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감독 “상실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2017-02-17 20:34 채소라 기자

[맥스무비= 채소라 기자] <아주 긴 변명>(2월 16일 개봉)은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 철부지 남편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의 성장담이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3.11 동일본 대지진 같은 재난으로 소중한 이를 상실한 사람들이 사치오처럼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영화 곳곳에 세심하게 담았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을 직접 만나 <아주 긴 변명>에 관한 아주 세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아주 긴 변명>이라는 소설을 먼저 쓰고 그 소설을 영화화 했다. 그는 <유레루>(2006)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신작 <아주 긴 변명>은 일본의 영화 잡지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2016년 최고의 영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맥스무비 김유찬(에이전시 테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아주 긴 변명>이라는 소설을 먼저 쓰고 그 소설을 영화화 했다. 그는 <유레루>(2006)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신작 <아주 긴 변명>은 일본의 영화 잡지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2016년 최고의 영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맥스무비 김유찬(에이전시 테오)

<아주 긴 변명>이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준보>가 뽑은 2016년 베스트 영화 5위에 올랐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아주 긴 변명>은 ‘<키네마준보> 순위에 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작품을 낼 때마다 10위 안에 들어야겠다고 의식하면서 영화를 만들거든요.

특히 이번 작품은 시나리오도 시간을 많이 들여서 썼고, 촬영도 1년 동안 했습니다. 특별히 아쉬움 남는 것 없이 만들자는 마음으로 정성 들인 작품입니다.

<아주 긴 변명>은 4년 만에 개봉한 신작입니다. 특히 오래 걸린 이유가 있나요?

제가 원래 영화 1편을 만드는 데에 한 3년 정도 걸립니다. 시나리오 쓰는 시간이 1년 정도 걸리고 촬영 준비하는 기간 1년. 촬영까지 하고 나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개봉하는 게 제 원래 페이스입니다.

이번에 <아주 긴 변명>은 소설을 먼저 썼습니다. 그래서 소설 집필하는 기간이 1년 정도 더 걸렸습니다. 계절의 변화라든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서 평소보다 작업 기간이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소설 <아주 긴 변명>을 먼저 쓰고 난 뒤에 영화화한 과정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역시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힘이 들어오는 게 굉장히 좋은 것 같습니다. 소설은 아무런 타협 없이 제 마음대로 쓰지만, 그 모든 것들은 제 상상력 안의 것이거든요. 소설로 나 자신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어요.

반면, 영화에는 많은 스태프와 여러 출연 배우들이 가져오는 상상력이 있습니다. 제 상상력을 뛰어넘는 힘과 아이디어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 작업이 좋습니다.

<아주 긴 변명> 원작 소설은 영화 개봉에 맞춰 한국에서도 출간되었습니다. 소설과 영화의 설정은 같나요? 

소설은 여러 등장인물이 각각 1인칭 시점으로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각 인물이 1인칭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또 3인칭 시점으로 표현되기도 해요. 주인공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가 1인칭으로 말을 하는 장도 있고, 사츠오의 아내 나츠코(후카츠 에리)가 1인칭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장도 있고요.

아내 친구의 어린 아들 신페이(후지타 켄신)와 영화에서는 조연으로 나오는 사치오의 매니저 키시모토 노부스케(이케마츠 소스케)의 1인칭 시점의 내용도 있습니다. 스토리 라인은 같지만, 표현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재미가 있을 겁니다. 영화에서 보이지 않았던 점들이 소설에서 보일 겁니다.

<아주 긴 변명>은 인기 작가 사치오가 아내 나츠코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아내 친구의 남편 요이치(타케하라 피스톨) 가족을 만나면서 깨닫는 것들을 그린다. 아내에게 사사건건 투정만 늘어놓던 사치오는 아이들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사진 영화사 진진
<아주 긴 변명>은 인기 작가 사치오가 아내 나츠코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아내 친구의 남편 요이치(타케하라 피스톨) 가족을 만나면서 깨닫는 것들을 그린다. 아내에게 사사건건 투정만 늘어놓던 사치오는 아이들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사진 영화사 진진

작가 사치오는 영화 시작과 함께 아내 나츠코에게 “출판사 사람들 앞에서 본명을 부르지 말라”고 불평합니다.  ‘기누가사 사치오’라는 이름은 실제 일본 야구선수의 이름이죠? 왜 이 이름을 붙여주었나요?

