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萬世 | <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감독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해 묻지 않고 살 수 있을까?”

2017-09-18 11:30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맥스무비=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여배우는 오늘도>는 단숨에 훑어보면 유쾌하지만, 음미할수록 다양한 질문이 마음을 파고드는 영화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무엇일까? 감독 문소리는 가슴 속에 담아 뒀던 질문을 ‘배우 문소리’의 민낯으로 술술 풀어낸다. 배우 문소리의 모든 영화가 그랬듯, 감독 문소리의 첫 영화도 우리를 삶의 민낯과 마주보게 한다.

배우 문소리의 삶을 소재로 문소리가 직접 연출한 영화<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감독은 마치 자기 이야기 같았다는 관객의 반응이 가장 반갑다고 말한다. ⓒ 맥스무비 오건 (에이전시 테오)
배우 문소리의 삶을 소재로 문소리가 직접 연출한 영화<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감독은 마치 자기 이야기 같았다는 관객의 반응이 가장 반갑다고 말한다. ⓒ 맥스무비 오건 (에이전시 테오)

#배우 문소리, 감독 문소리 되다

9월 14일 개봉한 <여배우는 오늘도>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만든 단편 <여배우>(2014), <여배우는 오늘도>(2014), <최고의 감독>(2015) 세 편을 묶은 영화입니다.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장편다운 완결성이 돋보입니다. 처음부터 장편으로 이을 계획이었나요?

개봉하는 순간을 계획했던 건 아니에요. 누군가가 세 편을 엮어 장편으로 완성할 수 있겠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그걸 목표로 한 적은 없어요. 그냥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만약 개봉 못 했다면 관객으로서 서운했을 것 같습니다. 감독으로선 억울했을 것 같고요.  

아네요. 사실은 개봉할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과연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싶었고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이 “배우 문소리의 삶을 소재로 했지만, 이 시대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함께 보면 좋겠다”고 응원해줬어요. 마침 영화진흥위원회의 ‘2017년 저예산 영화 개봉지원작’에 선정되서, 개봉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개봉해볼까?’ 용기를 내게 됐죠.

시사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시사 이후 들었던 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평이 있다면요?

평이라기보다 가장 반갑고 고마웠던 말이 있어요. “여배우의 삶은 뭔가 나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이야기 같다.” 그 말이 가장 고마웠어요.

<여배우는 오늘도>를 보면서 ‘감독 문소리의 가장 완벽한 페르소나는 배우 문소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직접 카메라를 잡는 것과 그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일입니다만, 감독과 주연 배우의 궁합이 훌륭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게 밸런스 조절 같아요. 제가 감독도 하고 배우도 하면서, 그 사이 밸런스를 맞추는 데 신경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더 힘든 건 서로 입장을 바꿔보는 일이더군요. 내가 배우라면? 감독이라면?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게 참 어려운 과제였어요. 감독으로서도 배우로서도 최대한 주장하지 않으려 노력 했습니다.  가능한 한 힘을 빼고 바라보기로 했죠.

배우로 살아온 18년 세월만큼 배우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는 문소리다. 직접 연출을 하고난 뒤에는 감독들이 느꼈을 외로움까지 헤아리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사진 필앤플랜
배우로 살아온 18년 세월만큼 배우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는 문소리다. 직접 연출을 하고난 뒤에는 감독들이 느꼈을 외로움까지 헤아리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사진 필앤플랜

거의 도를 닦는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배우의 삶이라는 게 정말 ‘화려한 도’를 닦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는 굉장히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어마어마한 절제를 요구하는 일이거든요. 자기 수양의 연속이죠.

배우 뿐 아니라 감독으로 도를 닦아보니 어떠셨나요?

제가 감독들의 고충을 많이 이해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같이 사는 사람(남편 장준환 감독)도 감독이잖아요. 그런데 직접 감독이 되고 보니 제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고통의 한가운데 놓인 사람들이더군요. 늘 배우가 외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이 더 외로운 존재였어요. 배우일 때는 스태프들이 참 부러웠어요. 팀 작업을 하는 동료들이 울타리가 되어주잖아요. 배우는 상대 배우가 있지만, 늘 혼자 사투를 벌인다는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감독은 더 외로운 직업 같습니다. 모두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 중심에서 계속 외로운 결단을 내려야 하니까요. 감독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깊어졌죠. 더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감독으로서 외로운 현장을 경험하면서, 아른아른 생각나는 감독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얼굴이 떠오르던가요? 

