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송강호 “불타는 정의감 아닌, 그저 가장 기본적인 도리 ”

2017-07-18 11:01 차지수 기자

[맥스무비= 차지수 기자] 송강호가 최근 5년 간 연달아 시대극에 출연하며 ‘시대의 얼굴’로 등극한 이유는 그의 불타는 정의감이나 정치적 이념의 영향이 아니다.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의 진솔한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배우의 마음을 흔든 덕이다. 연기 21년차 송강호는 늘 그 신선함을 찾고 있다.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에서 큰 돈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를 찾았다가 예상치 못한 혼란에 휘말려 갈등하는 만섭의 얼굴로 인간의 도리에 대해 묻는다. 사진 쇼박스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에서 큰 돈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를 찾았다가 예상치 못한 혼란에 휘말려 갈등하는 만섭의 얼굴로 인간의 도리에 대해 묻는다. 사진 쇼박스

<택시운전사>가 올여름 예비 천만 영화처럼 비칠 정도로 기대가 뜨겁습니다.

시사회에서 보신 분들은 많이 울더군요. 박수도 잘 나오는 것 같아서 제작진 분위기가 고무적입니다. 저 역시 기분이 좋고요. ‘1980년대 광주’라고 하면 좀 무거운 이야기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그때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것을 극복한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다룬 지점이 참 좋았습니다.

‘5.18’ 소재라 정치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는 영화입니다.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촬영 당시엔 외부적 압박을 받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을 하겠다고 선택할 때도 그렇고, 촬영할 때도 그렇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위축감은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심리적인 위축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작품에 대한 제 소신이 꺾이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엔 <택시운전사> 출연을 거절했다고요. <변호인> 때도 한 번 고사한 적 있었죠?

두 작품 모두 같은 이유였습니다. 이 영화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제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지요. 일종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두려움이 아니라 과연 이 거대한 사건의 아픔을 내가 표현해낼 수 있을지, 혹시 누를 끼치진 않을지, 두 작품 모두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작품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지니 안 할 수가 없었죠.

출연 여부에 대한 피드백이 너무 빠른 탓은 아닐까요.(웃음) 

제가 대답이 좀 빠릅니다. 아마 제가 충무로에서 답을 제일 빨리하는 사람일 겁니다.(웃음) 보통 이틀 만에 결정하는데, 그게 감독이나 제작자한테 예의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아니라면 빨리 다른 사람과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줘야죠. 제 성격이 좀 급하기도 하고, 뭔가를 마음에 남겨둔 채 말 안 하고 있는 스타일도 아닙니다. 작품마다 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합니다. 어떤 작품은 몇 시간 만에 금방 답이 나오고, <택시운전사> 같은 건 고민이 더 길었죠.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의 미덕이 불타는 정의감보다는 인간의 도리를 하면서 살고자 했던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쇼박스
송강호는 <택시운전사>의 미덕이 불타는 정의감보다는 인간의 도리를 하면서 살고자 했던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노력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쇼박스

<밀정>(2016)의 이정출 역에는 최소한의 표정만 활용했습니다. <택시운전사>의 만섭을 연기할 때 중요한 건 무엇이었나요?

일단 택시 안에서의 얼굴로 모든 걸 표현해야 했고, 카메라 앵글도 다양하지 않아서 어렵긴 했습니다. 애드리브는 거의 없었습니다. <살인의 추억>이나 지금 찍고 있는 <마약왕> 같은 작품은 현장성을 기반으로 한 즉흥적이고 일상적인, 생동감 넘치는 애드리브가 큰 도움이 되긴 하죠. 하지만 <택시운전사>나 <밀정>, <사도>(2015) 같은 작품들은 텍스트, 배우의 감정, 표현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만섭의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밖에 없습니다.

20년 지기 유해진에 대세 신인 류준열까지, 이 조합에 대한 관객의 기대가 큽니다.

유해진 씨와 1997년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20년 만에 처음으로 같이 하게 됐네요. 선배로서 유해진 씨, 류준열 씨한테 참 고맙습니다. 지금 각자 다른 작품들에서 연기하는 것에 비해 작은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너무나 치열하게, 열심히 임해줬으니까요. 특히 류준열 씨는 눈매가 좀 세서 성격이 까칠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웃음) 실제로는 자기가 연기한 구재식 캐릭터와 똑같더군요. 밝고 건강한 친구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을 최대한 담담하게 따라가는 영화라 감정적으로 센 신들이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직접 연기한 배우에겐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입니까?

만섭이 딸에게 전화를 하는 신이 덜 정치적이라 좋았습니다. 그 배경엔 불타는 정의감이 아닌, 그저 사람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섭 입장에서는 ‘나의 안위도, 너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나와 함께 광주에 온 타인의 삶 역시 중요하고 나에겐 그것을 보살필 인간적인 의무가 있다’는 마음이었겠죠. 저는 이것이 <택시운전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인내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 아닐까요.

