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유현지 기자] 이창동 감독의 6번째 장편영화 ‘버닝’(2018)이 상영 중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춘 종수(유아인)와 해미(전종서), 벤(스티븐 연)의 모습을 그렸다. 세 사람은 성격도 생각도 확연히 다르다. 이런 그들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그들이 사는 공간이다. 이창동 감독은 줄곧 공간을 통해 이야기해왔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고, ‘버닝’의 옥광희 프로듀서에게 로케이션 비하인드를 들어보았다.
‘박하사탕’(1999)

‘박하사탕’은 과거의 사건들로 인해 서서히 망가져 버린 한 남자의 인생을 반추한다. 철로에 몸을 던지며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남자. 그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1979년 가을, 가리봉동이다. 1970년대, 공단이 형성된 가리봉동은 산업화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밤낮으로 구슬땀을 흘려가며 돈을 벌었다. 직공들과 상인, 이주민들이 거주했던 가리봉동은 잘살고 싶었던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장소이다.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는 그 시절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79년의 가리봉동은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약속이자 희망이다. 격동의 80년대를 되돌리고 싶은 영호의 마음이 담겨있다.
‘밀양’(2007)

남편이 죽은 후, 신애(전도연)는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이사한다.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신애는 부자 행세를 하고, 이로 인해 아들이 납치되어 죽고 만다. 경기가 엉망이고 인구가 줄어든 소도시 밀양의 폐쇄적인 분위기는 신애 모자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계기를 만든다. 그리고 밀양은 뜻 그대로 햇빛이 가득한 고을이자 비밀의 볕이 비추는 곳이다. 신애가 행복할 때, 고통을 느끼는 순간에도 밀양(密陽)은 그녀를 비춘다.
밀양이 이상한 곳이라고 말하는 신애의 말에 종찬(송강호)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대답한다. 영화 속 밀양이라는 지역은 서울과 다름없이 삶이 계속되는 곳이다. 그리고 밀양은 신애에게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시’(2010)

중학생 손자와 함께 경기도의 임대 아파트에 사는 미자(윤정희)는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우기 시작한다. 문화 센터의 수강생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어떤 이는 반지하에서 임대 아파트로 이사한 순간을 떠올린다. 임대 아파트와 문화센터는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온 이들이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다.
지긋한 나이에도 힘든 일을 하며 손자를 키우는 미자는 치매까지 앓고 있다. 비극적인 사연으로 들리지만 현실에서도 많은 이들이 겪는 상황이다. 미자가 임대 아파트와 문화센터에서 느끼는 행복은 퍽퍽한 현실에서도 기쁨을 찾는 소시민들의 삶이 담겼다.
‘버닝’(2018)
종수와 해미, 벤의 공간은 그들의 삶의 방식만큼 확연히 구분된다. 종수의 고향인 파주의 농가와 해미의 후암동 원룸, 벤이 사는 반포의 고급 빌라가 그렇다. 이 시대 청춘의 다양한 모습인 이들이 왜 이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옥광희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작가라는 꿈을 가진 종수는 택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곳임에도 아버지의 수감, 굶고 있는 송아지 때문에 파주로 돌아왔다. 꿈과 현실의 괴리를 겪는 종수에게는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종수의 공간이 파주로 설정된 것에 대해 옥광희 프로듀서는 “종수는 윌리엄 포크너이다. 포크너의 소설에는 삶의 애환과 고통, 일상에서 나타나는 모든 감정이 담겨있다”며 “종수의 삶에도 그것을 담고 싶었다. 편리하지 않은, 노동이 있는 시골 공간을 통해 종수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벤은 젊은 나이에도 여유롭고 풍족한 삶을 사는 인물이다. 반면 직업은 알 수 없는, 존재 자체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옥광희 프로듀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벤처럼, 알 수 없는 공간이 바로 방배동이다. 겉모습은 단정하고 정돈되어 있지만 그곳을 이루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현실을 사는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벤과 방배동의 연관성을 말했다.

한편 해미는 끝없이 삶의 의미를 갈구한다. 카드빚으로 집에서 쫓겨난 상황에도 아프리카 여행에 가진 돈을 모두 쏟는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낭만을 잃지 않는 해미는 후암동의 비좁은 원룸에 산다. 작게 나마 서울타워가 보이고 하루에 한번 ‘잘하면’ 빛을 볼 수 있는 방이다. 옥광희 프로듀서는 “해미의 방에는 햇빛이 들어와도 금방 사라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 상승을 할 수 없게 된 지금의 현실을 알려준다”라고 말하며 해미의 좁은 원룸에 담긴 해미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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