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세 | ‘바람의 색’ 곽재용 감독 “영원한 시간 속 단 한번의 사랑을 담는다”

2018-04-11 20:16 채소라 기자

[맥스무비= 채소라 기자] 시적인 제목에 마술쇼와 도플갱어 이야기로 풀어낸 ‘바람의 색’. 멜로영화에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결합하는 곽재용 감독이 영화에 담아내고 싶은 건 단 하나다. 시간 속에 흘러가는 사랑이다.

# ‘바람의 색이 시작된 홋카이도의 겨울바다

곽재용 감독이 중국에서 영화 작업을 맞치고 2년 만에 돌아왔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곽재용 감독이 중국에서 영화 작업을 맞치고 2년 만에 돌아왔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시간이탈자’(2016) 이후 2년 만에 바람의 색으로 복귀했습니다. 한중일을 오가며 영화 작업을 해왔는데, 2년 간 어디에서 영화 작업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중국에서 ‘재세계중심호환애’(2016)라는 로맨스 영화를 작업했습니다. ‘재세계중심호환애’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중국판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연출하기 전에 카타야마 쿄이치의 원작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에서 받은 감흥을 그대로 영화에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이 영화 전에는 ‘미스 히스테리’(2014)도 연출했습니다. 개봉 성적도 좋았던 덕분에 중간에 하차했던 중국영화 ‘양귀비’(2012)로 받은 상처를 달랬습니다. 그때 중국 시장에 꼭 다시 도전해서 성공하고 싶었어요.

아야세 하루카가 출연했던 싸이보그 그녀’(2008) 이후 10년 만에 일본에서 영화 작업을 했습니다. 다시 일본으로 간 계기가 있습니까?

언젠가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2001)와 ‘클래식’(2003)이 초청받아 2년 연속 일본 유바리 영화제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본 홋카이도 풍경에 매료됐어요. ‘싸이보그 그녀’(2008) 작업을 끝내고 바로 홋카이도를 찾아갔습니다. 삿포로에서 아바시리, 시레토코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홋카이도의 시원한 겨울바다와 풍경을 접했습니다. 인생 최고의 기억이라고 할 만큼 즐거운 여행으로 남았습니다. 그 여행 중에 ‘바람의 색’ 시놉시스를 썼습니다. 영화 시나리오는 2010년에 삿포로에 한 달 간 머물며 완성했습니다.

바람의 색이라는 공감각적이고 시적인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바람의 색’은 영화 로케이션을 도와줬던 삿포로의 프로덕션 회사 이름입니다.(웃음) 대표님과 술을 한 잔 하면서 제목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어요. 흔쾌히 그 자리에서 수락해주셨습니다.

곽재용 감독은 홋카이도의 겨울 바다를 보다가 탈출마술과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떠올렸다.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곽재용 감독은 홋카이도의 겨울 바다를 보다가 탈출마술과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떠올렸다.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바람의 색은 마술쇼와 도플갱어를 엮은 소재가 독특합니다. 이야기는 어떤 발상에서 시작했습니까?

홋카이도의 차가운 바다를 바라보다가, 탈출마술 상자에서 실종된 남자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후에는 도쿄타워에 있는 한 여자가 자기와 똑 닮았지만 더 예쁜 여자를 생각하는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두 이야기를 시작으로 탈출마술의 시조인 마술사 후디니, 도플갱어와 다중인격 같은 소재가 자연스럽게 시나리오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닮은 얼굴에 관한 이야기는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삿포로에서 촬영한 ‘러브레터’(1999)도 그 중 하나죠. 서로 정체성을 바꾸는 이야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바람의 색과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모두 삿포로 배경의 로맨스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오래 전에 이와이 슌지 감독을 만나 홋카이도에 대해 이야기 한 적도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제게 홋카이도에 집을 사서 이웃하며 살자고 제안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1990년대에 ‘러브레터’를 접했을 때 느낀 아스라한 감정도 아직 제게 남아있습니다.

후루카와 유우키와 후지이 타케미를 캐스팅한 과정도 궁금합니다.

‘싸이보그 그녀’ 때 인연을 맺은 매니지먼트 관계자에게 후루카와 유우키를 소개받았습니다. 후루카오 유우키의 첫인상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천재마술사 류 역에 딱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루카오가 명문대 출신에 소위 ‘엄친아’이기도 하거든요. 당당함이 풍기는 독특한 친구입니다.

아야 역은 신인배우를 뽑자는 제작사 제안으로 오디션을 열었습니다. 후지이 타케미는 연기력도 좋았지만 특히 감정 변화가 무척 빠릅니다. 외모적으로는 한국적인 인상을 가진 배우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 탈출마술은 로맨틱하다

곽재용 감독은 탈출마술의 시조 후디니가 키스로 열쇠를 전달받았다는 이야기에 영감받았다.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곽재용 감독은 탈출마술의 시조 후디니가 키스로 열쇠를 전달받았다는 이야기에 영감받았다. 사진 스톰픽쳐스코리아

오프닝 신에 사운드로 지구와 붕어빵 별인 구지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플갱어라는 담론의 시작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일본 만담인데, 주인공이 눈을 뜬 공간이 지구인지 구지인지 알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바람의 색’도 현실이 아니라 구지라는 별에서 일어나는 판타지이니까 현실성을 따지지 않고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또 하늘에 떠있는 비행기 그림자도 CG로 특별히 넣었습니다. 하늘에 3차원의 비행기가 지나가면 땅에는 2차원의 그림자가 생기죠. 이것 역시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상징이었습니다.

