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여성영화제 김선아 집행위원장 “여성 영화인 위한 비빌 언덕 되고파”

2018-05-29 14:26 성선해 기자

[맥스무비= 성선해 기자] 세상의 절반은 여성인데 정작 그들을 제대로 비추는 영화는 드물다. 여기에 착안해 출발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주년을 맞았다.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1회부터 영화제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가 말하는 지난 스무 해의 기억과 성과들, 앞으로 다가올 미래.

# 20주년을 맞이하다

1997년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주년을 맞았다. 국내 유일 국제 여성 영화제로, 그간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왔다.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성년이 된 영화제의 살림을 맡고 있다. 사진 강민구(SWAVE STUDIO)
1997년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20주년을 맞았다. 국내 유일 국제 여성 영화제로, 그간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왔다.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성년이 된 영화제의 살림을 맡고 있다. 사진 강민구(SWAVE STUDIO)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20주년을 축하합니다. 매회 치열한 걸음을 걸어왔지만, 성년이라고 하니 기대감이 더 커지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예전에 비해 덩치가 커지다 보니 준비할 것도 많고, 모셔야 할 손님도 많습니다. 일단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킬만한 좋은 영화도 보여드려야죠. 지금 사회를 관통하는 여성 이슈의 흐름을 놓쳐서도 안 되고요. 그러면서도 영화제가 축제다운 즐거운 분위기였으면 해요.

영화제의 성장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출품작의 개수입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는 61개국에서 총 957편의 작품이 도착했어요.

정말 행복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저는 아직 배가 고픕니다. 하하. 출품작의 수는 증가했지만, 여전히 극장에서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요. 회를 거듭할수록 출품작이 증가하길 바랍니다. 여성은 자극을 받고, 남성은 여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요. 프로그램이 늘 신선한, 늙지 않는 영화제를 지향합니다. 매년 찾아오는 명절처럼 사랑받고 싶습니다.

올해 가장 큰 성과는 국제장편경쟁과 한국장편경쟁 부문 신설입니다. 국제 영화제로서는 필수 요소인데,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그런 구색을 갖추기까지 20년이 걸렸어요.

맞아요. 스무 해가 되어서야 국제 영화제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피라미드 구조를 타파한, 인력의 선순환 구조 확립을 지향합니다. 여성 감독의 영화계 내 입지는 피라미드 구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맨 아래에는 영화학과나 관련 교육기관들이 있죠. 여기서 여성의 비율은 절반 혹은 40%입니다.  하지만 2단계 단편영화와 3단계 장편영화를 거치면 그 비율이 급속하게 줄어들어요. 극장에 걸리는 영화로 한정하면 10%까지 급감합니다.

영화 산업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키워나갈 수 있는 여성 감독은 정말 소수예요. 여성 감독들이 3단계에서 실력을 기를만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싶어요. 그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 감독의 영화도 많아지겠죠. 그래서 장편 경쟁 부문을 만들었습니다. 갈 길이 멀긴 하지만, 한 발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봐요.

영화 한 편의 탄생 뒤에는 지난한 과정들이 숨어있습니다. 젠더 감수성에 기반을 둔 영화들은 관객을 만날 확률이 훨씬 더 적고요.

정말 어렵죠. 어떨 때는 실망스럽고, 절망스럽기까지 해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자본집약적인 산업입니다. 엄청난 인력과 기술, 배우들이 필요하죠. 특히 여성의 경우 악조건들이 많습니다. 기자재 하나도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해 만든 경우가 없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계속 영화를 잘 만들었으면 합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여성 영화인들의 비빌 언덕이 되고 싶습니다. 여성 감독들뿐만이 아닙니다. 남성 감독들도 젠더 감수성이 예민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경우가 많아요. 그런 영화들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여성 영화제를 향한 선입견에 답하다

올해 영화제는 5월 31일(목)부터 6월 7일(목)까지 일주일간 메가박스 신촌에서 펼쳐진다. 사진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 영화제는 5월 31일(목)부터 6월 7일(목)까지 일주일간 메가박스 신촌에서 펼쳐진다. 사진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장편 경쟁 부분 진출작은다른 영화제와 비교했을 때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작품 내에서 여성이 다뤄지는 방식이 어떤지를 봅니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라고 해서 초청하지는 않아요. 주인공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시달려서 여성들이 보기 고통스러운 작품이라면, 우리 영화제의 지향점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물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죠.

일부에서는 여성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뻔하고 도식적일 것이라는 선입견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그럴 것이라 오해를 하시곤 해요. 그렇지 않고요. 쉽게 말해서 경합하는 스크린이란 개념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모든 가치들이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영화들이에요. 상업 영화나 블록버스터, 독립 영화 사이에 있는 지점에 속한 작품들이죠. 그런 영화들을 만나고 싶다면 여성 영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받아들여주신다면 영화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고요.

‘20주년 기념 앵콜전역시 눈에 띕니다. 영화제와 여성 영화의 발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되리란 기대가 큽니다.

