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채소라 기자]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심사위원단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탄생하는 대상작이 5년 만에 탄생했다. 김현정 감독의 <나만 없는 집>이 대상을 포함해 3관왕의 영예까지 안았다. 주연 배우 김민서는 심사위원 특별상 연기 부문을 공동 수상했고,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나만 없는 집>은 11살 소녀 세영(김민서)의 일상을 담은 드라마 장르 영화다. 세영은 늘 혼자 빈집을 지키고 언니가 하는 걸스카우트를 시켜주지 않는 엄마와 아빠에게 서운하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에게도, 두 살 터울의 언니 선영(박지후)에게도 존재감이 흐릿한 세영의 서러움이 터지는 순간, 관객 또한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이 뭉클하게 끓어오르는 체험을 한다.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 유년 시절 우리가 살았던 집(가족)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김현정 감독을 만났다. 여전히 영화를 공부하고 배우고 있다는 김현정 감독이 튼튼한 집처럼 꼼꼼하게 지을 다음 영화가 몹시 기다려진다.
먼저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무려 5년 만에 나온 대상작의 주인공이어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미 작품상을 받았을 때부터 충격이었어요. 수상에 대한 생각보다 올해에도 대상은 없겠거니 생각하고 폐막식에 참석했거든요. 참석한 사람들도 최동훈 집행위원장님과 김성수 심사위원장님이 들고 오신 수상 봉투가 비어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다 최동훈 감독님이 “아, 나는 연기가 안 된다” 하시면서 엄태화 감독님이 올라와서 대신 대상작을 발표하시더라고요.(웃음)
<나만 없는 집>에 대한 여러 감상평 중에서 어떤 코멘트가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김옥빈 배우가 ‘정공법이 있다’고 말해주셨는데 굉장히 와 닿은 평가였어요. 숏이나 스토리를 정공법으로 써서 진심으로 감정을 담아내려고 했거든요. ‘왜 내가 대상을 받았을까?’ 생각해봤는데 정공법이 대상 수상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성희 감독의 공포 스릴러 <남매의 집>(2009), 엄태화 감독의 판타지 스릴러 <숲>(2012) 등 이전의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상작과 비교하면 드라마 장르인 <나만 없는 집>은 시각적 요소보다 서사의 힘이 더 큰 작품같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대상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상작들이 워낙 장르적인 색깔이 강하잖아요. 이전까지 색채가 강한 작품이 상을 받아왔다면, 이번엔 심사위원들이 울림이 있는 작품의 가치에 주목해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만 없는 집>은 멜로 장르영화 섹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에서 처음 나온 대상작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멜로 장르에서 말하는 사랑이 가족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상영작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순위를 매겼는데, 최우수 작품상 후보로 꼽은 영화도 남녀 간의 멜로였어요. 가족애, 가족 관계를 그린 영화에 상을 줄 거라고 생각을 못 했습니다.
열한 살 세영과 두 살 터울에 사춘기를 겪고 있는 언니 선영이 등장합니다. 자매의 이야기에서 동생을 주인공으로 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제가 둘째거든요. 영화적으로 더 강조될 것 같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나이 대에 제가 어른들한테 느꼈던 감정들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세영이는 늘 혼자 집에 있지만 존재감은 없어요. 제목처럼 세영의 소외감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언니의 책상을 몰래 살피거나 틴케이스를 보석함처럼 소중하게 다루는 모습 등 세영의 일상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표현했습니다. 세영과 김현정 감독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가요?
많이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기발한 소재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썼지만 만족하지 못해서 제 이야기를 쓰자고 하고 시작한 거였어요. 제 어린 시절을 반추해봤죠. 혼자 있던 기억이 많고, 그 경험이 지금도 제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어 했던 것도 제 경험이에요. 재미있는 소재를 고민하다가 생각났는데,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어서 가입 신청서에 부모님 사인을 대신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언니가 걸스카우트를 하니까 저도 당연히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세영의 모습이 저를 많이 담고 있을 거예요.
언니가 하는 건 따라 해보고 싶은 동생, 어린 동생이 하는 건 전부 못마땅하고 쌀쌀맞게 대하는 언니 두 자매의 관계가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무척 공감됐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다 “내 이야기”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무척 놀랐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담았는데 많은 분에게 공감했다는 반응을 듣고 있어요. 오히려 세영의 소외감을 조금 더 강조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외로웠구나, 싶었어요. 이제는 제 영화 같지가 않은 느낌입니다. 저만 느낀 줄 알았던 감정을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졌어요.