송강호는 연달아 시대극에 출연하는 이유로 한국영화계의 시류 그리고 현대극이 담아내지 못하는 시대극만의 신선한 시선을 꼽았다. 사진 쇼박스
송강호는 연달아 시대극에 출연하는 이유로 한국영화계의 시류 그리고 현대극이 담아내지 못하는 시대극만의 신선한 시선을 꼽았다. 사진 쇼박스

그리고 마치 감독이 의도한 것처럼 엔딩신에서 만섭이 광화문으로 향합니다.

완전히 우연의 일치입니다. <택시운전사> 촬영은 작년 10월에 끝났으니까요. 우연치고는 참 기가 막힌다는 생각은 듭니다. 홍대로 갈지 공항으로 갈지 고민하다가 광화문이 서울의 상징적인 곳이니 최종 결정한 것인데, 지난 1년을 돌아보니 그것이 마치 의도된 연출 같더군요.

이 영화를 통해 “마음의 빚을 갚고 싶다”고 말한 적 있는데, 바람이 이뤄질 것 같나요?

너무 거창하게 얘기했던 것 같아 후회되긴 합니다.(웃음) 제가 정의로운 투사라는 것은 아니고, 그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시절을 버텨낸 분들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쌓여 지금의 시대가 된 것이니까요. 누구든 마음의 빚이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택시운전사>가 그 빚을 갚는데 작은 역할이나마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고요.

배우 송강호는 이제 시대의 얼굴이라고 불립니다. 작품을 통해 연달아 격변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제가 시대극을 일부러 선택하는 것은 아니고, 한국 영화계의 시류를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현대물이 엄청 유행했는데, 어느 순간 소재가 고갈되더니 사극으로 넘어갔어요. 한동안 사극이 흥행이 잘 되다가 지금은 또 시대극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 또 시대극에는 현대극에서 발견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이 넓다 보니까 창작의 경계도 더 커요. 익히 아는 사건에서 새 인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요. 제가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신선한 이야기는 늘 갈망하죠. 저는 항상 신선한 시선을 찾고 있습니다.

연기만 21년째인 송강호는 자신도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으키는 건 휴식보다는 또 다른 작품이다. 사진 쇼박스
연기만 21년째인 송강호는 자신도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럴 때마다 그를 일으키는 건 휴식보다는 또 다른 작품이다. 사진 쇼박스

아직도 연기가 마음처럼 잘 안 돼서 힘든 순간이 있나요? 상상이 안 되긴 합니다만. 

표현이 안 돼서 힘들다기보다는, 원하는 표현이 안 나올 때 어려운 건 있습니다. 배우들은 누구나 다 표현은 합니다. 다만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했던 감정인가에 관한 문제에 부딪힐 때가 많지요. 그럴 땐 최대한 슬기롭게 그리고 빠르게 대처를 해야 합니다.(웃음)

누구나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면 매너리즘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21년 차 배우 송강호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요? 

저도 영화만 21년째인데 그런 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웃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고, 또 극복해야겠지요. 저는 그럴 때마다 좀 쉬긴 하는데, 사실 그게 또 쉰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결국 해결은,(웃음) 또 작품인 것 같습니다. 직장 다니는 분들도 아마 이직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닐 걸요? 정면돌파해야죠.

이번엔 천만 배우넘어 무려 일억 배우라는 수식어가 생겼습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저뿐만이 아니라 어떤 배우든 자기가 동원한 관객 수를 계산하면서 연기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폭소) 영화 홍보 차원에서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만들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지, 정작 배우들은 전혀 그런 개념이 없어요. 그게 중요하지도 않고요. 어디 진출한다거나, 상을 받는다는 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욕심이 있다면 그저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 하나입니다. 근데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욕심이라는 겁니다.

봉준호 감독과 차기작 <기생충>에서 인연을 이어갑니다. <괴물> <설국열차> 등에 이은 또 하나의 명작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아직 봉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단계라 저도 정확하게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만, 함께한 세월이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한 신뢰는 있습니다.(웃음) 아마 내년 상반기는 되어야 촬영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차지수 기자 / snowy@maxmovie.com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 maxpress@maxmovie.com
<저작권자(c) 맥스무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0/ 500
      사업자등록번호 211-88-91225 l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제2016-서울강남-02630호 l 대표이사 정이은
      ㈜아시아트리뷴 l 06054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 732, 세종빌딩 3층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 02730 | 등록일자 2013년 7월 11일 | 제호 맥스무비 닷컴 | 발행인 : 정이은ㅣ편집인 : 이은지

      Copyright ⓒ Asiatribune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