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세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광국 감독 “피하지 않고 부딪히면 좋겠다는 바람”

2018-05-09 14:11 정유미 기자

[맥스무비= 정유미 기자]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은 비겁한 한 남자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여정의 끝에서 남자는 자신의 두려움과 당당하게 마주한다. 고달픈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기에 바쁜 우리에게 이광국 감독이 들고 온 이야기는 분명 ‘반가운 손님’일 수밖에 없다.

# 오뉴월 손님이 겨울 손님이 되기까지

이광국 감독은 ‘로맨스 조’(2012) ‘꿈보다 해몽’(2014) 등을 통해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주목 받았다.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독특한 이야기와 연출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에서도 빛을 발한다. 사진 시티카메라(임영웅)
이광국 감독은 ‘로맨스 조’(2012) ‘꿈보다 해몽’(2014) 등을 통해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주목 받았다.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독특한 이야기와 연출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에서도 빛을 발한다. 사진 시티카메라(임영웅)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2016년 6월에 옴니버스 인권 영화 ‘시선사이’에 포함된 단편 ‘소주와 아이스크림’ 개봉하고 시나리오는 10월에 썼어요. 여름에 어머니랑 얘기를 나누다가 ‘오뉴월 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하지 않냐’는 얘기를 듣는 순간 뭔가 이야기가 숨어 있겠다, 제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곧바로 구상으로 옮긴 건가요?

작품 구상을 시작할 때 항상 언제까지 시나리오를 써서 언제 촬영해야지 계획을 세워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은 여름부터 구상을 시작해서 잘하면 겨울에 촬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뉴월 손님’을 ‘겨울 손님’을 한번 바꿔봤더니 뭔가 느낌이 좋더라고요. 제목을 정하고 나니까 한 남자가 여자 친구한테 영문도 모르고 버림받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호랑이가 동물원에서 탈출한 날이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남자의 동선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하면서 직업도 나오고 이야기들이 하나씩 붙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하나씩 이어 붙인 이야기는 항상 도망쳤던 남자가 현실과 대면하는 이야기로 완성되었습니다.

이야기를 구상할 때 제 상태가 반영되거든요. 당시에는 저의 비겁함, 두려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러 가지 상황이나 사람, 일 앞에서 계속 피하거나 도망쳤던 순간들을 이야기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결국은 두려움에 가득하고 비겁한 남자가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이야기로 큰 틀이 잡혔습니다.

촬영은 언제 시작했나요?

작년 2월 14일에 시작해서 3월 14일까지 한 달 동안 23회차 촬영했습니다. 밸런타인데이에 시작해서 화이트데이에 끝났죠.

#호랑이는 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은 현실에서 도망치던 남자 경유(이진욱)가 옛연인 유정(고현정)과 재회하면서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이광국 감독은 제목의 ‘호랑이’는 두려움에 대한 상징라고 말했다. 사진 영화사 벽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은 현실에서 도망치던 남자 경유(이진욱)가 옛연인 유정(고현정)과 재회하면서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이광국 감독은 제목의 ‘호랑이’는 두려움에 대한 상징라고 말했다. 사진 영화사 벽돌

제목의 호랑이는 영화에서 동물원을 탈출했다는 설정으로 등장합니다. 호랑이를 등장시키지 않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의도가 있었을 텐데요.

제작 예산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처음부터 호랑이가 등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호랑이가 등장하는 순간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 문제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상징으로 주인공이 호랑이와 마주했으면 했어요. 사운드로 먼저 경유의 환청처럼 마주하고, 마지막에는 호랑이의 탈을 쓴 아이와 마주하는데 그 지점에서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의 의도대로 호랑이 탈을 쓴 꼬마가 등장하는 장면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호랑이 탈을 쓴 인물을 성인이 아니라 아이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제로 어떤 꼬마가 호랑이 탈을 쓰고 그 공간에 나타났을 수도 있고, 경유 안에 있던 두려움이 대상화되어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접근을 하고 싶었습니다. 성인으로 설정하면 두려움과 마주하는 경유의 환상으로 하나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아이로 설정하면 둘 다 가능하니까요.

