게 즐기고, 끝난 후의 토론에서는 부정적으로 비평한 것이다. 자신이 아마도 남성적인 방식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누렸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까닭이다. 당분간 우리는 여성을 다룬 스포츠 영화의 서사와 재현을 둘러싼 이 불편한 감정에 끌려 다니거나 혹은 저항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스포츠 영화를 둘러싼 여성적 서사와 여성 재현에 대한 페미니스트 관객의 운명이 아닐까. 곧 충분히 여성주의적인 서사로, 강인하고 아름답게 여성 주인공을 다루는 스포츠 영화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심혜경(천안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 <맥스무비 매거진> 8월호에서 60페이지에 달하는 ‘MAX SPORTS MOVIE’ 특집 기사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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