사치오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기누가사 사치오는 히로시마 도요컵이라는 구단에 소속된 일본의 전설적인 투수입니다. 1965년에 프로 야구 선수로 데뷔한 기누가사 사치오는 아무리 다쳐도 시합을 절대 쉬지 않아서 2,215경기 연속 출장 일본 기록을 세기도 했어요. 팬들 사이에서 애칭이 ‘철인’일 정도로 절대 포기하지 않고 불만을 얘기하거나 공을 함부로 던지거나 버리거나 하는 분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도 경기 중 자기에게 데드볼을 던지는 선수에게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아주 긴 변명>의 사치오와 정반대 사람이잖아요. 극중 사치오는 콤플렉스도 많고, 옹졸해서 자신의 인간성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람과 이름이 같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기누가사 사치오는 제게 영웅 같은 분이기도 해서, 일부러  그분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사치오는 아내가 죽은 후, 아내와 함께 사고를 당한 아내의 고교동창 오미야의 남편 요이치(타케하라 피스톨)과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치오에게 요이치 가족과 만남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사치오는 무언가 쓰는 일이 본업인데 쓰고 싶은 그 무엇도 사라졌고, 뭘 써야 할 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가 일이 아니더라도 살아가야 할 힘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하다.’ 사치오에게 그런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장소와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지금 <아주 긴 변명>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도 “감독님이 꼭 해주셔야 해요”라고 해서 저의 의무이자 제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처럼요.

사람에게는 ‘네가 정말 필요해, 네가 꼭 있어야 해’라는 장소가 필요한데, 사치오는 모든 걸 잃어버린 거예요. 그 가운데에 “아저씨가 꼭 필요해요, 아저씨가 도움이 너무 많이 돼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돌보겠다고 말한 것은, 어떻게 보면 사치오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은 거예요.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했던 사치오는 남의 집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하는 일을 자청하면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죠. 좀 엉뚱한 선택이긴 합니다.  

가사나 육아는 사치오한테 완전히 처음 하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 하는 건, 무섭기도 하면서 엄청 재밌기도 하잖아요. 이 두 가지 감정 때문에 그 외 다른 것들을 잊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아마 사치오는 그런 힘을 받은 거죠.

아내 나츠코가 죽을 때 사치오는 치히로(쿠로키 하루)라는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나츠코에게 무척 큰 죄를 지은 거죠. 그런데 그 죄의 무거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마주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면, 사치오는 아마 살아갈 기력조차 잃었을 겁니다.

사치오는 아내를 잃고 오열하지 않습니다. 사치오의 슬픈 감정을 끝까지 폭발시키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사치오가 기차 안에서 수첩에 무언가 적는 장면이 처음엔 ‘사치오가 펑펑 울면서 쓴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사실 우는 장면을 찍긴했습니다. 그 장면을 쓰지 않고 눈물 한 방울만 뚝 떨구는 장면을 넣었어요. 펑펑 우는 게 거짓 같아 보여서요.

사치오는 분노도 굉장히 강하게 표현하잖아요. 아마 울 때도 격하게 표현을 할 거예요. 그런데 둘 다 격하게 표현하면 왠지 거짓으로 보일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눈물 흘리는 것이 사치오의 진심으로 보여서, 의외로 소박하게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전작 <유레루>, <우리 의사 선생님>과 <아주 긴 변명>까지 주로 남자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해야 가면을 쓴 듯 편하게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전했다. ⓒ 맥스무비 김유찬(에이전시 테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전작 <유레루>, <우리 의사 선생님>과 <아주 긴 변명>까지 주로 남자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해야 가면을 쓴 듯 편하게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전했다. ⓒ 맥스무비 김유찬(에이전시 테오)

사치오는 요이치와 그의 아들 딸과 가족처럼 지내면서 엄마같은 역할을 합니다. 요이치와 가까워진 여자 과학 선생님을 아이들도 따르자 질투하는 것 같은 모습도 보여주고요. 전통적인 부모 관계, 동성 혹은 이성의 부부, 현대 가족의 새로운 형태 등 가족의 유형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다양한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좋겠어요. 내 자식만이 소중하고, 내 사람만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 힘든 일을, 내 피를 물려줬다고 해서 나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건 숨 막히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럴 때 타인을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여러 어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이 무거운 책임을 조금 분산시킬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육아법이 아이들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요? 저와 아역으로 출연한 켄신, 타마키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그 아이들을 보면 애정이 솟고 사랑스러운 것처럼요. 다양한 형태로 아이들을 키우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사실적입니다. 특히 요이치의 아들, 딸을 연기한 아역 배우들은 연기가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캐스팅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캐스팅할 때 배우와 배역에 공통점이 있으면, 확실히 현실성을 불러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영화의 모든 배역이 다 실제 모습과 비슷해요. 오빠 신페이를 맡은 후지타 켄신도 동생을 잘 챙기고, 이성적이고, 감정을 그다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삭히는 면이 있습니다. 동생 아카리를 연기한 시라토리 타마키는 정말 천진난만합니다. 영화에서 보이는 성격 그대로에요.