호랑이와 마주하는 이진욱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옅은 미소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진욱 배우의 눈빛이 좋았죠. 마지막 촬영 날에 찍은 장면인데 해가 막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시간은 정해져 있고 정신이 없었어요. 이진욱 배우의 표정을 찍는데 딱 한 커트에서 되게 좋은 미소와 촉촉한 눈빛이 딱 나오더라고요. 급한 와중이었는데 ‘하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호랑이보다 반가운 배우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을 촬영 중인 배우 이진욱과 이광국 감독. 사진 영화사 벽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을 촬영 중인 배우 이진욱과 이광국 감독. 사진 영화사 벽돌

주인공 경유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어서 연출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경유가 대사도 별로 없고 경유가 소극적이고 답답한 인물이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진욱 배우가 워낙 훌륭한 배우니까 잘 해줄 거라 믿었고 눈빛이나 표정 연기가 중요했는데 역시 정말 잘 해줬어요.

도망치기만 하던 경유는 유정과 재회하면서 심경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쇠고기 선물 세트를 사 들고 여자친구 현지(류현경)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만 퇴짜를 맞잖아요. 그러고선 친구 부정(서현우)의 집으로 돌아와 쇠고기를 부여잡고 울먹이는 장면에서 이진욱의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경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장면입니다. 그 앞뒤로는 경우가 어떤 상태인지 굳이 말로 하지도 않고 가장 가까운 친구한테도 말하지 않으니까 딱 그 신에서 한 번만 표현하자고 정했던 것 같습니다. 이진욱 배우에게 경유의 서러움 같은 것들이 올라올 수 있는 장면이니 여기서는 맘껏 표현을 해보자고 했어요.

쇠고기 장면 촬영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촬영은 세 테이크 정도 갔고 이진욱 배우가 욕심을 냈던 것 같아요. 두 테이크에서 제가 오케이를 했는데 이진욱 배우가 좀 부족한 것 같다고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감정을 드러내는 신은 배우가 여러 번 반복할수록 점점 안 좋아질 수 있어요. 진도 빠지고. 저는 처음부터 많이 찍을 생각이 아니었지만 이진욱 배우가 그 신에서 굉장히 의욕을 보였습니다. 지나고 나서는 한 번 더 찍기를 정말 잘 했던 것 같아요. 최종으로 마지막 테이크, 세 번째 테이크를 쓴 건데 저도 보면서 뭉클했습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을 촬영 중인 이광국 감독과 배우 고현정. 두 사람은 이광국 감독이 조감독으로 참여한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연으로 다시 만났다. 사진 영화사 벽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을 촬영 중인 이광국 감독과 배우 고현정. 두 사람은 이광국 감독이 조감독으로 참여한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연으로 다시 만났다. 사진 영화사 벽돌

해변의 여인’(2006)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조감독 시절에 함께한 고현정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감독과 배우로 만난 첫 작업은 어땠습니까?

고현정 배우가 제 영화에 출연해 첫 촬영을 하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조감독 할 때도 느꼈지만 이렇게 훌륭한 배우와 함께하다니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고현정 배우는 고유의 리듬이 있어요. 독보적인 엇박자를 가지고 있는데 대사의 속도감이라든지 박자, 디테일의 조합이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엄청나요. 몸짓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더 호기심을 갖게 되는 연기를 하는데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고현정 배우가 소주 마시는 장면은 연기인가요? 보는 사람도 소주 생각이 날 정도로 실감 나던데요.(웃음)

그럼요 물이에요 물. 100% 물이고. 어떻게 저 물을 술처럼 마시지? 약간 술을 가지고 논다? 술을 따르는 동작이나 대사도. 그 안에서 잘 노는 거 같아요.

