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의 아버지와 그의 자식들

2016-08-18 12:01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맥스무비=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조지 로메로가 좀비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비를 세상에 각인시킨 이는 분명 조지 로메로다. 썩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도 대중 문화의 일부가 되어버린 좀비. 여기, 좀비 영화의 처음이 있다.

좀비들 사이에 있는 조지 로메로 감독
좀비들 사이에 있는 조지 로메로 감독

영화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피조물들이 있다. 그들을 세상에 내놓은 건 산파 역할을 한 예술가들이었다. 드라큘라는 토드 브라우닝 감독과 루마니아에서 온 배우 벨라 루고시가 없었다면 브람 스토커의 소설 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제임스 웨일 감독과 보리스 카를로프가 있었기에 육체를 얻을 수 있었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가 없었다면, 복제인간은 결코 지금 같은 ‘영화적 지위’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1977) 이후 우린 수많은 ‘행성인’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촬영 현장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촬영 현장

좀비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좀비 영화라는 <화이트 좀비>(1932)나 자크 투르니에 감독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혹은 <좀비의 왕>(1941)이나 <좀비의 역병>(1966) 같은 영화들이 있긴 했지만, 조지 A. 로메로라는 감독이 없었다면 좀비는 부두교의 비밀 의식에나 등장하는 오컬트 캐릭터에 머물렀을 것이다.

좀비들은 집을 공격하고 떼로 몰려다니며 인육을 먹는 존재들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흑인 히어로는 시대의 파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좀비들은 집을 공격하고 떼로 몰려다니며 인육을 먹는 존재들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흑인 히어로는 시대의 파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조지 로메로가 1968년에 내놓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은 우리가 지금 영화를 비롯한 대중 문화 전반에서 접하는 좀비의 ‘매뉴얼’을 제시했다. 좀비에 대한 모든 것은 이 영화 속에, 좀 더 확장하자면 <시체들의 새벽>(1978)과 <죽음의 날>(1985)로 이어지는 로메로의 ‘좀비 3부작’ 안에 다 있다.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이후 만들어진 그 어떤 좀비 영화도, 로메로가 만들어놓은 좀비 관련 인덱스에 걸려들기 마련이다. 로메로는 좀비의 아버지이며, 모든 좀비 영화는 로메로에 대한 주석이다.그렇다면 조지 로메로 감독은 언제부터 좀비를 사랑하게 된 걸까? 1940년생인 그의 첫 사랑은 만화였고, 1950년대 그의 독서 목록은 <공포의 납골당> 같은 윌리엄 게인스의 스플래터 코믹스로 가득 차 있었다. 열네 살 무렵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 그는 만화에서 봤던 끔찍한 장면들을 킬킬거리며 재현했지만 결코 하드 고어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그런 잔인한 이미지를 담아내면서도 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고, 28세에 만든 데뷔작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은 그 확실한 실천이자 증거였다.

좀비 영화의 레전드,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영화가 처음부터 좀비 영화를 지향한 건 아니었다. 존 A. 루소와 함께 쓴, 아직 제목도 정해지지 않았던 초기 버전의 시나리오는, 외계에서 온 틴에이저가 지구의 틴에이저와 친구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버전에서야 좀 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 근접한다. 가출한 한 젊은이가 썩어가는 육체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외계인들이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육하는, 비교적 최근에 죽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육을 먹는 식인종들이다. 이후 최종 버전이 나왔는데, 이 과정에서 로메로와 루소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1954)였다. 아니, 로메로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아예 “<나는 전설이다>의 표절”이라고 호기롭게 말하기도 했다. 핵 전쟁 이후 변종 바이러스에 의해 괴물이 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우리에겐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2007)로 잘 알려져 있는 작품. 이미 이탈리아에서 빈센트 프라이스가 출연한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로 영화화된 바 있었다. 원작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도 로메로에게 영감을 줬는데, 천천히 움직이는 좀비들이나 쌓여 있는 시체들 같은 좀비 영화의 클리셰들은 이미 이 영화에 등장했던 것이다. 만약 <지상 최후의 사나이>가 좀 더 잘 만들어져 성공했다면,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게 ‘좀비 영화의 레전드’라는 영예가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지 로메로의 영화에서 아이는 결코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과 <시체들의 새벽>은 모두 좀비가 된 아이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소탕되어야 할 존재들이다.
조지 로메로의 영화에서 아이는 결코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과 <시체들의 새벽>은 모두 좀비가 된 아이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소탕되어야 할 존재들이다.