다 생각나죠. 그런데 <오아시스>(2002) 찍고 나서 이창동 감독님이 단편 한번 찍어보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라 “할머니와 손녀 이야기 어떨까요?”라고 여쭤봤어요. 그 말에 감독님이 “자투리 필름 다 줄 테니 찍어봐”라면서 응원해주셨는데, 당시에는 <바람난 가족> 출연하고 이것저것 바빠서 결국 못 했어요. 아, 이제야 찍네요, 감독님.(웃음)

배우 문소리의 출연작 중에 감독 문소리가 리메이크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영화를 찍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나보내는 편이에요. 뒤돌아보거나 못 빠져 나와서 힘들어하지 않죠. ‘할 만큼 다 했다. 잘 가라. 안녕’ 하고 잘 헤어지거든요. 그러다보니 리메이크는 생각 안 해봤어요.

혹시 내가 찍으면 더 잘 찍을 수 있어’라는 생각을 했던 작품은 없나요? 

어휴, 그런 것도 없어요. ‘연출해볼까?’ 생각이 든다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꼭 할 거예요. ‘나보다 더 잘 만들 사람 있지 않겠어? 생각 안 나?’ 더 잘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서 “감독님 우리 이런 영화해요. 저 출연 할게요”라고 제안할 거예요. 그런데 만에 하나 천에 하나, 그럴 일 없겠지만(웃음), ‘이건 내가 연출에 강점이 있을 것 같아’라고 판단하면 고생스럽더라도 욕심을 낼 수 있겠죠.

문소리는 18년 연기 인생 동안 만난 수많은 감독 모두가 스승이라고 이야기한다. <오아시스> 이후 신인 감독들의 단편 영화 7편에 출연했던 경험 역시 연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맥스무비 오건 (에이전시 테오)
문소리는 18년 연기 인생 동안 만난 수많은 감독 모두가 스승이라고 이야기한다. <오아시스> 이후 신인 감독들의 단편 영화 7편에 출연했던 경험 역시 연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맥스무비 오건 (에이전시 테오)

# 영화 속 배우 문소리

<여배우는 오늘도>는 배우 문소리의 삶을 소재로 삼았지만, 에피소드는 모두 영화적 허구입니다. 그 점이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이 문소리 진짜 저럴 거야라고 생각하는 지점을 허구로 만들어낸다는 것,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기는 본질적으로 진짜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가짜거든요. 내가 원래 그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가짜를 동원해서 진짜처럼 만들고 믿게끔 하니까요. 배우의 삶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내가 생각하는 나, 그 속에서 진짜인 나와 가짜인 나, 이것들이 섞이고 공존합니다. ‘왜 이렇게 헷갈려’, ‘고통스러워’하면서 힘들어하지 말고, ‘이런 것들을 내가 더 재미있게 활용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관객에게 ‘이거 진짜야 가짜야? 얼마만큼 실화야?’ 이런 재미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 SNS에서 니콜 키드먼, 케이트 윈즐렛, 우마 서먼, 줄리안 무어, 제시카 차스테인 등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노 메이크업 사진이 화제였습니다. “이것이 인생을 담은 배우의 얼굴이고, 아름다움이다”라는 선언이었죠. 이번에 스크린을 가득 채운 문소리 감독의 진심 어린 민낯을 보니, ‘, 배우 문소리가 한 수 위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여배우의 삶, 이렇게까지 까도 되나?(웃음) 영화니까 더 용기를 냈죠. 영화라는 틀 안에 진짜와 가짜, 현실과 판타지가 섞여 있잖아요. 현실을 현실로만 받아들이면 힘들 텐데 그것을 영화로 풀어서 우리가 함께 나누다보면 웃게 되지 않을까? 이 안에서 재미나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니까 해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영화에 예쁘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각 장에 따라 젊음의 아름다움, 배우의 아름다움, 예술의 아름다움 등 다층적인 의미로 전달됩니다. ‘예쁘다라는 단어에 대해 고심하신 흔적이 드러나는데요.

