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름 심재명 대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제작사가 많아져야 한다”

2018-01-24 12:06 성선해 기자

[맥스무비= 성선해 기자] 명필름은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인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충무로를 이끈 선두주자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명필름은 또다른 도전을 감행하며 스스로 시험대에 올랐다. 바로 현장에서 나고 자란 영화인 양성이다. 명필름랩은 그들의 요람이다. 2018년은  크레딧을 보지 않아도 '명필름이 만들었구나'를 짐작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는 기념비적인 해가 될 예정이다. 심재명 대표는 명필름의 작품이 다른 영화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 심재명 대표의 책임감과 소명의식

영화 마케터 출신인 심재명 대표는 1995년 영화 제작사 명필름을 설립했다. ⓒ맥스무비 임영웅 (시티 카메라)
영화 마케터 출신인 심재명 대표는 1995년 영화 제작사 명필름을 설립했다. ⓒ맥스무비 임영웅 (시티 카메라)

지난해에는 <눈발><7호실><아이 캔 스피크>가 개봉했습니다. 1년에 세 편을 개봉하느라 많이 바쁘셨겠어요.

창립 이래 2016년 유일하게 개봉작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2017년을 준비 중이었거든요. 바빴고, 때로는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어요. <눈발>의 경우 명필름랩 1기인 조재민 감독의 작품입니다. 상업 영화와는 제작 과정과 결이 달랐어요. 성과에 대해서는 기대를 더 많이 했기에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작품에 좋은 의미를 부여해주신 시선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23년 동안 30편이 넘는 작품을 제작하셨습니다. 2016년 맥스무비가 선정한 파워 크리에이터에 선정되신 적도 있고요. 영화제작자로서 끊임없이 발로 뛰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 2016 파워 크리에이터 30 | 미래의 씨앗을 뿌린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영화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웃음)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에 해당하는 90년대 중후반과 비교하면 최근 제작자의 역할이 많이 축소된 것 같습니다. 저와 출발시기가 비슷한 동년배들이 요즘 많이 안 보여요. 위축돼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 역시 요즘은 벅차고 힘이 듭니다. 영화란 획득된 기술을 적용한 매뉴얼로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새로운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환경에 적응해야 하죠. 하지만 영화계 안에서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절 움직이게 합니다. 제작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영화학교인 명필름랩이란 곳도 만들었어요. 여기에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공간도 운영 중입니다. 바퀴를 멈추지 말고 굴려야 하는 상황인 거죠.

심재명 대표는 서울극장-합동영화사 기획실 마케터 출신입니다. 마케터로서의 경험이 제작자로서 가장 도움이 될 때는 언제인가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접속>(1997) 등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기념비적 작품은 명필름이 제작했다. 사진 <공동경비구역 JSA> <접속> 포스터
<공동경비구역 JSA>(2000) <접속>(1997) 등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기념비적 작품은 명필름이 제작했다. 사진 <공동경비구역 JSA> <접속> 포스터

시장의 니즈와 관객의 성향을 읽어내는 능력이 아닐까요. 연출부나 제작부에서 시작한 분들에 비해서는 영화계 환경과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편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마케팅 감각이나 기획 능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함께하는 사람들을 묶어서 완성하는 쪽에 가깝죠. 저 역시 마케터에서 제작자로 업종을 바꾸면서 영화에 대해 새롭게 배운 셈입니다.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 제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시나리오의 완성도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게 의미 있는 메시지이건 재미이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선명하게 보여야 해요.

힘들 때마다 찾게 되는 영화가 있습니까?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궁금합니다.

<빌리 엘리어트>(2001)와 <라이프 오브 파이>(2013), <브로크백 마운틴>(2006)입니다. (☞ 히스 레저 사망 10주기, 심재명 대표가 꼽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명장면) <빌리 엘리어트>는 10번도 넘게 봤어요. 비디오테이프와 DVD로는 물론이고 최근 재개봉했을 때도 챙겨봤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도 여러 번 다시 봤어요.

