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냉소주의 시대에 전하는 동화”

2018-03-01 18:00 정유미 기자

[맥스무비= 정유미 기자] 탁월한 이야기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1960년대 냉전 시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멜로 영화를 들고 왔다.  몬스터 영화와 필름 누아르, 뮤지컬 등 할리우드 고전 영화를 모자이크 하면서 국가와 인종, 성별 등 모든 벽을 뛰어넘는 영화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사랑의 모양을 만드는 두 주인공은 모두 말을 하지 못한다. 델 토로 감독은 말한다.  “사랑은 너무도 강력해서 말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나는 어떤 모습의 사람이든 괜찮고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영화를 만들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나는 어떤 모습의 사람이든 괜찮고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영화를 만들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셰이프 오브 워터’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출발했습니까?

1990년대에 양서류 인간의 로맨스를 SF로 만들고 싶다고 제작사에 제안한 적 있습니다. 아마존으로 떠나는 탐험가들의 이야기였는데 당시에는 제작을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아이디어가 제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자신을 놓아준 어부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동화 ‘어부와 황금 물고기’가 메인 모티프 중 하나였습니다. 양서류 크리처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삶을 마법처럼 바꿔놓는 이야기를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감독의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요?

‘퍼시픽 림’(2013) 촬영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소설 ‘트롤 헌터’를 함께 쓴 작가 겸 감독 대니얼 크라우스와 토론토에서 식사 중이었는데  정부가 비밀리에 가둬놓은 양서류 크리처와 청소부가 친해지는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얘기하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더 말 하지 말고 이야기를 더 쓰지도 마라. 세 줄로만 요약하고 나에게 아이디어 가격을 제시하라”고 했어요. 저와 대니얼은 이 소재로 함께 소설을 쓰고 영화 시나리오와 연출은 제가 맡기로 그 자리에서 약속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을 냉전이 한창인 1960년대 미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요?

처음에는 단순한 러브스토리로 출발했지만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메리칸 드림이 끝나는 1962년을 배경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62년은 미국이 멈추었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인종차별과 불평등, 금방이라도 핵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불안감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죠. 따라서 사랑을 이야기하기에는 끔찍한 시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크리처가 주인공이고 인간들을 악의 세력으로 구성했습니다. 기존 클래식 몬스터 영화의 장치를 뒤집는 이야기인데요?

물론입니다. 크리처가 나오는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클래식 몬스터 영화에서 몬스터가 여성을 들고 가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크리처가 엘라이자를 들고 가는 모습은 굉장히 아름답죠. 기존 영화라면 정부 요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가 영웅으로 그려지고 크리처는 악역으로 그려졌겠죠. 이러한 몬스터 영화의 고정관념을 비틀고 싶었습니다.

리처드 젠킨스와 샐리 호킨스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그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의 관계에 대해 “그들은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보호한다. 서로가 내 사람이라고 느끼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리처드 젠킨스와 샐리 호킨스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그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의 관계에 대해 “그들은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보호한다. 서로가 내 사람이라고 느끼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셰이프 오브 워터’는 외롭고 힘없는 여성이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는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입니다. 엘라이자의 여정을 어떻게 설정했나요?

러브스토리와 동화에서 주인공이 취하는 여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여정, 혹은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대체적인 세계에서 자리를 찾으려는 여정.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화가 이 틀에 들어맞아요. 그런데 엘라이자는 이 세 가지 여정을 모두 취합니다.

엘라이자는 세상으로부터 소외 받는 사람이에요. 화장실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줍는, 문자 그대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죠. 하지만 엘라이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존재를 발견하고 엄청난 권위를 가진 대상을 거스를 정도로 강인하고 용감해집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엘라이자 역에 샐리 호킨스를 캐스팅한 이유는요?

