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萬世 | <매혹당한 사람들> 소피아 코폴라 감독 "여성에겐 희망이 있어야 한다"

2017-09-09 02:14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맥스무비=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매혹당한 사람들>(1971)은 한 해에 태어났다. 남성의 관점에서 그려졌던 돈 시겔 감독의 원작은 소피아 코폴라의 시선을 통해 여성의 내면을 그린 매혹적인 영화로 재탄생했다.

2017년 6월 뉴욕에서 열린 <매혹당한 사람들> 시사회를 찾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올해 열린 70회 칸영화제에서 <매혹당한 사람들>로  율리야 솔른트세바에 이후 56년 만에 여성감독으로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사진 TOPIC/ Splash News
2017년 6월 뉴욕에서 열린 <매혹당한 사람들> 시사회를 찾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올해 열린 70회 칸영화제에서 <매혹당한 사람들>로  율리야 솔른트세바에 이후 56년 만에 여성감독으로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사진 TOPIC/ Splash News

<매혹당한 사람들>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군인과 일곱 여인의 관계를 다룬 원작을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낸 고품격 스릴러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 클래식한 영상,  매력 넘치는 인물까지 영화에 매혹당할 요소들이 가득하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콜린 파렐 등 존재감 넘치는 배우들과 10여 년간 호흡을 맞춰온 앤 로스 미술감독과 스테시이 배탯 의상감독, 그리고 필립 르 소드 감독 등 베테랑 제작진이 대저택에 불러 모았다. 든든한 지원군들 덕분에 26일이라는 짧은 촬영 기간임에도 은밀한 욕망이 들끓는 여성의 세계를 치밀하면서도 우아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 <매혹당한 사람들>의 징검다리

<매혹당한 사람들>의 원작인 토머스 컬리넌이 1966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 시겔 감독의 영화는 언제 처음 접했나요.

친구이자 미술감독인 앤 로스가 돈 시겔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다시 만들었으면 한다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먼저 봤고, 그 뒤에 소설을 읽으면서 최대한 영화를 잊으려고 했습니다. 당시 남성의 관점에서 말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의 입장에서 재해석해보고 싶었습니다.

토머스 컬리넌의 소설은 작품에 어느 정도 반영했나요? 

소설에서 비현실적이라고 느낀 부분은 배제했습니다. 가능한 한 사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주인공 존 매버니를 연기한 콜린 파렐의 아일랜드 억양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원작에 등장하는 군인도 아일랜드 사람이었거든요.

시겔 감독의 동명 영화를 보면할리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찾아볼 없었어요.

원작의 모든 사건과 관점을 영화에 넣게 되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여인들의 심리를 밀도있게 그리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돈 시겔의 영화에서 다루는 노예 이야기나 근친상간 등의 내용은 담지 않고, 남북전쟁 기간 고립된 저택에 남겨진 어떤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 넘치는 존재감으로 영화를 채운 배우들

(왼쪽부터) 올해 5월에 열린 70회 칸영화제에서 열린<매혹당한 사람들>포토콜 현장. 배우 콜린 파렐, 앵거리 라이스, 애디슨 릭케, 엘르 패닝, 니콜 키드먼,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커스틴 던스트, 제작자 유어리 헨리가 함께했다. 사진 UPI 코리아
(왼쪽부터) 올해 5월에 열린 70회 칸영화제에서 열린<매혹당한 사람들>포토콜 현장. 배우 콜린 파렐, 앵거리 라이스, 애디슨 릭케, 엘르 패닝, 니콜 키드먼,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커스틴 던스트, 제작자 유어리 헨리가 함께했다. 사진 UPI 코리아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처음 작업한 콜린 파렐은빼어난 시나리오에 매료되어 영화에 합류됐다 이야기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맥버니 캐릭터는 어떻게 그렸나요? 