영화사를 만들고 첫 작품이 <코르셋>이었으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카트>(2014) 등 그간 여성 배우와 감독이 중심에 선 영화를 많이 제작했습니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가 수면으로 올라왔었죠. 저 역시 여성 영화나 여성 영화인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되도록이면 여성 감독의 영화, 여성주의적 시각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사실 상업영화 안에서 여성 감독의 숫자는 굉장히 적습니다. 5~10% 정도에요. 독립영화에 비해서 여성 감독의 입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현업에 종사하는 여성 영화인으로서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사단법인 여성 영화인 모임에서 성 평등 센터 <든든>을 설립했습니다. 저와 임순례 감독이 센터장을 맡았어요. 2월 말에 개소식을 해요.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영화 산업 내의 성 평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노력하고자 합니다.

최근 명필름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다룬 <카트>,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 <7호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 <아이 캔 스피크> 등을 제작했습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많이 담은 영화를 제작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아이 캔 스피크>, 을과 을의 투쟁기인 <7호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주인공인 <카트> 등 명필름은 유독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아이 캔 스피크>, 을과 을의 투쟁기인 <7호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주인공인 <카트> 등 명필름은 유독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세상을 바라보는 명필름의 시각이 담겨있는 거죠. 물론 저도 감각적이고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영화에 녹여내는 걸 더 흥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주로 여성 문제나 노동자의 삶, 청년 실업 등이죠. <7호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을과 을의 웃기지만 슬픈 현실을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상업영화로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출발할 때부터 10억짜리 저예산 영화로 제작했었어요. 이용승 감독은 전작 <10분>(2014)이 굉장히 좋아서 함께 작업을 했었습니다. <7호실>이 손익분기점에는 도달하지 못해서 선배 영화인으로서 미안한 감이 좀 있죠.

여성 영화 제작자가 더 많이 나오려면 어떤 게 바뀌어야 할까요?

영화계가 여성 제작자를 꺼리는 것 같지는 않아요. 천만 클럽 영화들을 만든 제작자들 중 여성도 많습니다. 할리우드나 유럽에서 여성 제작자의 비율은 10~15% 정도입니다. 한국도 비슷해요. 그런데 유독 영화감독에 대해서는 리더십과 조직력 등이 연출에 필요하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영화감독이 적은 이유죠. 제작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요. 연출자나 현장 쪽에서 여성이 더 늘어나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국내 영화사는 300곳에 달합니다. 하지만 명필름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영화사는 손에 꼽습니다. 좋은 영화사가 많이 나오려면 어떤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까요?

심재명 대표가 '밝을 명'을 써서 직접 지은 사명 명필름에는 세상을 밝힐 영화를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밝을 명'을 써서 직접 지은 사명 명필름에는 세상을 밝힐 영화를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명필름

1990년대 중후반부터 탁월한 제작자들이 의미 있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왔습니다. 지금은 제작자의 역할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생겼어요. 스타 감독들은 자신의 제작사를 차려서 투자사와 직접 계약을 하죠. 제작자의 역할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많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는 거죠. 흥행의 양극화랄까요. 천만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도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어요. 할리우드만 해도 상업 영화계 안에서 제작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요. 자기 목소리를 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제작사의 숫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 제작사를 꿈꾸는 취업 준비생이 명필름에 입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펙이나 학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얼마나 영화 일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반짝이는 재능보다는 근본적인 태도나 성실함을 선호해요. 긴 시간을 갖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내 이뤄내는 책임감이랄까요. 실제로 무작정 찾아와서 인턴부터 시작한 사례도 있습니다. 열정이 느껴져서 결국 정직원이 됐죠. 반면 정식으로 공고를 내서 채용한 분들도 있고요.

임수정 주연 <당신의 부탁>과 명필름랩에서 제작한 <환절기>2018년 상반기 개봉합니다. 어떤 강점이 있는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임수정 주연의 <당신의 부탁>과 배종옥 주연의 <환절기>는 유사 가족과 엄마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사진 명필름
임수정 주연의 <당신의 부탁>과 배종옥 주연의 <환절기>는 유사 가족과 엄마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사진 명필름

두 작품 모두 명필름랩 1기 이동은 감독의 연출작입니다. 남성 감독의 연출작이지만 여성주의적 시각이 돋보여요. 2월 개봉하는 <환절기>는 성소수자 아들을 둔 엄마의 심리를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 21회 BIFF | <환절기> 이동은 감독 “동성애, 특별하고 예외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4월 초 개봉하는 <당신의 부탁>은 유사 가족과 엄마의 의미에 대해 성숙한 물음을 제기하는 작품이에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시나리오로 만들었어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어요.