도플갱어인 두 남자의 삼각관계라는 설정은 어떻게 떠올렸습니까?

도플갱어는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나거나 존재를 알게 되면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속설을 들었습니다.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왜 죽을까? 왜 자살하려고 할까? ‘바람의 색’은 그 의문에서 시작한 영화입니다. 자살로서 사랑을 완성하려는 도플갱어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결말을 그려나갔습니다.

아마 도플갱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욕망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요. 선한 인격과 악한 인격이 있을 텐데, ‘저는 둘 다 선하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봤습니다.

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대규모 탈출마술과 로맨스를 연결시킨 계기가 무엇입니까?

탈출마술의 시조 후디니가 키스로 열쇠를 전달받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굉장히 로맨틱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의 시험을 치르는 경우랄까요. 키스가 없다면 탈출마술이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탈출마술도 로맨틱하게 와 닿았습니다.

료는 해리성 인격장애를 가진 아야와 함께 레옹과 마틸다로 변신합니다. 또 다른 정체성의 변화로서 레옹과 마틸다를 차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뤽 베송 감독과 영화 ‘레옹’(1995)에 바치는 오마주였습니다. 둘의 순수한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장면에 ‘레옹’ 포스터를 붙이고 싶었는데, 사용 허가가 안 났습니다. 뤽 베송 감독에게 A4 용지 넉 장이나 되는 손편지까지 썼지만 거절당해서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 능수능란한 멜로 드라마 감독

곽재용 감독은 영원한 시간 속에 단 한 번일지 모르는 사랑이란 감정을 영화에 담는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곽재용 감독은 영원한 시간 속에 단 한 번일지 모르는 사랑이란 감정을 영화에 담는다. 사진 시티카메라(니콜라우스)

미스터리 멜로인 시간이탈자바람의 색처럼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멜로영화를 변주합니다. 흥행이 어려운 멜로의 한계점을 깨뜨리는 시도인가요?

최근에는 멜로 드라마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멜로 드라마 속성상 시나리오에 감정이 드러나지도 않고 음악을 깔아볼 수도 없습니다. 글로는 잘 읽히지 않는 장르죠. 그래서 멜로는 영화 제작 단계에서도 나중으로 밀려나는 것 같습니다. 외부요인으로 인해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한 시나리오를 생각하게 됩니다.

20년 이상 멜로영화를 변주하고, 또한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멜로를 꾸준히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첫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1989)도 제작비가 적게 드는 멜로영화를 택한 것이었는데, 흥행에도 성공해서 멜로영화를 꾸준히 하게 됐습니다.

다른 장르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1997년에 ‘영웅의 이름으로’라는 액션영화나 ‘양귀비’(2012) 같은 시대극을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어요. 멜로만 하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습니다.(웃음) 멜로에 올인 해야죠. ‘클래식’에서는 월남전 장면을 찍어서 전쟁영화에 대한 갈망을 해소했습니다.

곽재용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입니까?

시간은 영원한데 인간으로서 삶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사랑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아름다운 감정입니다. 영원한 시간 속에 단 한 번일지도 모르는 거죠. 그래서 사랑은 소중한 감정이고요. 저는 사랑을 영화 속에서 찾고 싶고, 제 삶보다 긴 영화에 그 감정을 남기려는 겁니다. 훗날 제 영화가 틀어진다면 제가 사라져도 사랑이란 감정이 다시 살아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멜로영화를 계속 해나가는 감독으로서 한국영화의 산업구조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지금은 대기업 체제 안에서 자본을 투자하고 스타 배우 그룹이 출연해서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는 감독은 누구든 스크린수를 점령하는 영화에 반감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다양성, 제작사와 감독의 창작이 보장되지 않으면 공정하지 못한 독점이라고 생각하고요.

가장 상업적인 면만 부각시켜 영화를 상품화시킨다면, 개성 있는 감독들이 점점 사라질 겁니다. 지금 일본이 그래요. 우리 영화산업의 미래가 바로 일본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도 이 시스템을 바꾸기에 역부족이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얼마 전에 ‘클래식’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끝냈습니다. 사랑에 대해 말했지만, 나중에 이 영화에 담긴 손예진의 아름다움, 사랑이란 감정이 되살아 날 것 같아 뿌듯하고 설레었습니다.

차기작은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준비중입니다. 확정한 건 없지만 한국에서 손예진과 다시 한 번 영화를 찍고 싶어서 새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영하37도’라는 SF멜로영화 시나리오 각색을 마쳤어요. 한중일을 오가고 있지만, 늘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때 가장 행복합니다.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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