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萬世 |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사랑에 대한 상실감은 참을 수 없다”

2017-07-20 15:42 정유미 기자

[맥스무비= 정유미 기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클로즈드 노트>(2007)를 연출한 일본 멜로 영화의 거장이 만든 로망 포르노는 ‘짐노페디’의 선율처럼 아름답고 처연하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과거 닛카츠 로망 포르노를 동경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시나리오를 고쳐 써가면서 의욕을 드러낸 작품이다.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자의 상실감은 지금 일본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는 유키사다 이사오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로 일본 멜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로망 포르노에 대한 동경으로 닛카츠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진 오렌지옐로우하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로 일본 멜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로망 포르노에 대한 동경으로 닛카츠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사진 오렌지옐로우하임

닛캇츠 로망 포르노 리부트에 참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로망 포르노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도쿄로 상경했을 무렵, 닛카츠 영화사의 로망 포르노 조감독이 되고 싶어 문을 두드렸지만 이미 로망 포르노는 끝을 맞이하고 있었던 시기였어요. 그때 상당히 절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이번에 로망포르노를 다시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참여를 결정하고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처음에 쓴 로망 포르노 리부트 시나리오는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가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쓴 시나리오는 제가 어린 시절 배설을 하는 여성을 보고 성에 눈을 뜬 자서전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닛카츠가 시나리오를 허락하지 않아서 포기하려고 했었지만 닛카츠 로망 포르노의 계보에 제 작품을 꼭 올리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각본을 썼습니다. 그 정도로 로망 포르노에 대한 동경이 컸습니다.

로망 포르노 리부트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네 감독의 영화를 보신 소감을 들려주신다면요?

네 편을 전부 봤습니다.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의 <바람에 젖은 여자>는 해학과 작품의 독특한 리듬이 재밌었습니다. <암고양이들>(7월 27일 개봉)은 사회적 약자를 그린다는 점에서 역시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답다고 생각했지만, 포르노라는 의미에서 이색적인 매력을 느꼈고요.

소노 시온 감독의 <안티포르노>는 상당히 깊고 내성적인 영화인데, 그 카오스가 폭발하는 듯한 힘을 느꼈습니다. 특히 명확한 제작 규칙을 지키면서도 자유롭게 로망 포르노를 파괴한 점이 재밌었습니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화이트 릴리>(8월 17일 개봉)는 예전 닛카츠 로망 포르노의 계보에 부합한 작품이고, 닛카츠 로망 포르노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로망 포르노 리부트작업은 예전 로망 포르노 제작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제작 규칙이 있었습니다. ‘상영시간은 80분 전후, 촬영 기간은 1주일, 10분에 한 번씩 정사 장면이 포함되어야 할 것, 제작비는 46년 전과 같다는 규칙 때문에 연출이 어렵지는 않으셨습니까?

규칙을 싫어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생각한 점은 없었습니다. 7일 안에 찍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1주일 동안 일어나는 일을 그렸고, 극 중 1일을 실제 하루 동안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제작했습니다. 정사 장면이 많았지만 오히려 18세 관람 등급이어도 무방한 자유로움이 좋았습니다. 다만 캐스팅은 어려움이 좀 있었어요. 노출 경험이 적은 배우가 많았기 때문에 오디션을 상당히 많이 보았습니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모든 것을 잃은 채 무력한 삶을 보내는 영화감독이 1주일 동안 그를 위로하는 여섯 명의 여인들과 만나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 오렌지옐로우하임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모든 것을 잃은 채 무력한 삶을 보내는 영화감독이 1주일 동안 그를 위로하는 여섯 명의 여인들과 만나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 오렌지옐로우하임

한국 개봉명은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이고, 원제는 짐노페디에 흥분하다’(ジムノペディにれる)입니다. 에릭 사티의 모음곡 짐노페디를 작품의 모티브로 정하신 계기는요?

‘짐노페디’는 어린 시절부터 문란한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에릭 사티의 음침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이 남자 주인공 신지(이타오 이츠지)가 섹스할 때마다 나오면서 그를 속박하죠. 욕정을 억압하는 아름다운 선율에 고통스러워하고요. 그러나 그와 몸을 섞는 여자들은 흐트러져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네 편의 로망 포르노 리부트 영화들과 비교하면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차별점이 있습니다. 위기의 중년 감독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이 영화는 예전에 소문으로 들었던 소마이 신지 감독(닛캇츠 계약 조감독 출신으로 1980년대 일본 대표 감독.  롱테이크 촬영으로 청소년들의 심리를 담아냈다. 구로사와 기요시,  사카모토 준지 등 현재 일본 영화계를 이끄는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후에 닛캇츠로 돌아와 로망 포르노 걸작 <러브호텔>(1985)을 연출했다. 2001년 별세)의 일화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꽤 인기가 많은 분이셨다고 합니다. 매일 밤 다른 여자의 집에 묵었기 때문에 신주쿠에서 고쿠분지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갈 때까지 1주일이나 걸렸다더군요.(웃음)

소마이 신지 감독은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지만 정말 매력적인 분이셨습니다. 제가 조감독 시절에 들은 바로는 남녀를 불문하고 항상 누군가가 감독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한 유명 여배우가 제게 ‘옛날 영화감독들은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니까 너도 열심히 해봐’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소마이 신지 감독님만 한 인기 감독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동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영화감독은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그만큼 다루기 어려운 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감독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자기 영화에 애착은 있지만 자신은 없죠. 하지만 자기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싫어해요. 고집도 세고요. 신지라는 인물에게는 영화업계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감독들에 대한 질투심과 자신이 처한 환경을 어찌할 수 없는 울적한 감정을 강하게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젊은이들을 신지를 위협하는 존재로 설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클럽에서 젊은 영화인이 신지가 상을 받은 국제 영화제 이름이나 개최국을 놀리는 것처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장면처럼요.