아빠 요이치를 연기한 피스톨 씨도 성격이 직선적이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앞에서 카메라를 돌리기만 해도, 정말 살아있는 사람을 연기하는 듯한 생생함이 바로 나오거든요. <아주 긴 변명>은 그 생생함에 중점을 두고 캐스팅했습니다.

요이치를 연기한 타케하라 피스톨은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뮤지션인데, <아주 긴 변명>으로 올해 3월 3일 열리는 일본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피스톨 씨는 연기 경험은 있었지만, 감정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주 긴 변명>이 처음이었을 겁니다. 피스톨 씨에게 먼저 오디션을 보자고 했어요. 그가 오디션 장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제가 소설을 쓰면서 ‘요이치는 이런 이미지일 거야’라고 떠올린 그 이미지 그대로였습니다.

요이치는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길 바랐어요. 다케하라 피스톨 씨는 기타 하나 달랑 들고 직접 차를 운전해 전국을 돌면서 매년 200회 넘는 라이브 공연을 하는 뮤지션이거든요. 자기 손으로 자기 인생을 잡고 계신 분입니다.

얼핏 보면 험상궂은 인상이라 무서운데, 활짝 웃으면 아이처럼 귀엽죠. 요이치 역은 어떻게 연출했나요?

요이치는 사치오의 입장에서 보면 몬스터 같은 존재입니다. 사치오에게 요이치는 살면서 본 적도 없는 인물이라 엄청 공포스러운 동시에 동경의 존재이기도 한 거예요. 요이치는 엄청나게 순수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정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사치오가 아무리 노력해도 요이치가 가지고 있는 빛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따라가지 못 하거든요. 요이치는 사치오와 정반대에 있는 역할로 설정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치오와 요이치는 가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황과 성격은 정반대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대칭되는 캐릭터는 전작 <유레루>의 두 형제 타케루(오다기리 죠)와 미노루(카가와 테루유키), <우리 의사 선생님>(2010)의 나이 든 의사 이노(쇼후쿠테이 츠루베)와 젊은 의사 소마(에이타)가 있었습니다. 대칭되는 두 인물을 자주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은 이 질문을 한국에 와서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모르고 있다가 한국 기자들이 물어봐주셔서 깨달았습니다. 성격과 외모가 전혀 다른 두 남자의 버디 무비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더스틴 호프만과 존 보이트가 나오는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 처럼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등장하는 버디 무비를 동경하는 마음이 저에게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의 세 작품 모두 남성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특징도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것이 훨씬 글을 쓰기가 편합니다. 가면을 쓴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자유롭게 쓸 수 있거든요. 만약 여성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쓴다면, 정말 벌거벗고 민낯으로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오히려 ‘진짜’를 못 쓰겠어요.

<아주 긴 변명>에서 나츠코의 갑작스런 죽음, 유가족들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정부 관계자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동일본 대지진이 떠오른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상실 자체가 아니라 상실 이후 살아갈 방법을 논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테마”라고 말한다. 사진 영화사 진진
<아주 긴 변명>에서 나츠코의 갑작스런 죽음, 유가족들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정부 관계자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동일본 대지진이 떠오른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상실 자체가 아니라 상실 이후 살아갈 방법을 논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테마”라고 말한다. 사진 영화사 진진

어린 아카리가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은 특히 애잔한 감정이 듭니다.

아카리는 5살이잖아요. 지금까지 머리가 자라면 때 맞춰 잘라주던 엄마가 사라진 어느 날, ‘앞머리가 눈을 찔러서 너무 싫다. 머리를 잘라야겠는데’라고 생각해요. 그리곤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가위를 들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체험을 합니다.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길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고, ‘이젠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구나’라는 걸 아카리가 깨달았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아카리는 천성이 밝은 아이입니다. 엄마가 없다는 상실감을 그다지 많이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아이 나름대로 엄마의 부재를 견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등 일본 감독들이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2011년 3월에 대지진이 일어났어요. <아주 긴 변명>을 처음 생각해낸 때가 그해 연말쯤이었습니다. 그 재난이 일어났을 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창조해내는 사람들은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어요. 이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에 내가 어떤 형태로 공헌할 수 있을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대지진을 직접적인 모티프로 썼다기보다 여러 가지 재난과 여러 가지 형태의 이별, 아픔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표현 방법으로서 재난 자체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재난으로 모든 것을 상실한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우리 현대인의 새로운 테마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습니다.