<당신의 부탁>과 <환절기>는 우리 사회의 비주류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을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폭발적인 재미는 없지만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를 따스한 시선으로 곱씹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어려운 내용도 아니거든요. 보시고 나면 크레디트가 없어도 ‘명필름이 만들었구나’ 싶으실 겁니다.(웃음)

<당신의 부탁> <환절기> 외에 명필름이 준비하고 있는 라인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6월에는 <박화영>이란 작품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역시 명필름랩 출신인 이환 감독의 작품이에요. 하반기에는 휴먼 코미디 <나의 1급 형제>가 촬영에 들어갑니다. 장애인들이 주인공인 코미디에요. 이외에도 특수시각효과가 많이 들어간 시대물도 준비 중입니다. 규모가 꽤 큰 편이에요.

# 파주에서 명필름의 새 시대를 열다

명필름은 2015년부터 파주 출판 단지를 중심으로 활동 중입니다. 파주에서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심재명 대표는 2015년 명필름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파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의 목표는 파주를 영화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맥스무비 임영웅 (시티 카메라)
심재명 대표는 2015년 명필름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파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의 목표는 파주를 영화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맥스무비 임영웅 (시티 카메라)

파주에서 원스톱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어요. 저희가 영화 영상 관련 기업으로는 특수효과 전문 업체인 데몰리션에 이어 두 번째로 파주에 입주했습니다. 뒤이어 사운드, 분장, 조명 전문 회사가 들어왔죠. 앞으로도 영화와 관련된 회사들이 둥지를 틀 계획입니다. 영화의 후반작업이 한 곳에서 이뤄지게 되는 거죠. 아직 시작 단계에요. 서울과 떨어져 있어서 쓸쓸하기도 하고 효율성 측면에서 아쉬운 점도 있어요. 하지만 파주가 영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명필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필름랩과 일반 대학의 영화과와 교육 방식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아카데믹한 측면보다는 현장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최근 명필름영화학교에서 명필름랩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런 이유죠. 훌륭한 영화 아카데미와 영상원은 이미 있잖아요. 저희는 젊은 예비 영화인들이 현장 경험이 많은 선배 영화인들과 함께 장편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물론 기존 영화 아카데미에서도 장편을 제작하지만 졸업 영화 차원이죠. 명필름랩은 처음부터 장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선발합니다.

영화 제작 외에 시나리오 과정도 함께 운영 중입니다. 지원자 선발 기준이 궁금합니다.

장편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가능성이죠. 지원자의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발전시켜서 팔릴 수 있게 하거나 작가로서 데뷔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입니다. 명필름이 진행하는 영화들을 함께 개발할 수도 있죠. 주제나 메시지가 분명한 시나리오를 선호합니다. 또한 지금 한국 영화에 내에서 새롭고 패기가 넘치는 측면이 있으면 더 좋고요. 무엇보다 기본기가 탄탄해야죠.

# 심재명 대표의 2018 한국 영화계 전망-영화 제작 현장

한국 영화가 현재 젊은 관객에 비해 노화됐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 대책은 무엇일까요?

심재명 대표는 최근 한국 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로 영화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환경을 꼽았다. ⓒ맥스무비 임영웅 (시티 카메라)
심재명 대표는 최근 한국 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로 영화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환경을 꼽았다. ⓒ맥스무비 임영웅 (시티 카메라)

