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세 | ‘골든슬럼버’ 노동석 감독 “착하기만 한 주인공이 이 영화의 매력”

2018-02-19 18:02 차지수 기자

[맥스무비= 차지수 기자] 거대 권력에 의해 테러범으로 몰린 억울한 택배 기사의 이야기 ‘골든슬럼버’. 원작인 동명의 일본 소설이 현지에서 한 차례 영화화된 후 영화사 집에서 7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리메이크를 기획해온 작품이다. 여러 작가의 손을 거쳐 결국 노동석 감독이 메가폰을 쥐게 된 한국판 ‘골든슬럼버’는 한층 거대한 액션 스케일과 한국적 감수성을 품고 신뢰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를 연출했던 노동석 감독이 신작 ‘골든슬럼버’로 관객과 만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를 연출했던 노동석 감독이 신작 ‘골든슬럼버’로 관객과 만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강동원 배우가 영화사 집과 7년 전부터 기획해온 작품입니다. 노동석 감독은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진행된 단계에서 각색 작업을 맡게 됐나요?   
시나리오를 받은 건 2년 전입니다. 영화사 집에서 워낙 오래 전부터 다뤄온 프로젝트라 여러 작가들의 손을 거친 상태였죠. 저한테 원고가 온 후 7, 8개월 정도 각색 작업을 했고, 강동원 배우가 원래 이 작품에 관심이 있었으니 글이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이른 후에는 함께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대화가 잘 통해서 재작년 여름쯤 같이 한 번 해보자고 얘기가 됐고요.

각색 작업에서 노동석 감독이 원작과 다르게 새로 추가한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선영(한효주)이 교통방송 리포터라는 설정과 금철(김성균), 민 씨(김의성) 등의 캐릭터를 추가했고 장면의 디테일한 묘사나 플래시백 에피소드를 더했습니다. 원작 소설 자체가 부피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그것을 속도감 있으면서도 간결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일본판 ‘골든슬럼버’에 비해 액션 스케일이 훨씬 큽니다. 한국 관객들은 장르 특유의 긴박감을 선호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나요?    

일본판은 비교적 원작 소설에 충실하게 만든 작품입니다만, 이대로는 한국에서 상업영화로 개봉하기에 좀 약하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성적으로도 한국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요. 평범한 사람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인데, 사실 일본판에서는 그 거대함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도주극으로서의 기본 뼈대는 갖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장르적인 긴박감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김대명, 김성균, 한효주 등이 극중 건우(강동원)의 오랜 친구로 등장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김대명, 김성균, 한효주 등이 극중 건우(강동원)의 오랜 친구로 등장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일본판 ‘골든슬럼버’는 여러 친구들 중에서도 유독 옛 연인이었던 히구치(다케우치 유코)의 존재감을 부각시킵니다. 반면 노동석 감독의 ‘골든슬럼버’는 선영보다 다른 동성 친구들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데, 그러한 차별화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처음 기획할 때부터 우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선영을 부각시키면 자칫 우정보다는 로맨스의 느낌을 풍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각각의 친구들을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배치했습니다. 친구의 수도 더 늘렸고요. 건우가 처한 상황에 대해 친구들 각자가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관객이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보면서 감정 이입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긴박한 추격 신과 친구들과의 풋풋한 과거 신의 결합이 가장 큰 숙제였을 것 같습니다. 두 파트의 결이 너무 달라서 자연스러운 편집점을 찾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 부분이 가장 숙제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시나리오 각색 작업 하면서도, 촬영하면서도, 편집하면서도 제일 어려웠던 부분입니다. 아마 어떤 감독이 맡는대도 그랬을 겁니다. 액션의 쾌감이 높아질수록 우정 신이 들어오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니까요. 그렇다고 우정 신의 농도를 너무 낮춰놓으면 영화의 정체성이 흔들렸을 테고요. 그래서 보완책으로 음악을 활용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부드럽게 연결하기 위해 편집 막바지까지 음악에 매달렸습니다.

음악이 어떤 식으로 이음새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나요? 

서로 다른 시공간의 연결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이려면 정서적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창 긴박감 넘치는 액션이 나오다가 쑥 회상 신으로 넘어가면 관객들 입장에서 자칫 ‘왜 갑자기 이게 나오지?’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음악으로 먼저 분위기의 전환을 예고해주는 거죠. 사실 현재 시점에서 시작된 음악이지만 마치 과거에서부터 쭉 이어져온 것처럼요.

가수 신해철의 노래를 삽입하거나 친구들이 과거 밴드를 결성했다는 설정도 새롭습니다. 한국 감성에 맞추기 위한 방법이었나요? 

긴박한 도주 과정 속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분량은 굉장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뻔하더라도 한 번에 딱 와닿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어요. 그게 바로 밴드였죠. 남자들은 어렸을 때 밴드 해보겠다고 기타 한 번쯤 잡아본 사람들 많잖아요. 꼭 신해철 세대가 아니더라도 ‘그대에게’ 같은 곡은 굉장히 대중적이죠. 노래의 밝은 느낌이 영화와도 잘 어울리고요.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골든슬럼버’는 한국 영화 최초로 광화문 폭발 신 촬영 허가를 받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골든슬럼버’는 한국 영화 최초로 광화문 폭발 신 촬영 허가를 받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광화문 폭파 신은 촬영 허가를 어렵게 받아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저희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앞으로 광화문 촬영 가능 여부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치밀한 페이퍼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어떻게 찍겠다는 구체적인 그림, 동영상 콘티, 차량 통제 방법, 동선, 시민 피해 최소화 방법 등을 포함해서 넉 달 정도 서류를 준비한 것 같습니다. 준비할 때가 마침 탄핵 집회로 100만 명씩 광화문에 모이고 경찰들이 엄청 바쁠 때였어요. 그러니 더욱 허가받기 어려웠죠. 그래도 스태프가 정성을 들인 만큼 관계자 분들이 믿어주신 것 같아요.