제 외모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려는 건 아니었습니다.(웃음) 예쁘다, 안 예쁘다 말할 처지도 아니고 시기도 아니에요. 전혀.(웃음) 어릴 때는 그런 이야기가 신경 쓰이기도 했죠. 지금은 제 모습에 매우 만족하고, 좋아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 여성이 내가 예쁜가 안 예쁜가? 남들이 내 외모를 어떻게 볼까? 고민하고 살잖아요. 하지만 내가 진짜 나답게, 멋있게,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진짜 아름다움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름다움을 예술이, 영화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배우 문소리의 아름다움에 탄복한 건 <아가씨>였습니다. 등장하는 순간 압도당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굉장히 고심했거든요. 출연 장면이 몇 신 없는데, 어떡하나. 일본 귀족 역할이잖아요. 박찬욱 감독님에게 “일본 배우를 캐스팅하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반문했거든요. 감독님이 “문소리 배우랑 작업해보고 싶은데, 안 되나요”라고 당황하셨어요.(웃음) 불안해서 일본어 대사 연습도 열심히 했고요. 히스테릭하면서도 절개가 있고, 강하지만 학대받은 고통이 있는 여성을 어떻게 그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힘있게 나와서 다행이었어요.

그런 힘은 문소리 만의 것이죠. 그래서 문소리에겐 ‘최고의 배우’라는 뜻으로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수식을 붙이곤 합니다. 1장에 딱 그 얘기가 나와서 한참 웃었습니다. 한국의 메릴 스트립은 문소리야라는 친구의 말에 네가 더 짜증나라고 쏘아 붙이잖아요. 

예전에는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황스러웠어요. 내가 왜?(웃음) 물론 존경하는 배우지만, 문소리는 문소리니까요. 제 2의 누군가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그리고 마치 그가 갔던 길을 내가 가야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지금은 좋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 반만 가도 영광이죠.(웃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말이 다 칭찬이고 호의였던 거죠. 한때 “내가 무슨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야”라며 짜증 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메릴 스트립 씨에게 사과드립니다. 지금은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니, 죄송해요. 진짜 존경하는데. 이 영화 개봉 결정하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 메릴 스트립 언니한테 영상편지 보내야 하는 거 아니니? SNS 계정 좀 알아볼래?”(웃음)

문소리는 문소리다. 그는 나답게, 멋지게,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진짜 아름다움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진짜 아름다움에 대해 영화가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맥스무비 오건 (에이전시 테오)
문소리는 문소리다. 그는 나답게, 멋지게,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진짜 아름다움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진짜 아름다움에 대해 영화가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맥스무비 오건 (에이전시 테오)

# 영화에 담긴 가족 

여러 강렬한 배우들이 있지만, 남편 장준환 역의 장준환 감독이 이 영화에서 최고의 캐스팅 아닐까요?

보통 사람과 다른 남편 특유의 리듬이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리듬을 정확하게 구현해낼 배우를 찾지 못했죠. 그래서 남편에게 직접 부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리듬이 영화에 큰 웃음 포인트가 되더라고요.

캐스팅 과정이 쉽지는 않으셨다죠.

출연 제안을 했을 때, 자기 인생 중 체중이 가장 많이 나갔던 때라면서, 이대로는 화면에 나갈 수 없다더군요. 외모 자신감이 한창 떨어져 있어서.(웃음)

그래서 뒷모습 출연으로 합의를 보셨군요. 장준환 감독 특유의 리듬을 보여준 대사 중에 술을 좀 줄여요가 인상적이었어요

실제 남편은 늘 제게 술을 마시라고 권해요. 몇년 전에 제가 100일 동안 술을 끊었는데 술 안 먹는 문소리와 살기 싫다더군요. 제가 할머니 돼도 남편이랑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대요. 요즘도 제가 금주 중인데 계속 “나랑 한잔해요”라면서 꼬드겨요.(웃음) 그래서 술을 줄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연기가 자연스러운 걸 보니 아마 속으로 그런 마음이 있었을지 모르죠. 어쩌면 그 마음이 제 마음이기도 했을 테고요.