여인들에게 맥버니가 미지의 세계에서 온 듯한 신비감을 준다면 굉장히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버니가 아주 매력적인 남자였으면 했어요. 그가 불청객이 되는 건 전혀 원하지 않았습니다. 여자 입장에서 “그래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믿어줄게요”라고 할 정도로 치명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캐릭터였으면 했어요. 그 남자가 콜린 파렐이라면, 너무나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요.

신학교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지내는 여인들에게 군인 맥버니는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주는 아이러니한 존재입니다

여성에겐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에드위나 선생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이요. 맥버니는 매력적이지만 믿지는 말아야 할 남자, 그런데 자꾸 마음이 가는 남자로 그려집니다. 그는 흥미로우면서도 섹시하고 또 복잡해야 했어요.

여인들은 맥버니(콜린 파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고 경계하며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들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함께 모여 기도를 올린다. 사진 UPI 코리아
여인들은 맥버니(콜린 파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고 경계하며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들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함께 모여 기도를 올린다. 사진 UPI 코리아

니콜 키드먼은 신학교 교장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야하는 엄격함과 여성으로서 느끼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스 마사를 연기했습니다. 작품 구상 단계부터 니콜 키드먼을 떠올렸다고요. 

맞아요. 니콜 키드먼은 <패닉룸>(2002) <디아더스>(2001) 등 스릴러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배우입니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이미지는 제가 이야기를 상상하고 각본을 쓰는 데 도움이 됐어요. 니콜 키드먼 역시 여러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라는 섹슈얼한 설정을 마음에 들어했고, 흔쾌히 출연에 응해주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도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고요.

커스틴 던스트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1999), <마리 앙투아네트>(2006)에 이어 세 번째 작업입니다. 뮤즈이자 소울메이트로도 불릴 만큼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에서 유독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매혹당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여인 중에서 에드위나를 맡긴 이유가 궁금합니다.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에드위나는 순수와 욕망을 넘나드는 여인입니다. 일곱 명의 여인들 중에서 연기해야 하는 감정의 폭이 가장 큰 역할이었습니다. 사랑에 빠졌다가, 배신에 몸서리 치고, 결국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표출하니까요. 커스틴이 영화에 대해 “무언가 끓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발해버린다”라고 표현했는데, 에드위나 역시 그런 인물입니다.

엘르 패닝은 <썸웨어>(2010) 이어 번째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다섯 여학생 맏언니로 소녀와 숙녀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나요?

엘르 패닝은 올해 열아홉 살이에요. 실제로도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죠. 엘르 패닝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맞춤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몰입한 덕분에 캐릭터가 풍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여인들은 항상 예의와 격식을 갖추는 모습을 보인다. 식사 시간 화려한 드레스를 입거나 머리를 치장하며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사진 UPI 코리아
영화 속 여인들은 항상 예의와 격식을 갖추는 모습을 보인다. 식사 시간 화려한 드레스를 입거나 머리를 치장하며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사진 UPI 코리아

<매혹당한 사람들>을 작업하면서 시각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들이 있다면요?

피터 위어 감독의 스릴러 <행잉록에서의 소풍>(1975)부터 미국 초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싱거 서전트의 초상화, 남북 전쟁 시기의 모습을 촬영한 미국 사진작가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 작품을 살펴봤습니다.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1979)도 봤고요. 서스펜스 요소를 살리기 위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도 참고했습니다.

영화 속 여인들은 한 남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갈등 상황에서도 격식을 갖추는 모습을 통해 절제된 욕망을 드러내고자 한 연출인가요? 

