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종의 전쟁> 깊이 보기 | 유인원의 출애굽기, 차별과 혐오의 인간사를 비추다

2017-08-19 11:00 성선해 기자

[맥스무비= 성선해 기자] 차별과 혐오로 핍박받는 동족을 평화의 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이야기.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할리우드가 수없이 반복해 온 익숙한 영웅 서사로 완벽하게 독창적인 영화에 도달했다. 그 중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영웅의 이름을 얻은 유인원 ‘시저’가 있다.

위대한 지도자 시저(앤디 서키스)는 인간과 공존을 원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차별과 혐오, 폭압에 맞서 동족을 구해낸 그는 마침내 평화와 안식의 땅을 찾아 떠난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할리우드 고전 블록버스터의 핵심 서사인 ‘출애굽기’의 혁명적 변주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위대한 지도자 시저(앤디 서키스)는 인간과 공존을 원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차별과 혐오, 폭압에 맞서 동족을 구해낸 그는 마침내 평화와 안식의 땅을 찾아 떠난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할리우드 고전 블록버스터의 핵심 서사인 ‘출애굽기’의 혁명적 변주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장 10절)

이스라엘의 건국신화인 출애굽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주요 모티프다. 찰턴 헤스턴 주연의 <십계>(1956)부터 2000년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 시리즈까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큰 줄기를 이룬다. 수없이 반복되는 클리셰다. 그럼에도 이 탈출 서사가 건재한 이유는 분명하다. 위대한 지도자가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동족과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나아가는 드라마의 힘 때문이다.

한국에서 8월 15일(화) 광복절에 개봉한 <혹성탈출: 종의 전쟁> 역시 엑소더스의 반복이자 변형이다. <혹성탈출>은 유인원들의 리더 시저(앤디 서키스)와 인간의 대립을 다룬 시리즈로,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이십세기폭스사가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혹성탈출>(1968)로 시작된 시리즈를 43년 만에 리부트 한 3부작의 마지막 페이지다. 인간의 언어 기능을 상실시키는 ‘시미안 플루’가 전 세계에 퍼졌고, 멸종 위기에 놓인 인류와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유인원이 종의 운명을 걸고 최후의 전쟁을 벌인다.

종말을 예고하는 바이러스 확산과 최후의 전쟁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단골 소재다. ‘시미안 플루’는 유인원에 의해 퍼지는 것처럼 조작됐지만, 실은 인간이 개발한 신약의 변종 바이러스로 되레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이 된다. 매우 익숙한 이야기지만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가장 클래식한 방식으로 반전과 전복을 꾀한다. 영화는 성서에서 빌려 온 창세기와 출애굽기, 묵시록 등 은유와 비유가 포진해있다. 히든카드는 이 메타포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유인원’이라는 데 있다.

처음에는 지능이 높고, 인간처럼 사고하고 말하는 ‘특별한 유인원’이었던 시저는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 이르러 인류 역사 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리더로 꼽히는 모세를 연상시킨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사
처음에는 지능이 높고, 인간처럼 사고하고 말하는 ‘특별한 유인원’이었던 시저는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 이르러 인류 역사 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리더로 꼽히는 모세를 연상시킨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사

군인에게 납치당해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성벽을 쌓는 유인원들은 이집트인의 채찍에 신음하던 히브리인을 연상시킨다. 굶주림과 매질에 시달리는 동족을 보다 못해 “그만하라”며 맞서는 시저(앤디 서키스)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선지자 모세다. 유인원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고 가혹하게 탄압하는 대령(우디 해럴슨)은 당연히 냉혹한 파라오다.