영화 속 문소리는 "힘들면 쉬어야지. 나는 힘들면 쉴거야"라고 말하는 연두의 울음에 잠시 할 말을 잊는다. 일과 가정, 어느 것도 놓을 수 없는 일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사진 필앤플랜
영화 속 문소리는 "힘들면 쉬어야지. 나는 힘들면 쉴거야"라고 말하는 연두의 울음에 잠시 할 말을 잊는다. 일과 가정, 어느 것도 놓을 수 없는 일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사진 필앤플랜

딸 연두 역할의 아역 배우도 연기를 참 잘하던데요. “힘들면 쉬어야지라면서 울먹이는데 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더라고요.

아이들이 참 별 얘기 아닌데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할 때가 있잖아요. 우리 딸(연두)도 종종 그래요. “엄마는 영화가 왜 좋아진 거야?” 이런 질문도 하고. 그래, 어쩌다 그랬을까.(웃음)

이제 연두도 많이 자랐겠어요

벌써 일곱 살이에요. 이제 아가씨 태가 물씬 나죠. 최근에 어린이 뮤지컬을 같이 봤는데 “엄마, 뱀이 좀 잘하지?”라면서 연기 평도 하시고.(웃음)

연두가 연기 욕심은 없나요?

그런 얘기는 잘 안 하더라고요. 남편 장준환 감독의 차기작 <1987>에 한 신 나와요. 남편이 시나리오 쓸 때부터, 딸과 조카를 출연시키겠다고 생각한 장면이 있어서 아이들 데려가서 촬영하고 왔어요. 그러더니 장준환의 세계에서 최고의 여배우로 등극했더군요. 문소리를 제치고 장연두 씨가요. 제가 보기엔 무난한데 딸바보 아빠는 눈에 콩깍지가 씌인 거죠.(웃음)

배우의 일상이지만, 비슷한 나이 대의 여성들과 일하는 엄마들이라면 ‘내 얘기’라고 공감하면서 많이 웃다가도 가슴 찡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웃었던 장면이 궁금합니다.

저는 못 웃어요. 제 모자란 점만 보이니까, 내내 심각한 표정으로 봤어요. 관객들이 웃어주시면 ‘아, 다행이다’하면서 봤죠.

그럼 영화를 보면서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이유이긴 한데, 2장에서 노인전문병원에서 노래교실 수업하는 어르신들이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짧게 지나가는 장면인데, 실제 병원에서 노래교실 하시는 걸 촬영했거든요. 거기 앉아있는 어르신 중에 실제 제 시어머니가 계세요. 뒷모습 옆모습이 슬쩍 보이죠. 시어머니께서 작년 10월에 돌아가셨어요. 영화 후반 작업하면서 영상을 확인하는데 어머니 모습을 보니까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잘해드리지 못한 것들도 생각나고, 울컥했죠.

영화에서는 잠깐 스쳐 가는 장면에 남다른 사연이 있었군요.

또 한 가지 묘한 일도 있었어요.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저랑 남편이 경황이 없어 제 아버지께서 장례식장을 예약하셨어요. 집에서 가깝고 정갈하다고 하셨어요. 상을 치르려고 갔는데, 그 빈소가 제가 정확하게 영화 3장을 찍었던 곳이었어요. 같은 장례식장을 잡는 것도 쉽지 않지만, 수많은 빈소 중에서 바로 그 곳일 줄이야. 그곳에서 장례를 처음 치르지만, 마치 처음이 아닌 것처럼 치를 수 있었어요. 장례식장 음식이나 진행 과정을 영화 찍으면서 다 경험해봤으니까요. 묘한 인연이라서 정말 깜짝 놀랐죠.

감독님 전용 포즈를 취해달라는 제안에 문소리는 거침없이 팔짱을 끼더니 먼 곳을 응시했다. 여기에 청량감 넘치는 미소를 더해 문소리 감독만의 포즈를 완성했다. ⓒ 맥스무비 오건 (에이전시 테오)
감독님 전용 포즈를 취해달라는 제안에 문소리는 거침없이 팔짱을 끼더니 먼 곳을 응시했다. 여기에 청량감 넘치는 미소를 더해 문소리 감독만의 포즈를 완성했다. ⓒ 맥스무비 오건 (에이전시 테오)

# 아름다움, 예술 그리고 인생이란?

3장의 장례식장 벽에 비췄던 영상이 마음을 많이 울렸습니다. 영화와 영화인을 향한 문소리 감독님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굉장히 평범한 영상 같지만,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감독의 정의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상은 직접 촬영하신 건가요? 

