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이제훈 “내 그릇의 크기만큼 다 쏟아냈다”

2017-06-20 15:15 차지수 기자

[맥스무비= 차지수 기자] <박열>의 이제훈은 가장 말 안듣는 피고인의 뻔뻔하고 구김 없는 얼굴만로도 뜨겁게 끓어오르는 애국의 열망을 쏟아낸다.  그 모습은 지금껏 본 적 없는 기이한 독립투사이자, 이제훈의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한 달 남짓한 시간 안에 독립투사 박열로 완벽히 변신해야 했던 이제훈. 준비 시간이 짧았던 만큼 오히려 작품에 대한 이제훈의 몰입도는 배가됐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한 달 남짓한 시간 안에 독립투사 박열로 완벽히 변신해야 했던 이제훈. 준비 시간이 짧았던 만큼 오히려 작품에 대한 이제훈의 몰입도는 배가됐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박열>에 합류했습니다. 준비할 게 꽤 많았을 텐데, 시간이 굉장히 빠듯했겠습니다.

작년에 드라마 <내일 그대와>(tvN)를 찍던 중 11월에 <박열> 시나리오를 받았습니다. 촬영 중인 작품이 있으니까 <박열>을 미리 준비하긴 어려웠죠. 결국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야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는데, 준비 과정이 짧아서 부담감이 상당했어요. 전체 촬영도 6주 동안 24회 차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건 이준익 감독과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까요? 

<왕의 남자>(2005) <사도>(2015) <동주>(2016)를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고, 저도 언젠가 감독님 작품 세계에 쓰이는 배우가 되길 바랐습니다. 다른 스태프나 배우들에게 이준익 감독님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니까 “감독님들 중 가장 재밌고 즐거운 사람, 치열한 현장에서도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이번에 같이 작업해보니 그 말에 200% 동의하게 됐습니다. 왜 이준익 감독님과 작업했던 사람들이 또 감독님과 하고 싶어 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의 진정성을 위해 저예산 제작을 고집했습니다. 배우로서는 실존인물이었던 박열을 연기하는데 있어서 어떤 고민이 있었습니까?

감독님은 상업적 성공보다 이 영화가 가지는 의의나 가치에 더 집중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신 거고요. 연기하는 입장에서 더 고민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여 인물이 왜곡되거나 영웅으로서 미화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기도 했고요. 인물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에너지를 폭발시키기보다는 과하거나 넘치지 않도록 연기하는데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일본어 대사가 한국어 대사보다 더 많습니다. 대사를 외우는 게 가장 큰 고충이었겠습니다.

감독님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기쁨은 잠시였습니다.(웃음) 시나리오 막바지 법정 장면에서 나오는 긴 일본어 대사를 보니까 말문이 막혔죠. 한국어로도 힘든 연기를 일본어로 해야 하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재판 기록을 그대로 가져와서 영화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게 제가 한국어로 말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를 습득하고 체화하는 것이 1순위였습니다. 같이 연기했던 최희서와  (김)인우 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본어 단어나 문장, 읽을 때 속도까지 다양하게 바꿔서 제가 가이드를 받았거든요. 귀찮았을 텐데 제가 요청한 걸 일일이 다 봐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흐트러진 머리칼, 지저분한 수염과 동네 건달 같은 차림새. 청춘 스타 이제훈은 <박열>을 통해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역할을 맡았고 깊이 있는 내면 연기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흐트러진 머리칼, 지저분한 수염과 동네 건달 같은 차림새. 청춘 스타 이제훈은 <박열>을 통해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역할을 맡았고 깊이 있는 내면 연기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고생한 만큼 영화를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보통의 경우엔 연기적으로 아쉬운 점들이 잘 보이는데, 이상하게 <박열>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이번에 제 그릇의 크기만큼 다 쏟아냈다는 느낌이라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아무래도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법정 장면인가요?

박열이 법정에 서서 대사를 쏟아내는 부분이 가슴 아팠습니다. 일본어도 못하는 제가 그 어려운 대사, 긴 문장들에 감정을 담아서 표현하는 게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아무래도 여러 번 끊어서 촬영해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났더군요. 영화로 그 신을 다시 보니까 ‘아 내가 진짜 고생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요.(웃음) 이 작품을 일본인들이 봤을 때도 배우의 연기에서 언어적 이질감을 느끼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더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요.

박열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이번에 공부해보니 박열은 어떤 사람이던가요? 

보통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혁명가로서의 비장함, 진중함이 있는데 박열은 이와 함께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 여인을 통해 사려 깊게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알면 알수록 인간에 대한 따뜻한 존중심이 있어요. 국내에서 항일운동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제국주의의 심장, 도쿄에까지 가서 투쟁 활동을 했다는 사실에 특히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은 그 지옥불 같은 곳에 갈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열이라는 사람을 몰랐던 게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 분처럼 이름 없는 독립투사가 수백, 수천 명 있을 테니까요.