연출의 공을 배우들의 공으로만 돌리는 것 같은데요?(웃음)

시나리오는 결국 활자잖아요. 죽어 있는 활자가 배우들의 몸을 통화하면서 생기를 갖고 생명력을 가지니까 영화는 배우들이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디테일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에서 주인공 경유는 소설가의 꿈을 접고 대리운전 기사로 일한다. 경유가 상대하는 취객들에 대해 이광국 감독은 ‘아픈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영화사 벽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에서 주인공 경유는 소설가의 꿈을 접고 대리운전 기사로 일한다. 경유가 상대하는 취객들에 대해 이광국 감독은 ‘아픈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영화사 벽돌

캐릭터를 단순히 연인 관계로만 설정한 게 아니라 유정은 글이 안 써지는 소설가, 경유는 글을 안 쓰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배치한 이유가 있다면요?

결국은 둘이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이루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꿈이 실현되어도 별반 다르지 않을까요? 또 다른 욕망이 생길 거고 여전히 또 다른 단계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닥치지 않을까요. 둘이 다른 인물로 나오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의 어떤 내면으로 보이길 바라면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경유의 직업은 대리운전 기사인데 취재나 경험담이 반영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개인택시 운전을 30년 이상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어떤 손님들 때문에 힘드셨는지 많이 들었어요. 거기에서 조금 가져온 설정도 있고 제가 대리운전을 하거나 취재를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리운전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한 직업이잖아요. 또 대리운전을 직업이라고 안 하고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부업이라고 여기죠. 대리운전은 여러 의미에서 쓸쓸한 직업 같아요. 취객을 상대하면서 받는 상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일이고 계속 떠돌아다니면서 불특정 대상을 만나야 하는 겁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경유가 대리운전을 하면서 만나는 취객들은 하나 같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데요.

술에 취했든 취하지 않았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아픈 구석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되는 거죠.

경유의 옛 연인 유정은 소설가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고심한다. 유정이 자신의 집에 두고 간 경유의 여행 가방을 열어 보는 장면에 대해 이광국 감독은 “유정이 감정을 정리하는 장면이자 경유와 관계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겼다”고 답했다. 사진 영화사 벽돌
경유의 옛 연인 유정은 소설가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고심한다. 유정이 자신의 집에 두고 간 경유의 여행 가방을 열어 보는 장면에 대해 이광국 감독은 “유정이 감정을 정리하는 장면이자 경유와 관계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겼다”고 답했다. 사진 영화사 벽돌

유정이 경유가 두고 간 여행 가방을 열어보는 장면에서 고현정 배우의 연기를 좋아한고 하셨습니다. 이유는요?

시나리오에는 유정이 경유의 짐 가방을 열어 본다 정도였어요. 고현정 배우에게 가방을 열면 경유의 물건들이 보일 텐데 유정이 어떻게 할 거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고현정 배우가 잠시 생각하더니 경유의 옷을 개줄 것 같다고 하는데 듣는 순간 너무 좋더라고요. 둘이 이상하게 헤어졌지만 옷을 개주는 행위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들이 혹시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유정이 자기 마음에 대한 정리도 될 수 있고 미안함일 수도 있고 다양한 의미일 수 있는 거죠.

경유의 여행가방은 요즘 많이 쓰는 것과 다른 디자인과 모양이어서 독특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경유의 여행가방은 제가 평소에 사용하는 거예요. 영화제를 다니거나 할 때 쓰는데 좋아하는 물건입니다. 나온 지 20~30년 됐을 거예요. <로맨스 조> 촬영 때 중고로 구했는데 계속 쓰고 있어요. 전 옛날 게 좋거든요. 심플하고 간단하고. 물건도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가 생기니까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경유와 유정이 연애 시절에 공유했던 책이기도 하고 경유의 여행가방에 있던 유일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매개체로 쓴 이유가 있다면요?

