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둔 작은 승리를 말하다 8

2018-06-08 17:37 성선해 기자

[맥스무비= 성선해 기자] 10명의 위안부ㆍ정신대 피해자들이 6년 동안 일본 정부를 상대로 13명의 무료 변호인과 함께 벌인 23번의 재판이 영화로 재탄생했다. 관부 재판을 다룬 ‘허스토리’다. 연대의 힘으로 함께 싸운 이들의 뜨거운 용기가 스크린 너머로까지 전해진다.

민규동 감독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서 부끄러웠다

민규동 감독의 신작 '허스토리'는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다. 사진 NEW
민규동 감독의 신작 '허스토리'는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다. 사진 NEW

6월 7일(목)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는 ‘허스토리’ 언론시사회와 간담회가 진행됐다. ‘허스토리’의 소재인 관부 재판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 최초 증언 기자회견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후 같은 해 서울 정신대 신고 전화가 개설되었고, 10월에는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가 부산 지역 정신대 신고 전화를 만들었다. ‘허스토리’는 부산을 기반으로 위안부 정신대 피해자들의 재판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당찬 원고 단장 문정숙(김희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민규동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누가 보겠나’ ‘힘들고 불편한 이야기다’라는 반응 속에서 좌절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도저히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나의 부채감을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위안부 관련 자료를 조사하다가 관부 재판에 대해 알게 됐다. 이 작은 승리의 기록이 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었다”라며 ‘허스토리’의 출발점을 공개했다.

# 김희애 부산 사투리, 일본어 보다 더 압박 느꼈다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 역은 특유의 강단으로 관부재판을 성사시킨 일등공신이다. 사진 NEW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 역은 특유의 강단으로 관부재판을 성사시킨 일등공신이다. 사진 NEW

김희애는 부산의 여행사 사장 문정숙을 연기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 전화를 개설한 뒤,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생을 앗아간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느끼는 인물이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는 관부 재판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문정숙은 일본과 주로 거래를 하는 여행사의 사장이다. 김희애는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를 모두 연습했다. 그는 “사실 부산 사투리는 겁이 안 났다. ‘일본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라며 “뚜껑을 열어보니 부산 사투리가 더 큰 압박이었다. 가짜처럼 보이면 극에 영향이 있을 것 같아 자면서도 사투리를 들으며 연습했다”라고 그간의 노력을 말했다.

# 김해숙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 0.01%도 알 수 없었다

김해숙은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할머니 역이다. 사진 NEW
김해숙은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할머니 역이다. 사진 NEW

과거의 상처를 당당하게 공개하며 일본 재판정에서 일격을 가하는 배정길 할머니 역은 김해숙이 맡았다. 문정숙 집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살아온 그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문정숙이 이를 알게 되면서 관부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김해숙은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겁 없이 덤볐던 작품”이라 했다. 이어 “촬영을 하면 할수록 내가 그 분들이 가진 아픔의 깊이를 단 0.01%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가갈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다. 나 자신을 다 내려놓고 백지로 만들어야 했다”라고 몰입 과정을 설명했다.

# 예수정 주인공들의 용기, 내게 뜨겁게 다가왔다

예수정은 거친 입담과 행동 속에 과거의 상처를 숨긴 박순녀 할머니 역이다. 사진 NEW
예수정은 거친 입담과 행동 속에 과거의 상처를 숨긴 박순녀 할머니 역이다. 사진 NEW

시원시원한 입담과 기세로 일본 재판정에서도 사죄를 요구하는 박순녀 할머니는 예수정이 연기한다. 평양 출신으로 과거에 받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억세게 살아왔다. 거친 말투와 행동 속에는 어린 시절 당한 아픔이 깊이 새겨져 있다.

예수정은 “내가 몰랐던 역사 이야기였다. 많이 다가가려 노력을 했다. 그 분들의 용기가 내게 뜨겁게 다가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 내 안에서 뭔가 뭉글뭉글 올라온다. 할머니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게 된다. 아직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문숙 나를 내려놓고 전부 던졌다

문숙은 정신대 피해자 서귀순 할머니 역이다. 사진 NEW
문숙은 정신대 피해자 서귀순 할머니 역이다. 사진 NEW

열네 살에 정신대에 끌려갔던 서귀순 할머니 역으로는 문숙이 출연한다. 소심하고 겁이 많기에, 자신은 위안부가 아니라 정신대라고 말하며 재판에 나서기를 망설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내어 관부 재판에 힘을 보탠 인물이다.

문숙은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이용녀 등 ‘허스토리’로 호흡을 맞춘 다른 배우들과의 연대감에 대해 말했다. 그는 “동료 배우들은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반면 나는 공백기가 길었다. ‘허스토리’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서 배우기로 마음먹었다”라고 했다. 이어 “일단 나를 내려놓고 무조건 던졌다”라며 촬영 당시 마음가짐에 대해 말했다.

# 이용녀 “‘허스토리통해 사회적 소용돌이 일어나길

일본군의 만행에 의해 정신적 트라우마를 얻게 된 이옥주 할머니 역은 이용녀가 연기한다. 사진 NEW
일본군의 만행에 의해 정신적 트라우마를 얻게 된 이옥주 할머니 역은 이용녀가 연기한다. 사진 NEW

형제를 대신해 일본군에게 끌려간 이옥주 할머니 역은 이용녀가 맡았다. 끔찍했던 과거는 트라우마로 남았고, 결국 마음의 병을 얻었다. 소녀 같은 미소와 발랄한 행동 뒤에는 깊은 아픔이 있다.

이용녀는 “위안부 문제는 뉴스에 나올 때마다 피하고 싶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스토리’ 대본을 받는 순간 ‘더 이상 피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내 문제이자 우리나라의 문제이며, 우리의 숙제이지 않는가”라고 했다. 이어 “영화를 통해 사회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라는 소망을 밝혔다.

# 김준한 괜히 내가 폐를 끼치면 어쩌나 걱정

김준한은 관부재판의 변론을 맡은 이상일 변호사 역이다. 사진 NEW
김준한은 관부재판의 변론을 맡은 이상일 변호사 역이다. 사진 NEW

관부 재판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무료 변론으로 도운 변호사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재일 교포 변호사 이상일(김준한)은 변호인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문정숙의 부탁을 받고 관부 재판에 뛰어든 뒤, 침착하고 이성적인 자세로 재판을 이끌어나간다.

이상일 역의 김준한은 ‘군함도’(2017) ‘박열’(2017) 등에 출연했다. 특히 ‘박열’에서는 안정적인 연기력과 뛰어난 일본어 실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모두 역사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들이다. 김준한은 “시나리오를 받고 내가 괜히 폐를 끼치면 어쩌나 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민규동 감독의 설득이었다. 김준한은 “감독님이 ‘네가 관부 재판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용기를 냈다”라고 밝혔다.

# 민규동 감독 세상이 바뀌는 큰 신호를 기대한다

앞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룬 영화들이 개봉해 관객의 사랑을 받았었다. '귀향'(2016) ‘눈길’(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등이 대표적이다. 민규동 감독은 “향후 ‘이런 영화 만든다고 바뀌는 게 있을 것 같으냐’라는 질문을 받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세상이 꿈쩍하지 않아도 영화를 본 우리는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그게 세상이 바뀌는 큰 신호라고 본다”라고 했다. 이어 “내 시나리오 보다 훨씬 훌륭히 표현해준 배우들에게 고맙다”라고 덧붙였다. 오는 6월 27일(수)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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