엘라이자는 괴생명체를 만나기 전까지 존재감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이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죠. 대사 없이도 일상의 행복감이나 모든 감정을 본능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어요. 샐리 호킨스에게는 그런 특별한 에너지가 있고 누구보다 순수하고 꾸밈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녀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엘라이자가 괴생명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사랑에 대해 제가 아는 대로 씁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누군가를 보고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대가 나를 바라봐줌으로써 내가 존재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사랑에 빠져요. 엘라이자는 평생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였는데 이 괴생명체는 그녀를 보고 행복해 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단지 그녀를 보고 행복해 할 뿐이죠.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뿐 아니라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등장합니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이에는 순수한 사랑이 있습니다. 스트릭랜드 또한 사랑을 하려고 하죠. 비록 그의 사랑은 잔인한 방식이지만요. 엘라이자의 이웃이자 친구인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도 사랑을 찾고 있습니다. 일라이자의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남편을 사랑하고요. 연구소를 총괄하는  호이트장군(닉 서시) 또한 스트릭랜드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유사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엘라이자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말을 못합니다. 하지만 수화를 통해 가장 훌륭한 말을 하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면 우리는 인간도 아니에요.” 엘라이자를 통해 이 말을 하게 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영웅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설사 죽게 된다고 해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죠. 차에 치여 죽는 한이 있어도 도로 한복판에 있는 어린 아이를 구하려는 사람이 영웅입니다.

샐리 호킨스와 옥타비아 스펜서의 연기 디렉션 중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샐리 호킨스, 옥타비아 스펜서, 마이클 섀넌은 델 토로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배우들이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샐리 호킨스와 옥타비아 스펜서의 연기 디렉션 중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샐리 호킨스, 옥타비아 스펜서, 마이클 섀넌은 델 토로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배우들이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엘라이자의 동료 젤다 역은 옥타비아 스펜서가 연기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옥타비아의 눈빛을 떠올렸다고요.

저는 배우들의 눈을 보고 캐스팅 할 때가 많아요. 연기의 50%는 듣는 것과 보는 것이니까요.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는 저마다 고유한 눈빛이 있는데 젤다 캐릭터에는 옥타비아의 강렬한 눈빛이 필요했습니다. 옥타비아 스펜서는 매우 인간적이면서도 용기와 투지, 지성으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입니다. 옥타비아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죄를 모두 용서받은 듯한 기분이 들어요.

샐리 호킨스와 마찬가지로 스트릭랜드 역에 마이클 섀넌을 먼저 설정하고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를 적역이라고 생각한 이유는요?

미국 출신 마이클 섀넌은 미국 배우의 즉흥성과 직접성을 가진 배우이면서 전형적인 영국배우의 정확함도 가지고 있어요. 또한 극악무도한 악당에게 인간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하고요. 저는 스트릭랜드가 단순한 악역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시스템과 시대의 희생양이기에 안쓰러움이 느껴졌으면 했어요. 그가 보통 악역과는 달리 자기 의심이나 성찰, 절망 등 같은 것을 겪는다는 사실이 보이기 바랐는데 마이클 섀넌이 그런 모습을 전부 보여줬습니다.

더그 존스가 괴생명체를 연기했습니다. <판의 미로>의 숲의 요정, <헬보이> 시리즈의 에이브 사피엔에 이어 여섯 번째 작업인데 당연한 캐스팅이었나요?

더그 존스는 20년 동안 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들을 연기했습니다. 괴생명체를 소화할 수 있으면서 드라마 연기까지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고요. 서로 별개의 재능인데 더그는 둘다 맞추었죠. 특수분장을 하건 하지 않건 더그는 퍼포머가 아니라 환상적인 배우입니다.