<박열>은 독립투사 박열과 그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가 중심이 된다. 가네코 후미코 없이는 박열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이 커플의 끈끈한 결합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박열>은 독립투사 박열과 그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가 중심이 된다. 가네코 후미코 없이는 박열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이 커플의 끈끈한 결합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에선 아내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을 논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열을 소개할 때 가네코 후미코 없이는 설명이 부족하죠. 가네코 후미코를 통해 박열이 더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어 신념을 나누는 동지로서의 사랑,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승화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계속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인 아나키스트라 주장합니다. 이들의 급진적 사상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습니까?

일제강점기를 사는 조선인들은 현 정부의 사상과 체계를 교육받을 수밖에 없었겠죠. 그 자체를 거부한다는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박열은 거기 속하는 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여러 가지의 화합을 이끌어내고자 애썼던 분입니다. 탈 민족주의, ‘세계는 하나다’라는 관점에서 평등과 자유를 갈구하는 개인의 의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거죠.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변신입니다. 박열의 분장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따온 것입니까?

고증에 따라 씻지 않고 더러운 모습의 박열 사진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제 머리가 짧으니까 뒤에 가발을 붙이고, 수염도 지저분하게 붙였습니다. 처음 거울을 봤을 때는 ‘너무 센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는데, 차마 이렇게는 못하겠다는 말이 안 나오더군요. ‘이제훈’이라는 사람이 지워지고 온전히 ‘박열’로 보일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으니까요. 처음 테스트 촬영할 때 그렇게 분장하고 오니까 아무도 저를 못 알아봤습니다. 심지어 감독님도요.(웃음)

배우라는 헛꿈에 치여 청춘이라는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것일까 마음 졸였다는 20대 초반의 이제훈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던져야만 대배우들의 발끝이나마 쫓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배우라는 헛꿈에 치여 청춘이라는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것일까 마음 졸였다는 20대 초반의 이제훈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던져야만 대배우들의 발끝이나마 쫓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박열의 나이가 당시 22세였습니다. 이제훈의 20대 초반은 어땠나요?

박열이 어떤 큰 테두리를 보고 있었다면, 저는 지극히 개인적인 꿈에 집중하고 있었죠.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배우’라는 직업이 저한테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나도 저 배우처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고, 화려함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극단 허드렛일 하면서 연기도 배우고, 무대에도 서보곤 했던 시절이었죠.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늘 ‘먹고 사는 문제’라는 현실에 부딪혔던 것 같아요. 과연 배우라는 직업으로 내 삶을 영위해갈 수 있을지,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을지, 주변 친구들은 다 군대 갔다 와서 공부하거나 취업하는데 나는 이 꿈 때문에 청춘이라는 기회비용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결국 꿈을 접었을 때 사회 일원으로서 낙오자가 되지는 않을지 등등 갈등이 참 많았습니다.

배우가 되자고 마음을 굳히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나 봅니다.

실패하면 되돌아 갈 곳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생각이었죠.  1, 2년 정도 연기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기로 했었는데, 참 당치도 않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지나니까 결단이 필요해지더라고요. 앞으로 내가 배우로 어떻게 살지는 모르겠지만,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봐야겠다는 결단이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대배우들 발끝도 못 따라간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25살 때 한예종을 다시 입학했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 때의 혼란기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전공이 뭐였나요? 한예종에 들어간 후엔 후회한 적 없나요?

생명공학 전공생이었습니다. 한예종에 들어간 후엔 단 한 번도 연기한 걸 후회한 적 없고요. 반대하던 가족들도 제가 한예종 들어간 후에는 ‘어차피 저렇게 할 걸, 그냥 더 일찍 시킬 걸’ 그렇게 말하더군요.(웃음)

20대 초반부터 인생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꾸준히 해왔나 봅니다.(웃음)

점점 사람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습니다.(웃음) 옛날에는 ‘진지’를 넘어서 좀 심각했죠. 특히 영화에 대한 얘기, 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게 되면 유독 진지해지곤 했습니다. 팬들은 저보고 ‘애늙은이, 할배’ 같다고 합니다. 약간 걱정인 건 앞으로 제가 연애를 하게 되면 영화와 연기 외에는 할 얘기가 없어져서 상대방이 재미없어할 것 같다는 겁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좀 넓어져야 할 텐데, 영화 얘기 밖에 할 얘기가 없어서 큰일이에요.(웃음)

앞으로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작품이 흥행을 한다고 해서 그 때 받은 사랑이 지속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배우는 매 작품을 통해서 계속 인정 받고, 대중의 사랑을 갈구해야만 하니까요.제가 참여하는 작품이 시간이 지나서도 꺼내볼 가치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작품만 계속 할 수 있다면 저는 앞으로도 보여드릴 게 많습니다. 대중의 신뢰를 받는 선배님들 보면 너무나 존경스러워요. 저도 그 길을 따가가고 싶습니다.

추석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나문희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죠. ‘원칙주의 9급 공무원캐릭터인데, 또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요?

휴먼 드라마 장르고, 그 안에서 잔잔한 재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그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박열>의 영향이 컸죠. 제가 조금 있으면 30대 후반이 되기 때문에 청춘의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모습을 지금 많이 남기고 싶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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