영화에서 신지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 B급 성인 영화감독으로 전락한 상황입니다. 감독의 비애를 담고자 하신 건가요?

주위를 보면 굉장한 재능을 가진 감독들이 많지만, 상업적 파도를 타지 못해 흥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은 경력을 쌓을수록 감독들이 돈을 받지 못하고 점점 일하기가 힘들어져요. 다각적으로 지금의 영화계 현실을 보면 어쩔 수 없다는 기분이 듭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이타오 이츠지가 연기한 신지 후루야에 대해  “업계에서 한창 잘 나가는 감독들에 대한 질투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우울함을 강하게 이입시킨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오렌지옐로우하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이타오 이츠지가 연기한 신지 후루야에 대해  “업계에서 한창 잘 나가는 감독들에 대한 질투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우울함을 강하게 이입시킨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오렌지옐로우하임

주인공인 영화감독 신지를 연기한 주연배우 이타오 이츠지와 첫 작업은 어떠셨습니까?

이타오 이츠지는 배우이면서 영화감독이기 때문에 역할에 대해 사실적인 감정과 정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성 배우들과 호흡도 잘 맞았기 때문에 상당히 도움을 받았고요. 이타오 이츠지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그때 본 첫인상은 차분하고 현명했어요. 그 자리에 있던 여성들 모두 이타오 이츠지 배우가 매력이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지가 관객과 대화에 참여하는 장면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홍상수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이 영화감독이고 해프닝이 일어나는 관객과 대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인데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를 매우 존경하고요. 관객과 대화 장면은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와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저는 스토커 문제로 고민을 한, 트집이 잡힌 안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영화에 접목시켜 보았습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한국에서 일본 멜로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로망 포르노를 연출하면서 멜로 연출과 어떤 차이를 느끼셨습니까?

<사치스런 뼈>(2001) 발표 당시에 로망 포르노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요. 제 영화에는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갑니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에서는 살아야 하는데도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남자를 통해 상실감을 표현했습니다. 요약하자면 포르노도 멜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로망 포르노 <아! 여자들 외설노래 嗚呼!おんなたち 猥歌>(1981). 뛰어난 작품성으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던 쿠마시로 타츠미 감독이 연출하고,  일본의 록 가수 우치다 유야가 출연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로망 포르노 <아! 여자들 외설노래 嗚呼!おんなたち 猥歌>(1981). 뛰어난 작품성으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던 쿠마시로 타츠미 감독이 연출하고,  일본의 록 가수 우치다 유야가 출연했다.

이번 영화에서 과거 로망 포르노 작품을 오마주한 장면이 혹시 있습니까?

오마주를 할 의도는 없었지만, 닛카츠 로망포르노 <아! 여자들 외설노래 嗚呼!おんなたち 猥歌>(1981)는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우치다 유야)의 부인이 운전 중에 핸들을 건드려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장면이 있는데,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에서 신지도 같은 일을 겪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아! 여자들 외설노래>에서 우치다 유야 씨가 변두리의 레코드 가게 거리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그곳을 지나가다 멈춰 서서 노래를 듣던 여자에게 느껴지는 성적 매력이 강해서 ‘저 여자와도 섹스를 할까?’ 기대하며 봤는데, 하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에서 신지가 처음에 나오는 여자 스태프와 섹스를 할 줄 알았는데 하지 않아서 의외였다고 하는 관객도 있더군요. 아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작품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학생의 집에 간 신지는 여학생이 자는 동안 일본 사극 영화를 봅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명장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의 <고우치야마 소슌 河内山宗俊>입니다. 그 장면에 비친 젊은 여배우는 당시 무명 시절이었던 일본의 명배우 하라 세츠코입니다. 여학생이 영화를 전공하기 때문에 일본 고전 영화로 야마나카 사디오 감독의 작품을 볼 것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신지는 다섯 명의 여성에게 구애를 받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끝내 지키지 못합니다. 신지가 앞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사랑에 대한 상실감은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없을지도 몰라요. 슬픔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해답을 깨닫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하는 신지가 투쟁하듯 외치게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로망포르노 장르에 대해 “노골적인 성인물이 아니라 드라마가 있고 영화 속 인물들이 감정을 교감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말했다. 사진 오렌지옐로우하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로망포르노 장르에 대해 “노골적인 성인물이 아니라 드라마가 있고 영화 속 인물들이 감정을 교감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말했다. 사진 오렌지옐로우하임

마지막으로 극중에서 신지가 연출한 영화의 주연배우 안리의 대사를 빌어 질문을 드립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신가요?’

저는 누구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대중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듭니다. 어떠한 독자성이 공감대를 만드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영화입니다. 그래서 늘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촬영이라는 한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차기작 <나라타주 ナラタージュ>는 마츠모토 준, 아리무라 카스미, 사카구치 켄타로가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어떤 영화인가요?

영화가 이제 막 완성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든 멜로 영화입니다. 교사와 전 제자의 사랑 이야기로 아리무라 카스미가 섬세한 여성의 심정을, 마츠모토 준이 남자의 비애를 연기합니다. 잊을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니 꼭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정유미 기자 / youme@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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