제작자로서는 점점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청년실업 문제와 양극화가 심해지다 보니 10대와 20대가 원하는 바를 읽어내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중장년층으로 영화의 주소비층이 많이 확대되지 않았나 싶네요.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 한국 영화 외국 영화를 따지지 않고 좋은 콘텐츠를 우선시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기존 영화에 비해 차별점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희 세대만 해도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지만 요즘 세대는 똑같은 만 원을 가지고도 검증된 곳을 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영화도 봐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하는 것 같아요. 관객층의 변화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심재명 대표가 바라보는 현재 한국 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영화의 다양성이 지켜지는 환경 마련입니다. 올해도 연간 전체 관객 수는 늘었어요. 연말에 개봉한 큰 영화들이 각각 의미 있는 성과를 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도 유의미하지만 다양한 영화들이 등장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스크린 독과점이 법적으로 해결되길 바라요. 자정하자고 해서 바뀌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는 당연히 극장에서 스크린을 많이 열어줍니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들이 차별받지 않고 균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 역시 필요합니다. 배급과 상영에 있어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배급·상영 분리를 골자로 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려운 문제죠. 국회에서 발의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영화계 내에서 논의와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영비법’이 정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공유가 돼야죠. 물론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으니 쉽지 않겠죠. 몇 년 동안 이야기만 되고 있는 상황이네요. 오석근 위원장의 취임으로 새롭게 정비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산업의 발전, 자본주의적 경쟁력 확보보다는 공익성과 공공성에 무게를 뒀으면 좋겠어요. 민간 영화사와 제작사들이 하지 못하는 문제를 푸는 역할을 해야죠. 하지만 지난 9년 동안 영진위는 그걸 간과하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습니다. 블랙리스트로 영화시장을 망가뜨리는데 일조했고요. 올해 출발하는 영진위는 그걸 털어내고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인을 꿈꾸는 취업준비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많이 뽑지 않고, 업계에 발을 들이더라도 월급이 너무 적은 게 현실입니다. 업계의 전반적 처우에 대한 심재명 대표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심재명 대표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정착시켜 영화계 전반의 노동 환경을 개선시키는데 일조했다. ⓒ맥스무비 임영웅 (시티 카메라)
심재명 대표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정착시켜 영화계 전반의 노동 환경을 개선시키는데 일조했다. ⓒ맥스무비 임영웅 (시티 카메라)

표준근로계약이 이뤄지면서 제작 현장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개선되고 있어요. 그래도 한국 사회의 다른 조직에 비해서는 부족하죠. 대기업의 연봉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수 있는 게 영화라고 봅니다. 환경이나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저 같은 회사의 대표나 제작사들이 많이 고민해야죠. 깨어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따님은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비슷한 길을 가는 걸 보니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영화 쪽 일이 굉장히 힘들어요. 그럼에도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어릴 때부터 집에 굴러다니는 게 시나리오고 부모들이 하는 대화도 영화 이야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전 딸아이가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연출 전공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정말 감독이 될지는 알 수가 없는 거니까요. 영화라는 특수성과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앞으로 난관도 있겠죠. 하지만 잘 극복하고 적응하고 성장하길 바랍니다. 이 일이 벅차고 맞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해도 상관없어요. 영화는 열심히만 해서 된다기보다는 재능이 필요한 곳이니까요.

올해 한국 영화계는 2017년과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달라질 것 같습니까?

2017년에는 지난 정권이 작성한 문화예술가 블랙리스트가 화두였죠. 영화계에서도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얽혀있던 사안입니다. 그간 정부의 성향에 따라 호응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화들이 달랐어요. 지난 정권의 경우 <베테랑>(2015) <암살>(2015) <내부자들>(2015) 등 사회의 해악을 폭로하는 영화들이 호응을 얻었죠. 일명 '분노 유발 장르'로 불리는 작품들입니다.(웃음) 최근에는 진보적이고 유연한 분위기로 변하면서 한국 상업영화의 흥행 축도 달라진 것 같아요. 정부와는 중국과의 관계나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흐름 등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눌 대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화 산업 내부로 보면 해결해야 할 문제점과 숙제들도 많고요.

20대의 심재명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조금 더 즐겁게 살아.”
재미있게 살지 왜 어둡고 우울하게 살았나 싶어서요. 더 많이 놀러 다니고 짧은 치마도 입고, 연애도 더 많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뭔가 누리고 즐기기 보다는 일만 열심히 했어요. 영화사에 다닐 때도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만 두겠다’가 아니라 ‘잘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하하. 늘 절박하게 살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제작자로서의 삶이 벅차게 느껴지더라고요. 결코 쉬워지지 않아요. 올해는 저와 명필름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심재명 대표는 창립작 <코르셋>(1996)을 시작으로 <접속>(1997)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 여러 흥행작을 통해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제작자다. 2015년부터는 경기도 파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영화교육단체인 명필름랩과 명필름 문화재단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부터 명필름랩에서 제작한 작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당신의 부탁>과 <환절기> <박화영> 등이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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