사실 고민이 컸어요. 영화는 일종의 감정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좋은 감정들을 서로 교류하고, 자극을 주는 거죠. 그런데 10여 년 전 영화들은 사람으로 치면 유년 시절의 기억들인 거잖아요. 현재를 살고 있는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어요. 그런 부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3개의 부문으로 나눠져 있는데요. 각 섹션별로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월드 시네마에서는 역대 초청작 중 프로그래머들의 투표로 엄선한 영화들을 볼 수 있어요. 코리안 시네마에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동행해온 여성 감독들의 작품들을 모았습니다. 옥랑 다큐멘터리에서는 여성의 목소리와 시선을 담아내는 5편의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선정작들을 보면 ‘여성 영화제가 이렇게 흘러왔구나’라는 감정적 교류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역대 프로그래머들과 협업한 섹션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로도 애정이 큽니다.

# 변화하는 세상 속 생존을 모색하다

김선아 집행위원장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영화제의 성년식과 미래 모색 방안이다. 사진 강민구(SWAVE STUDIO)
김선아 집행위원장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영화제의 성년식과 미래 모색 방안이다. 사진 강민구(SWAVE STUDIO)

최근 젠더 이슈가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시대적 변화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게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을까요?

예산 및 지원이 여러모로 증가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죠. 그전에는 워낙 여타 영화제에 비해 지원이 미비했어요. 20회를 치르고 난 뒤 영화제가 받아든 평가를 통해 다시 이야기되어야할 부분이죠. 그간 관객 만족도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항상 1위였어요. 하하. 지원 수준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진흥위원회나 서울시, 일반 기업의 지원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는 국제영화제 사업에 묶여있습니다. 확실히 영진위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간 정권 교체나, 미투 운동 등이 있었으니까요. 반면 서울시의 지원은 조금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화제는 공적인 문화 영역이다보니 국가와 시의 지원이 굉장히 중요해요. 다행히 최근 들어 예산이 증액된 부분이 있어요. 20년을 버티니 해 뜰 날도 있더군요.

사기업의 경우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후원금을 입막음용으로 사용하려는 사례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퀴어 레인보우 섹션을 없애면 지원을 해주겠다는 식이죠. 자기네 기업을 비판하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후원하겠다는 경우도 있고요. 물론 저희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IPTV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활성화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인식 역시 흐려지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진행되는 영화제의 입장에서도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크실 것 같아요.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라는 매체를 둘러싼 산업 환경은 급변하는 중입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스트리밍 방식이 문화 산업을 파고들고 있어요. 일반 가정집의 TV들은 점점 더 커지고 있고요. 그럴 때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영화제는 어떤 생존 방식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큽니다. 전용 상영관을 만들 수도 있지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다른 플랫폼을 이용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영화 산업이 대면한 전반적 변화에 맞서 우리 영화제가 어떻게 자리매김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죠. 국제영화제들끼리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다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힘을 아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 시대의 상황이 여성 영화제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내다봤다. 사진 강민구(SWAVE STUDIO)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목소리가 가진 힘을 아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 시대의 상황이 여성 영화제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내다봤다. 사진 강민구(SWAVE STUDIO)

20회는 또 다른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향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새로운 시도는 무엇이 될까요?

아카이브 사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영화제 기간을 놓친 관객들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나’라고 문의를 하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아카이브를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아카이브 영화 대여 사업도 확대하고 싶습니다. 지역마다 여성 단체들이 주최하는 영화제들이 있어요. 전문성 보강을 위해 저희가 아카이브 영화들을 많이 대여해드리곤 합니다. 영화제 프로그램 전국 상영도 좋을 것 같네요.

전용 상영관 설립 역시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6개의 관에서 열려요.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상시적으로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합니다. 스웨덴처럼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거죠. 하나의 인증 마크처럼요. 상영관이 생기면 지속적으로 기획전을 열 수도 있는 거고요. 저 같은 영화제 프로그래머 출신에게는 꿈과도 같은 일이죠. 영화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고요. 그러려면 예산이 지금보다 더 증액되어야 합니다. 다른 영화제에 비해 규모가 턱없이 작아요.

1회부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함께 해왔습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인가요?

상영작이 매진될 때?(웃음) 전 세계에 여성 영화들이 정말 많아요. 여성 감독들의 비율이 전체적으로는 낮지만, 그들이 10%라 해도 전 세계로 놓고 보면 많거든요. 그걸 소화해내는 게 벅찰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관객들이 상영작을 두고 열광할 때는 뿌듯하죠. ‘내 안목은 정말이지’ 혹은 ‘역시 나야’랄까요. 하하. 농담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 정말 좋았어요’ 혹은 ‘여성영화제 프로그램이 국내 최고다’라는 반응이 돌아올 때를 꼽고 싶네요. 자화자찬 같나요?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코멘트들입니다.

무사히 20년을 꾸려왔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30주년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여전히 굳건히, 강렬하게 잘 살아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 윗세대는 남녀 가릴 것 없이 보수적이었어요. 반면 젊은 세대들은 달라요. 주관이 분명하고, 자기 목소리의 힘을 압니다. 훨씬 더 강렬하고 힘 있게 여성 영화제를 지지해주고 있죠. 30회 때도 그럴 것 같아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영화제와 함께 커나갈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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