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세 | ‘살인소설’ 김진묵 감독 “그저 재미있는 영화로 봐주세요”

2018-04-27 23:29 성선해 기자

[맥스무비= 성선해 기자] 영화 살인소설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의뭉스러운 소설가와 겉과 속이 다른 예비 정치인은 외딴 별장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낸다. 삐거덕대는 신경전으로 시작된 이들의 갈등은 가파른 산비탈을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거대한 비극으로 몸집이 불어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비극, 통쾌한 복수극이자 풍자극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살인소설’을 탄생시킨 김진묵 감독을 만났다.

#일주일 만에 쓴 시나리오, 8년 만에 영화가 되다

등장인물이 집필한 소설과 이들이 겪는 현실이 혼재된 '살인소설'은 상상하고 추리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등장인물이 집필한 소설과 이들이 겪는 현실이 혼재된 '살인소설'은 상상하고 추리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8년 전 시나리오 초고를 쓴 작품이 드디어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처음 영감을 받은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당시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시체를 보고 충격 받은 적이 있었어요. ‘이걸 한 번 써볼까’ 싶어서 메모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일주일 만에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거의 일필휘지였죠. 수정하는 시간이 1년 정도 걸렸습니다. 이후 계속 제작될 기회가 있었는데 번번이 성사가 되지 않았고, 세 번째 기회에 영화로 만들게 됐네요.

2005작업의 정석연출부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현장을 누볐습니다. 영화감독이란 꿈을 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주말마다 서울극장을 찾아갔습니다. 한양대 영화과에 입학해서는 동기들끼리 치열하게 토론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영화를 꾸준히 만들게 됐죠. 사실 영화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동기들끼리 ‘우린 영화만 아니었으면 뭐든 잘했을 거야’라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저희는 영화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하하.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주간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았습니다. 개봉 전 낭보라 기쁨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수상을 했습니다. 많은 힘이 되었죠. 황당하기도 했고요. ‘이 사람들이 뭘 알고 주나. 영화 내용은 제대로 이해한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대사량이 많은 영화다보니 걱정이 되었거든요. 번역을 아무리 잘해도 정서의 차이도 있으니까요. 덕분에 평소 가고 싶었던 리스본 구경도 잠깐 하고 왔어요. 영화제가 열리는 곳에서 3시간 거리였습니다. 생애 처음 누려보는 호강이라 그간 했던 고생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어요.

소설가 김순태와 그에게 우롱 당하는 예비 정치인 이경석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축이다. 사진 (주)스톰픽쳐스코리아 , 페퍼민트앤컴퍼니
소설가 김순태와 그에게 우롱 당하는 예비 정치인 이경석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축이다. 사진 (주)스톰픽쳐스코리아 , 페퍼민트앤컴퍼니

소설가 김순태(지현우)와 예비 정치인 이경석(오만석)을 중심으로 별장이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게다가 액자식 구성이고요. 제약이 많았을 텐데 이야기 구상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지금이라면 못 쓸 것 같아요. 초고 집필 당시에는 제가 구상한 이야기 자체에 굉장히 몰입해 있었어요. 액자식 구성은 사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택한 겁니다. 한공간에서 밤에 진행되는 사건이 대부분이잖아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답답하고 지루할 것 같아서 변주를 했습니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영화에 녹아들어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초고가 영화로 탄생하기까지 가장 많이 고민한 지점은 무엇입니까?

결말이죠. 인물들이 다 죽는다는 건 처음부터 전제하고 썼어요. 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이냐가 문제였습니다. 결국 전체 이야기 중에 결말을 제일 오래 걸려서 썼어요.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죠.

이경석을 속이는 김순태는 활빈당의 현대식 해석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경석은 부패한 권력의 상징이고요. 영감을 받을만한 사건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딱히 영감을 받은 사건은 없었어요. 다만 제가 20~30대 시절 품었던 불만들이 응축됐어요. 유별나게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은 아닙니다. 다만 정치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화도 있었고요.