맞아요. 그들은 서로 질투하고 의심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여성스러운 다정함과 예의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여인들의 깍듯한 태도가 영화의 마지막, 그러니까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까지도 지속된다는 설정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요.(웃음)

주연 배우들 못지않은 10 배우들의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개성을 잘 소화해냈고요. 그들을 캐스팅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캐릭터와 같은 또래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실제로 그 나잇대의 여배우들을 많이 만나며 직접 캐스팅 과정에 참여했어요. 그들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같이 있을 때는 어떤 느낌인지, 서로 너무 닮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습니다. 겹치는 캐릭터가 있으면 안 되니까요. 나중에는 가장 마음에 드는 배우들을 모아놓고 이 조합 저 조합 느낌이 어떤지 봤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이 가장 눈에 띄어 캐스팅 결정을 내렸습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느낀 그들 각자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우나 로렌스와 엠마 하워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틸다>에서 연기했던 배우들이었어요. 우나가 에이미, 엠마가 에밀리 역을 맡아 노래를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두 배우의 얼굴은 마치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의 초상화에서 본 듯한 이미지예요. 또, 앵거리 라이스는 정말 재주가 많은 배우입니다. 영화 속 새침데기 소녀 제인을 잘 소화했어요. 마리를 연기한 애디슨 릭케는 정말 재미난 친구인데, 알고 보니 제 딸 아이가 좋아하는 코미디 드라마 <더 썬더맨스>에 출연한 배우더라고요. 무엇보다 네 배우 모두 연기를 정말 잘해줬어요.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이 친구들이 함께 했던 모습을 한동안 잊지 못할 거예요.

# 소피아 코폴라의 든든한 지원군

스테이시 배탯 의상감독, 필립 르 소드 촬영감독, 앤 로스 미술감독 등 베테랑 제작진의 손길로 탄생한 <매혹당한 사람들>의 클래식한 영상과 빈티지한 소품들은 우아한 영화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사진 UPI 코리아
스테이시 배탯 의상감독, 필립 르 소드 촬영감독, 앤 로스 미술감독 등 베테랑 제작진의 손길로 탄생한 <매혹당한 사람들>의 클래식한 영상과 빈티지한 소품들은 우아한 영화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사진 UPI 코리아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여인들의 드레스 덕분에 영화가 훨씬 아름답게 그려졌습니다. 스테이시 배탯 의상감독이 가장 신경 쓴 것은 무엇인가요?

모든 배우는 스테이시 배탯 의상감독이 준비한 옷들을 입는 것만으로도 단숨에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어요. 스테이시는 매일 배우들의 허리둘레를 재며 몸에 꼭 맞는 의상을 직접 제작하는 열정을 보여줬죠. 전쟁 상황을 고려해 드레스 천을 일부러 빛바랜 것들로 준비하거나 여러 번 빨아 빈티지한 느낌을 주는 등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썼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2013)에 참여했던 필립 소드 감독이 촬영을 맡았습니다. 그가 촬영한 장면 가장 마음에 드는 신을 꼽는다면요. 

오프닝에 나오는 흩날리는 수풀이 가장 인상적이에요. 필립 르 소드 감독도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장면이에요. 고전 영화 <라쇼몽>(1950)의 수풀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했는데, 뉴올리언스 시티 공원에서 촬영했습니다.

앤 로스 미술감독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를 시작으로 <썸웨어>(2010), <블링 링>(2013)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4편의 영화를 함께했습니다. 앤과의 작업은 <블링 링>에서는 페리스 힐튼의 집, <매혹당한 사람들>의 메이드우드 저택처럼 세트가 아닌 실제 공간에서 이뤄지는데요. 두 사람이 이런 공간을 선호하는 이유가 뭔가요?

예전에 사진 작가로 활동했을 때도 스튜디오에서 일한 적이 없어요. 실제하는 공간과 스튜디오에 꾸며놓은 공간은 영화에서 볼 때 느낌이 다르거든요. 앤과 저는 영화에 현실감을 주기 위해 실제 공간에서 촬영하는 것을 좋아해요. <매혹당한 사람들> 역시 그 자체로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외관과 정원을 보여주기 위한 메이드우드 저택을 활용했고, 실내 인테리어를 위해 또 다른 집을 한 곳 찾아 촬영을 진행했죠. 시나리오를 쓸 무렵부터 앤과 영화의 배경에 대해 일찍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앤은 제 글에 도움이 되는 사진과 이미지들을 정리했는데, 장소를 찾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글 이지혜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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