괴생명체 크리처 디자인은 클래식 호러 영화의 몬스터 모델 전문가이자 조각가 마이크 힐이 참여했다. 델 토로 감독은 “마이크 힐은 몬스터와 기묘한 교감을 나눈다. 그의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크리처 디자인이 아니라 주연배우를 조각하는 작업이라서 정말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괴생명체 크리처 디자인은 클래식 호러 영화의 몬스터 모델 전문가이자 조각가 마이크 힐이 참여했다. 델 토로 감독은 “마이크 힐은 몬스터와 기묘한 교감을 나눈다. 그의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크리처 디자인이 아니라 주연배우를 조각하는 작업이라서 정말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괴생명체 크리처를 완성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최대한 사실적이면서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디자인부터 실행까지 3년이 걸렸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을 알았기에 몇 십만 달러의 사비를 들였어요. 지금까지 해본 크리처 디자인 중에 가장 어려웠습니다. 여성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습니다. 엉덩이나 복근이 이 정도로 괜찮은지, 어깨를 더 키울지 줄일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크리처로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뮤지컬 장면은 1940년대 흑백 영화에 나올 법한 노래와 춤으로 구성했습니다. 참고한 작품이 있습니까?

뮤지컬 장면은 반나절 동안 찍었습니다. 스탠리 도넌 감독의 스타일을 참고했는데 도넌 감독은 크레인 촬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저는 크레인 촬영과 고전 흑백 뮤지컬 영화의 미학을 섞기로 했죠. 뮤지컬 장면은 이야기가 극단에 치달은 상황에서 나오기 때문에 기존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영화의 다음 단계로 흘러가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지금 시대를 반영하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이 시대의 냉소주의에 대한 치유제가 되어 줄 수 있는 희망과 구원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인간이 그 무엇보다 웅장하고 초월적인 무언가와 마주하는 동화 같은 형태로 말이죠. 냉전을 통한 국가간의 증오, 그리고 인종과 능력, 성별로 인한 사람들 간의 증오처럼 세속적인 것들을 숭고한 사랑과 병치시키면 멋질 것 같았습니다.

냉전시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신비로운 동화를 완성한 소감을 들려준다면요.

원래 동화는 기근과 전쟁, 역병 등 매우 힘든 시대에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절대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죠. 왕의 부패나 왕권의 확인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동화의 서사는 반드시 두 가지 범주로 나뉩니다. 하나는 현상을 확인해주는 것, 또 하나는 현상을 전복시키는 것. 호러와 SF 장르도 마찬가지고요.

촬영을 마무리하면서 울게 되는 작품이 있는데 이 영화가 그랬습니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어요. ‘악마의 등뼈’(2001)‘와 판의 미로’(2006) 때도 그랬고 ‘크림슨 피크’(2015) 때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제가 만든 영화가 궁극적으로는 모두 동화라서 그렇습니다.

+ 델 토로 감독이 성서 영화 ‘룻 이야기’를 고른 이유

구약성서 룻기를 다룬 영화 ‘룻 이야기’(1960).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성의’(1953)로 유명한 헨리 코스터 감독이 연출하고, 엘레나 에덴이 룻을 연기했다. 한국에서는 1960년에 ‘사막의 여왕’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사진 맥스무비DB
구약성서 룻기를 다룬 영화 ‘룻 이야기’(1960).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성의’(1953)로 유명한 헨리 코스터 감독이 연출하고, 엘레나 에덴이 룻을 연기했다. 한국에서는 1960년에 ‘사막의 여왕’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사진 맥스무비DB

일라이자의 아파트 아래층은 영화관이다. 일라이자의 보금자리에 머물던 괴생물체는 ‘룻 이야기’를 상영 중인 극장에 간다. 구약성서 룻기를 다룬 영화 ‘룻 이야기’는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 출신 여인 룻(엘레나 에덴)이 남편을 잃고도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 신앙의 힘으로 훗날 다윗의 선조가 된다는 내용이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룻 이야기’를 비롯해 영화에 삽입된 영상을 직접 골랐다.

“영화에서 괴생명체는 아마존에 사는 신으로 숭배 받아요. 그래서 굳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영화에 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잘 알려진 성서 영화는 피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이미 아는 것을 인용하면 지루해질 수 있으니까요. 셜리 템플 영상을 제외하고 카르멘 미란다의 노래나 ‘룻 이야기’(1960)나 ‘마르디 그라스’(1958) 등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로 신중하게 선택해서 넣었습니다.”

http://news.maxmovie.com/368538

http://news.maxmovie.com/368502

http://news.maxmovie.com/36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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