경유가 꿈도 포기하고 다시는 글을 안 쓸 것 같은 소설가 지망생이기는 하지만 마음속에 한 권은 계속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버리지 못한 책 한 권, 이야기 한 권이 필요해서 제가 워낙 좋아하는 <노인과 바다>를 넣었어요. 결국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실패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굉장히 심플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 담긴 대단한 소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경유는 결국 소설을 썼을까요?

마음이 짠 하긴 한데 소설가로 잘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적어도 자기 두려움과 마주했으니 그것으로 큰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뭔가 원하는 걸 해보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이광국 감독이 쌓아 올리는 벽돌

이광국 감독은 영화가 누군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창작물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솔직하게 만들겠다”고 신조를 밝혔다.  사진 시티카메라(임영웅)
이광국 감독은 영화가 누군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창작물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솔직하게 만들겠다”고 신조를 밝혔다.  사진 시티카메라(임영웅)

이광국 감독의 제작사 이름은 벽돌입니다. 2012년 로맨스 조부터 벽돌을 쌓아 올리듯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개봉한 비결이 있다면요?

단편 영화 개봉까지 포함하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이 다섯 번째 개봉작인데 신기하기도 하고 운이 좋았어요. 만들고 다 개봉했으니까요. 저는 시나리오의 유통 기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기에 제가 했던 고민이 몇 년 지나면 변할 테니까 시나리오를 썼을 때 바로 찍어야 한다는 주의거든요.

제가 배짱이 좀 있어요. 주위에 좋은 배우들이 있고 좋은 이야기만 쓸 수 있다면 영화는 어떻게든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배짱이요. 투자를 안 해줘서 3년, 5년, 10년씩이나 영화를 못 찍는다는 얘기는 안 해야지 하는 다짐 같은 것도 있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요?

영화를 솔직하게 만드는 거요. 제가 만드는 영화가 누군가한테 생각의 여지나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영화가 좋으면서 무서운 점은 영화뿐만 아니라 창작물이 누군가의 인생을 흔들어놓거나 바꿀 힘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굉장한 책임감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흔들리는 여지를 줄 수 있는 체험이 될 수 있으니까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을 본 관객이라면 자신의 현실과 대면하는 용기를 얻거나 현실 도피에 대한 생각을 반드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이 현실과 부딪히고 있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자신이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본인 탓일 수도 있는데 대개는 상황이나 남 탓이라고 변명하거나 부정하거든요. 저 또한 될 수 있으면 직면한 현실을 피하지 않고 부딪히려고 노력하는 거죠.

이야기꾼 이광국 감독이 들려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격정 멜로.(웃음) 요새 여성 캐릭터들이 별로 없잖아요.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한 여자가 쭉 끌고 가는  사랑 이야기이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격정까지는 모르겠고 좋은 멜로 한 편을 해보고 싶습니다. 목표는 올해 안에 시나리오를 쓰고 내년에 촬영하는 거고요. 기회가 된다면 고현정 배우와 다시 작업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을 볼 관객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좋은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재밌다 재미없다가 아니라 체험의 시간으로요. 아르헨테나에서 제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는데 노인 관객 한 분이 굳이 저에게 찾아오셔서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줘서 고맙다”고 한 말씀이 지금까지 제일 인상에 남아 있어요. 영화 재밌게 봤다, 잘 봤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좋은 시간’이라는 어감이 다르게 느껴지고 고맙더라고요. 영화를 좋게 보시든 안 좋게 보시든 관객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20대의 이광국 감독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저는 제일 중요한 20대 초중반에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던 것 같아요. 자신감이 없으니까 그냥 피했던 거 같아요. 군대에 가서 오히려 생각들을 정리한 경우인데 그전에는 겁이 많아서 움직이는 자체를 엄두를 못 냈어요. 오히려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고요.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너무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http://news.maxmovie.com/374120

http://news.maxmovie.com/374123

정유미 기자 / youme@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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