시나리오를 쓴 게 30대 초반인데, 그때 영화로 완성이 되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경석의 입장도 조금씩 이해가 가더군요. 지금 제 안에는 김순태와 이경석, 두 사람의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방적으로 김순태가 이경석을 괴롭히기만 했다면, 나이가 들면서 이경석이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내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바뀌었어요.

# 성실한 지현우, 능수능란한 오만석

지현우와 오만석은 각각 성실함과 노련함으로 '살인소설' 현장을 이끌었다. 김진묵 감독은 이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지현우와 오만석은 각각 성실함과 노련함으로 '살인소설' 현장을 이끌었다. 김진묵 감독은 이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한정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배우들의 공이 큽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지현우는 어떤 강점이 있는 배우였나요?

지현우의 가장 큰 무기는 열정과 끈기, 성실함입니다. 김순태의 대사가 참 길잖아요. 직접 썼던 저도 5년 전에는 거의 외웠는데 지금은 까먹었어요. 지현우는 다 외워서 오더라고요. ‘어떻게 저걸 외우나’ 싶기도 했습니다.(웃음) 지현우는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입니다. 극 중 김순태가 끓이는 솥 안에 있는 고기의 정체는 흑염소에요. 원래는 김순태의 어머니가 마련해주신 걸 소설을 완성한 기념으로 먹으려던 거죠. 그 장면을 찍으려고 유명한 흑염소 전문점에 가서 시식을 했습니다.

지현우와 더불어 또 다른 축은 그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오만석입니다. 워낙 노련한 배우인데, 현장에서는 어땠나요?

오만석은 능수능란함이 느껴졌습니다.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여러 경험이 많아서겠죠. 현장에서 합이 안 맞아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대화를 통해서 조율하고는 했어요.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그런 게 아니야’라고 차분히 말하더군요. 어떨 때는 저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고요. 본인이 연극 연출을 해봤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어나는 돌발 요소들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아요.

전체적인 서사가 친절한 편은 아닙니다. 김순태가 이경석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도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요. 전개 방향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둔 이유가 있나요?

관객들이 비어있는 지점을 채워서 생각하길 바랐어요. 물론 분명하게 제시하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죠.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인 거고요.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저는 전자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에게 화가 나서 한 번쯤 괴롭혀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들 하시지 않을까요, 하하.

# 날이 선 풍자일단은 재미가 먼저!

'살인소설'은 부패한 권력을 향한 풍자극이란 점 때문에 선거철을 겨냥한 영화로 오해받기도 한다. 김진묵 감독은 "재미를 추구하는 상업영화"라고 강조했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살인소설'은 부패한 권력을 향한 풍자극이란 점 때문에 선거철을 겨냥한 영화로 오해받기도 한다. 김진묵 감독은 "재미를 추구하는 상업영화"라고 강조했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부패한 권력에 대한 풍자는 그간 수많은 영화들이 시도한 주제입니다. 차별화를 두고 싶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는 재미가 먼저였어요. 물론 시나리오를 처음 썼을 때는 메시지가 중요했었죠. 하지만 8년간 제가 준비하고 노력한 모든 부분의 초점은 오락성입니다. 어떤 장르를 쓰더라도 흥미로운 이야기여야 하니까요.

공교롭게도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개봉합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지향했지만, 소재 덕분인지 선거철을 맞아 야심차게 기획한 영화로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있어요.

아이고, 절대 아닙니다.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충분히 현명한 선택을 할테니까요. 각자 소신있게 참여하면 되겠죠. 하필 선거철을 코앞에 두고 영화가 개봉을 합니다만, 의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에 메시지를 담는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마음을 바꿀 것 같지는 않아요. 그저 재미있는 영화로 봐주세요. (웃음)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http://news.maxmovie.com/375040

http://news.maxmovie.com/37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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