<아주 긴 변명>의 요이치 대사 중에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해?”라든가, 아카리가 오르막을 올라가면서 “힘내라, 사치오군!”이라고 외치는 대사가 재난으로 많은 것을 잃은 현대인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로 들립니다. 

“힘내라 힘! 사치오 군”라는 대사는 우연의 산물입니다. 설정은 있었는데 대본에 대사를 쓰지는 않았어요. 촬영 당일 아짱(아카리)에게 상황을 설명해줬습니다. “사치오가 오르막길을 넘어갈 거니까 응원해줘”하니까 자연스럽게 아카리 역을 맡은 타마키가 “힘내라 힘, 사치오 군”이라고 해준 거예요. 진짜 그 아이의 말인 거죠.

완성된 걸 보니 오르막길을 오르는 장면과 아카리의 말이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겠지만 각자가 많은 것을 시도해보고 벽에 부딪혀 보고 스스로 찾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부러 대신할 것을 찾는다거나 잊으려고 애쓰면 실패할 것 같아요. 시도하면 상처를 받을 거예요.

하지만 상실이라는 것은 무언가로 메꾼다고 해서 이전처럼 살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실패하고 부딪혀도 깨지면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무언가를 잃는다는 건 그만큼 새로운 만남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치오가 요이치와 아이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잖아요. 새로운 관계를 찾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사람 간의 인연을 주저하지 않고 만나는 것도 새로운 길과 방법을 찾는 면에 있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닝 음악은 꽤 가볍고 경쾌합니다. TV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음악도 발랄하고요. 음악 표현에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앞부분은 경쾌한 재즈풍이었습니다. 아내가 죽기 전 사치오는 자기 인생이 성공했다고 느꼈을 겁니다. 인기도 많고 작품도 잘 팔리니까 기분이 붕 떠 있는 거죠. 그런 사치오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밝은 음악을 썼습니다.

아내 나츠코의 죽음과 동시에 리듬감 있고 세련된 음악은 전혀 쓰지 않고 호수 위의 물 같이 굉장히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썼습니다. 극 중반에 나온 애니메이션 음악은 저급한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사실 현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싸구려 느낌이 있잖아요. 현실에서 들리는 그대로의 소리가 들리면 좋겠다 싶어서 설정한 것입니다. 물론 음악 담당하시는 두 감독님과 굉장히 세세하게 이야기하면서 만든 음악들입니다.

아카리가 정각 5시 마다 애청했던 TV 애니메이션 <찰방 찰방 롤리>는 일본에서 유명한 애니메이션인가요?

아닙니다. <찰방 찰방 롤리>는  제가 만든 거예요. 이 장면에 넣으려고 일부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썼습니다.

애니메이션만 따로 공개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웃음)

음, 제작비 300만 엔을 만들어주시면 해보겠습니다.(웃음)

+니시카와 미와 감독 & 빨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초기작 <유레루>(2006)는 상반된 성격의 형제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순진한 형 미노루와 활발한 성격의 동생 타케루, 형제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치에코. 세 사람이 함께 산속으로 놀러갔다가 치에코가 추락사 한다. 치에코의 실수인 줄 알았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과정을 그려낸 <유레루>는 타인의 시선에 갇힌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영화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초기작 <유레루>(2006)는 상반된 성격의 형제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순진한 형 미노루와 활발한 성격의 동생 타케루, 형제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치에코. 세 사람이 함께 산속으로 놀러갔다가 치에코가 추락사 한다. 치에코의 실수인 줄 알았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과정을 그려낸 <유레루>는 타인의 시선에 갇힌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영화다. 사진 영화사 진진

<아주 긴 변명>의 사치오는 요이치의 집에서 아카리와 함께 처음으로 빨래를 갠다. <유레루>(2006)에서는 형 미노루가 빨래를 개고 아버지 하야카와(이부 마사토)가 집앞에서 빨래 너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해서, 니시카와 미와 감독에게 빨래 장면의 의미를 물었다.

“일본에서도 ‘넣을 장면 없으면 빨래 장면을 넣나요?’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제 영화에 빨래 장면이 자주 나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빨래 개는 거 너무 힘들지 않나요? (웃음)

사실 생활이라는 건 소박하지만 굉장히 힘들잖아요.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안 하면 생활이 안 되니 꼭 해야하는 일입니다.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해가면서 사소하지만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생활해나가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힘듦도 모르면서 ‘사회는 어떻네 ,정치는 어떻네’ 하며 인생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을 보면 되게 밉지 않아요? (웃음)”

| 사진 김유찬(에이전시 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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