많은 사람들이 찍은 영상이 섞여 있어요. 대부분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을 붙여놓은 거예요. 그중에는 연극연출가 이상우 선생님이 보내주신 영상이 많아요. 선생님께서 문득문득 강원도 고성의 자연, 새, 파도, 모래, 하늘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휴대전화로 보내주시거든요. 주로 새벽에 휴대전화 메시지로 오는데, 잠이 깨 그 영상을 보면서 참 많이 위로받았어요. 사람들이 왜 무언가를 찍는가, 그것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찍고,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마음이 정말 대단하고 아름다운 거구나. 그런 생각을 담아 만든 영상입니다.

직접 찍은 영상도 들어갔나요?

영화 촬영 장소 때문에 한창 바쁘게 헌팅 다닐 때였어요. 식구들이 서해안에 갯벌 체험하러 놀러 갔는데, 딸이 “엄마, 엄마도 왔으면 좋겠어” 그러는 거예요. 부랴부랴 운전해서 서해안으로 달려갔죠. 기절할 정도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갔는데, 안개가 자욱해서 애를 찾을 수도 없었어요. 겨우겨우 만났는데, 딱히 뭐 할 게 있나요. 저는 그냥 안개 속에 앉아 있고, 애는 모래를 파고. 그러다 문득 뿌옇게 안개 낀 모래사장에 비닐이 날아다니는 걸 보는데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면서도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었어요. 결국에 그 영상이 마지막에 쓰였죠. 인생이라는 게 참, 계획대로 되는 것도 없고 가끔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잖아요. 그런데 결국 그것이 쓰임이 있어요. 신기하게 누군가 설계한 것처럼.

영화 속 영상을 통해 나누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언제부턴가 영화를 큰돈이 오고가는 부귀영화의 수단이나 비즈니스로 바라보는 경향이 생겼어요. 그러나 원래 영화가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우리에게 영화가, 당신에게 영화가 주는 다른 의미가 있죠. 그런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죠.

<여배우는 오늘도>는 예술에 대한 고찰, 예술가로서의 정의까지 이야기를 뻗어나갑니다. 어려운 질문이죠.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제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아주 오래된 질문들이었어요. 예술은 도대체 무엇인지, 영화는 예술인지 아닌지, 누가 예술가인지 아닌지, 배우는 예술가인지 아닌지. 예술과 상관없이 살 것인지, 좇아서 살 것인지, 좇는다한들 내가 예술에 닿을 수 있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하고 관심은 있는데, 복잡하니까 답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죠. ‘먹고살 만하니까 그냥 살자’ 이렇게 넘겨버리기도 하고요. 그러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미술을 감상하는 것,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과연 예술에 대한 질문을 내려놓고 살 수 있을까요? 전 그 질문을 피하고 살 수가 없더군요. 제 삶에서 예술을 지우고는 못 살겠는 거예요.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질문을 고민하지 않고, 답을 구하지 않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질문에 대한 답은 찾으셨나요? 영화의 대사에서 길을 얻긴 했습니다. ‘될 때까지 하는 것’

아직도 그 답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생각은 있지만 그 생각이 변할 수 있죠. 예술에 대한 질문을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절반의 몫을 해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은 어때요?’라고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고 함께 고민하는 거죠. 그렇게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집안에 감독이 둘인 건 너무 힘들다”고 하셨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문소리 감독의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연출료가 장준환 감독이 더 높아서.(웃음)

배우 뿐 아니라 감독 문소리를 롤 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그런 거 없어요. 각자의 방식대로 사는 거죠. 저나 열심히 잘할게요.(웃음) 속으로 자신에게 ‘너나 잘해’, ‘네, 저 열심히 할게요’ 이러고 있어요. 다만, 누구나 오르내림이 있잖아요. 내림의 순간에는 더 재미있게, 건설적으로 나아갔으면 해요.

진행 , 이지혜 | 글 이지혜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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