출애굽기 서사만이 아니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는 성서에서 따온 상징과 암시가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우리는 시작이며 또한 끝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군인들은 '알파(Α)'와 '오메가(Ω)'를 표식으로 사용한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종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요한계시록 22장13절) 구절의 21세기적 구현이다. 또한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은 창세기 노아의 방주가 연상되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차용한 은유와 비유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편협하게 정의된 인간성을 향한 의구심이다. 출애굽기는 기독교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성한 건국신화다. 하지만 <혹성탈출: 종의 전쟁>에서 엑소더스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진화하기 전의 모습인 유인원이다. 유인원이 ‘스스로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이라 여기는 유대인의 역사를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하는 줄거리는 출애굽기의 상징성에 도전하는 꽤 발칙한 전개다.

역설적이게도 이 발칙함에 현실성과 공감대를 부여하는 건 차별과 혐오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다. 유인원과 인간을 둘러싼 비극은 그들을 정글에서 납치해온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시발점이다. 인류의 위협으로 간주된 시저 역시 인간의 손에 길러진 존재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진화론을 통해 인간에게 부여된 신화적 권리, 혹은 지구의 지배자라는 인간의 신념을 가차없이 부정한다.

시저가 처음 입 밖으로 낸 인간의 언어가 “No” 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사
시저가 처음 입 밖으로 낸 인간의 언어가 “No” 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사

인간은 시저에게 '반짝이는 눈'과 고도의 지적 능력을 선사했지만, 차별과 혐오도 겪게 했다. 시저는 말 그대로 천재다. 2세에 퍼즐을 풀었고, 또래 인간들보다 뛰어난 사고를 한다. 하지만 그의 지능과 재능은 귀여운 재롱에 불과했다. 결코 인격적 존중과 동등한 권리를 의미하지 않았다. 인간의 세계에서 그는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꼴을 한 이방인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입 밖으로 낸 인간의 언어가 “NO”란 점을 생각해보자. 유인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10여 년간 무리를 이뤄 체계화된 사회생활을 해왔지만, 인간은 그들을 욕망 실현의 도구이자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쇠창살로 둘러싸인 우리에 가둬 자유를 박탈했다.

부당함과 핍박에 눈을 뜬 시저와 유인원이 원하는 건 단 한가지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터전으로의 귀환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의 자유의지와 절박한 호소를 폭동으로 간주한다. 즉, 시저와 유인원은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추악한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다. 억압과 편견에 맞서는 약자들의 투쟁과 체제 전복은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또한 시미안 플루에 감염되어 언어 능력을 잃었지만 유인원과 마음을 나누는 소녀 노바(아미안 밀러)를 통해 공존의 희망도 잊지 않는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유인원의 출애굽기 서사로 인간의 폭력과 혐오를 거울처럼 비추면서도, 시미안 플루에 감염됐지만 살아남은 소녀 노바(아미안 밀러)를 통해 마지막 공존의 희망을 남겨둔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사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유인원의 출애굽기 서사로 인간의 폭력과 혐오를 거울처럼 비추면서도, 시미안 플루에 감염됐지만 살아남은 소녀 노바(아미안 밀러)를 통해 마지막 공존의 희망을 남겨둔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사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는 엄청나게 발달한 컴퓨터 그래픽 신기술로 고전 걸작 SF를 매끈하게 재포장한 눈요기용 블록버스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깔린 정치적 메시지와 인간성에 대한 탐구는 이 시리즈를 앞으로 40여 년 후의 관객도 다시 찾아보게 만들 21세기 클래식으로 격상시켰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지만 조금 다른 육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핍박 받는 유인원의 항거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진행 중이다. 인류 문명사는 곧 차별과 혐오에 맞선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모세와 유대인들이 억압을 피해 홍해를 가르고 약속된 땅으로 향한지도 몇 천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부색과 출신지, 성 정체성은 인간을 ‘그들과 우리’로 나누는 지표로 기능한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표어와 시청 광장을 수놓은 무지개 깃발이 말을 타고 총을 든 시저의 얼굴 위로 겹친다. 유인원의 출애굽기가 마치 잘 닦은 거울처럼 차별과 혐오의 부끄러운 인류사를 비춰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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