세영을 연기한 김민서 배우가 연기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김)민서를 캐스팅 한 결정적인 포인트는 소처럼 큰 눈이었어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눈이잖아요. 작품이 아이를 소외시키는 내용이라 세영으로 적합한 외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만나보면 정말 씩씩하고 밝은 친구예요. 카메라만 꺼지면 다른 아이들이랑 똑같죠.(웃음) 친구들이랑 잘 지내는 스타일인데도 카메라 앞에서는 확실이 조금 달랐습니다. 분위기나 이미지가 주는 힘이 강했던 것 같아요.
세영을 연기한 김민서 배우를 비롯해 출연 배우들이 대부분 아역이어서 연기 디렉팅도 세심하게 준비하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 윤가은 감독님의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습니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 디렉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겁이 많이 났거든요. 감정적으로 다치지 않게 다독이면서 연기 지도를 하긴 했는데, 윤가은 감독님만큼 내공이 안 돼서 충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세영을 연기한 김민서 배우는 실제로 외동이기 때문에 동생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간의 감정으로 대입시켜서 설명해줬습니다. 그렇게 설명하니 생각보다 잘 알아듣고 이해하더라고요. 제가 즉흥적인 걸 두려워해서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라 연습시간도 많이 가졌습니다.
영화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구조와 캐릭터를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합니다.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시나리오 쓰는 방법을 공부했어요. 저는 시나리오를 느낌으로 써내려가기보다 공부해서 익혀나갔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따져가며 시나리오를 쓰는 편입니다. 구조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배운 만큼 저도 그 중요성에 공감해요. 구조가 탄탄한 시나리오가 확실히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 전달도 잘 되고 감정이입도 수월하게 만드는 걸 느껴요.
처음 영화를 배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영화를 전공하지는 않았어요. 컴퓨터 공학과를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는데, 늘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답답했습니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 돈을 쓴다든지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니까 ‘내가 조금도 행복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 즈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거든요. 에세이만 쓰다가 스토리텔링 방식의 글쓰기가 궁금해서 사설 학원에서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대구에 있는 ‘판’이라는 영화 동호회를 통해 오성호 감독의 단편영화 <소나기>(2014)에서 처음 스크립터로 일하게 됐습니다. 영화 현장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후에는 최창환 감독이 운영하셨던 영화 워크샵을 찾아 들었어요. 그렇게 대구에 있는 영화‘판’ 친구들하고 연을 맺고 돕고 도움 받으면서 10편 이상의 단편영화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하는 비디오 가게 주인의 이야기를 다룬 첫 단편 <은하비디오>(2015)는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이미 수작으로 입소문이 난 작품입니다. <나만 없는 집>까지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여성의 삶, 그 중에서도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여성들이 가지는 사회적 위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당분간은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하고 싶어요. 남자 캐릭터도 몇 번 시도를 해봤는데 겉핥기밖에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생각하고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하게 되는 편입니다.
<은하비디오>의 은하(김예은)와 <나만 없는 집>의 세영 둘 다 혼자 지내는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인물들이 혼자 남겨진 감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건가요?
제가 소외된 것, 소외감에 대해 늘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은하비디오>는 이별한 여자 주인공이긴 하지만 소외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어요. 소외된 인물에 집중하게 됩니다. 앞으로 찍고 싶은 단편영화도 있고 장편영화도 개발 중인데, 그 작품들도 다 비슷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대상 수상이 앞으로 김현정 감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거창하지 않은 책임감을 갖게 됐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영화적인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공부도 많이 하고 시나리오 쓸 때도 더욱 노력해서 다음 작품도 조금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김현정 감독이 <나만 없는 집>을 만들며 참고한 영화 3
세 작품 모두 아이들의 성장통을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포착한 영화들이다.
<우리들>(2016) 감독 윤가은
“<우리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참고했다기보다 윤가은 감독님 인터뷰를 많이 찾아 읽었습니다. 윤가은 감독님은 정말로 아이들 눈높이에서 많이 맞춰주셨더라고요. 감정적으로 다치지 않게 다독이면서 연기 지도를 하긴 했는데, 윤가은 감독님만큼 내공이 안 돼서 충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단편영화 <리코더 시험>(2011) 감독 김보라
“ <리코더 시험>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져서 색감이 제 영화보다 더 뚜렷합니다. <나만 없는 집>의 시대 배경이 1998년도이기 때문에 미술을 어느 정도의 완성도로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참고했습니다. 미술이 정말 완벽한 작품이에요. ”<나무 없는 산>(2008) 감독 김소연
“톤앤매너를 잡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한 영화는 <나무 없는 산>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자매의 정서를 정말 많이 담고 싶었어요. 카메라가 이 자매를 계속 따라가는데 영화가 굉장히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