1968년 자동차극장에서 개봉해 아트 하우스 심야 상영을 거쳐 197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소개되기까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그토록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당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너무나 공포스럽고 한편으론 새로운 영화적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살아난 좀비들이 인간의 살점을 뜯어먹는다는 설정은,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류의 고전 호러에선 만날 수 없었던 섬뜩한 콘셉트였다.평론가들은 이 저예산 흑백 영화가 당시 흉흉한 미국 사회를 반영한다고 봤다. 영화에서 좀비들은 방사능에 의해 깨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핵’으로 대표되는 냉전 시대의 공포와 연결된다. 떼로 몰려 다니는 좀비들을 대량 실업 시대의 상징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혹은 그 좀비들은 비판 의식을 상실하고 정부의 속임수에 끌려 다니는 미국의 대중이기도 했다. 경찰과 민병대는 잔인하게 좀비들을 진압하고 학살하는데, 이것은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했고,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도 했다.특히 주인공인 벤(듀안 존슨)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물이며 최후 생존자인데, 경찰에 의해 좀비로 오인 받아 허무하게 죽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영화가 흑인을 히어로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물론 로메로는 “오디션을 본 배우들 중 듀안 존슨이 가장 연기를 잘해서 캐스팅했다”고 쿨하게 이야기하지만, 당대의 젊은 관객은 이 영화의 전복성에 열광했다. 벤이 죽는 장면은 마틴 루터 킹이나 말콤 X처럼 암살 당한 흑인 지도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좀비 3부작이 완성한 호러의 공식

<죽음의 날> 오프닝 신의 한 장면
<죽음의 날> 오프닝 신의 한 장면

하지만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정치적 의미 때문에 불멸의 걸작으로 추앙 받은 건 아니다. 이 영화는 호러 장르의 해묵은 공식인 ‘정상(인간) vs 비정상(괴물)’의 구도를 파괴했다. 바바라(주디스 오디)는 좀비가 된 오빠에게 잡아 먹히며, 좀비가 된 어린 딸은 부모를 먹어 치운다. 미국의 가족주의가 지닌 판타지를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은 영화는 일찍이 없었으며, 앨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1) 이후 호러 장르는 로메로를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호러 장르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지각 변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일단 ‘좀비’라는 캐릭터가 호러 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이 인간의 육체에 대해 저지르는 잔인한 행동들은 이후 <이블데드>(1981) 같은 ‘스플래터 호러’의 장을 열었으며, 외딴 집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은 <할로윈>(1978)이나 <13일의 금요일>(1981) 같은 슬래셔 호러로 연결되었다.

<죽음의 날>은 사실적 고어 신의 극단을 보여준다.
<죽음의 날>은 사실적 고어 신의 극단을 보여준다.

이후 로메로는 <시체들의 새벽>과 <죽음의 날>을 통해 3부작을 완성한다. 컬러로 촬영된 <시체들의 새벽>은 톰 새비니가 특수효과를 맡으면서(그는 1990년에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을 리메이크 한다) 훨씬 더 잔인한 고어 신을 품게 되었고, 전작의 외딴 농가에서 현대식 쇼핑 몰로 무대를 옮기면서 공간적 비주얼이 강화되었다. 기괴한 유머는 잔혹한 신과 결합되었고, 대형 쇼핑 몰을 “좀비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설정한 것은 당시 미국의 소비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적 시선이었다. 이 영화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스플래터 장르를 자극했고, 이탈리아에선 <좀비>로 개봉된 후 <좀비 2>(1979)라는 가짜 속편을 낳기도 했다.

<죽음의 날>은 좀비에게도 지능이 있음을 보여준다.
<죽음의 날>은 좀비에게도 지능이 있음을 보여준다.

레이건 시대에 등장한 <죽음의 날>은 이 시기 미국의 군국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한 혐오를 담았다. 군인들은 좀비 소탕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고, 과학자는 좀비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다. <시체들의 새벽>과 다르게 어두운 톤으로 연출된 <죽음의 날>은 전작의 만화적 색채를 벗고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하는데, 중반까지 지속되던 정적인 리듬은 후반부의 아비규환으로 치달으면서 좀비의 역습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역시 의학 실험을 모티브로 하는 <28일 후>(2002) 같은 영화에서도 만날 수 공식이다.

조지 로메로를 다시 보라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 37년, 그는 <랜드 오브 데드> 현장에 섰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 37년, 그는 <랜드 오브 데드> 현장에 섰다.

 

충격적인 호러 데뷔작 덕분에 평생을 공포영화 감독으로 살아야 했던 조지 로메로 감독에게 ‘좀비 영화’는 업보와 같은 것이었다. <마틴>(1977) <크립쇼>(1982) <다크 하프>(1993) 등 몇 편의 주목 받는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는 끊임없이 좀비의 세계로 돌아오려 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이 수없이 리메이크 되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처럼 자신에게 오마주를 바치는 영화가 등장했지만 그의 귀환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65세가 된 ‘좀비의 아버지’는 <랜드 오브 데드>(2005)로 돌아와 좀비 영화의 클래식의 묵직함을 보여주었고, <다이어리 오브 더 데드>(2007)와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2009)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3부작을 완성했다.이젠 대중 문화의 한 부분이 되면서 어쩌면 너무나 흔해지고 너무나 평범해진 좀비 영화. 하지만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조지 로메로라는 혁신적인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으며, 우리가 지금 만나는 그 모든 좀비 영화의 디테일들은 로메로의 초기 3부작이 모두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젠 좀비 영화라는 게 너무 시시해졌다고? 그의 영화를 다시 보라. 그의 고전들은 아직도 머리칼이 쭈뼛해지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글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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