촬영 허가 시간은 단 네 시간이었습니다. 촉박한 시간이라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스태프가 그 전날 자정부터 근처에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백명에 달하는 보조출연자들과 함께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지 예행 연습을 한 거죠. 촬영 허가가 난 네 시간 중 세 시간은 리허설을 했고 마지막 남은 한 시간 동안 본격 촬영에 들어갔어요. 카메라가 워낙 많아서 촬영팀도 여럿이었죠. 각 팀의 조감독들이 영상을 찍어보내면 저는 베이스 캠프에서 실시간으로 14개에 달하는 그림을 한꺼번에 보고 있었어요. 거의 전쟁터 같았죠.(웃음)

혹시 모를 안전 사고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광화문 촬영은 전반적으로 수월했던 것 같아요. 이미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해서 스태프 각자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요.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주어진 역할대로 움직이면서 현장에서 생기는 약간의 오차만 조정하면 됐어요.

NG는 안 났나요? 강동원 배우의 부담도 컸겠어요.  

NG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특수효과팀에서 폭파 테스트도 해봤죠. 사실 스태프보다 강동원 배우가 더 어려웠을 거예요. 단 한 번의 기회 밖에 없는데 혹시 자기 연기 때문에 합이 안 맞거나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게 나올 수도 있잖아요. 더 잘 찍고 싶은 욕심이야 끝도 없지만, 그래도 제한된 시간에 다친 사람 없이 잘 마무리한 것 같아요.

강동원은 극중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 평범하고 선한 택배기사 건우를 연기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강동원은 극중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 평범하고 선한 택배기사 건우를 연기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극의 대부분을 강동원 배우가 이끌어갑니다. 그가 가진 화려한 이미지가 택배기사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많더군요. 

강동원 배우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이 백지 상태로 만났습니다. 첫 인상이 굉장히 소탈했어요. 하얀색 면 티셔츠에 방금 막 씻고 나온 것 같은, 전혀 꾸미지 않은 동네 청년의 느낌이었죠.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을 보고 저는 별다른 우려를 하지 않았어요. 그가 가진 ‘톱스타’라는 이미지는 현장에서 어느 순간 다 지워졌죠. 관객들 역시 이번 영화에서 강동원 배우를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해요. 극 초반 인물에 몰입할 수 없으면 이후의 사건들 역시 힘을 잃으니까요.

건우 캐릭터는 사실 매우 단순합니다. 그렇게 협박을 당하고 쫓기는 정에서도 끝까지 선하죠. 관객들이 이 캐릭터를 납득할 수 있을까요?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저 역시 그 부분이 고민이었습니다. 착하게 사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시대잖아요. 제가 건우에 너무 도취해있으면 우리들끼리만 착한 척 하는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게 민 씨 캐릭터예요. 민씨는 ‘저 자식 중독성 있네’ ‘맹한 거야, 착한 거야?’ 등의 대사로 제 3자의 입장에서 건우를 바라보고 극의 균형을 잡아주죠. 착한 영화 만들기가 훨씬 어려운 것 같아요.

그만큼 강동원 배우와도 캐릭터 설정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했겠습니다. 원작과 다르게 건우 캐릭터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셨나요? 

강동원 배우도 표현 수위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건우 캐릭터의 선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은 얼마든지 더 만들 수 있었지만, 적절한 수준을 맞춰야 했죠. 건우의 성격에 변화를 줘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한국에서 이 원작을 산 의미가 있고 원작의 핵심은 결국 건우라고 생각해서 바꾸지 않았어요. 요즘 관객들이 보기엔 좀 촌스러운 인물일 수도 있어요. 좀처럼 변하지 않고 친구들과의 옛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죠.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게 ‘골든슬럼버’만의 매력이 아닐까요.

‘신뢰가 인간 최후의 무기다’라는 대사가 있죠. 건우와 노동석 감독은 얼마나 닮았나요? 

별로 비슷하지 않습니다. 나이도 많이 먹었고, 그간 당한 게 많다보니 의심부터 하게 돼요.(웃음) 하지만 강동원 배우는 건우와 꽤 닮은 것 같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우직해요. 그래서 제가 강동원 배우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계속 의심하면서 보려고 애썼거든요. 건우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은 아마도 강동원 배우일텐데, 그 의심의 과정에서 상호 보완이 된 것 같아요.

노동석 감독은 ‘골든슬럼버’의 주된 관전 포인트로 드라마에 방점을 찍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노동석 감독은 ‘골든슬럼버’의 주된 관전 포인트로 드라마에 방점을 찍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원작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관객은 한국판 ‘골든슬럼버’를 ‘강동원의 도주극’으로만 인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칫 관객들이 기대한 것과 다른 그림이 펼쳐질 수도 있겠네요. 이 영화는 도주극,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핵심은 건우의 드라마입니다. 건우가 이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서 느끼는 마음의 동요, 사건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감정적인 흔들림을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원작과 다른 결말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결말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우정의 힘을 통해서 건우가 자유를 되찾고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비록 반쪽짜리 승리일지라도 그것이 작은 희망,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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