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 배우·연극 제작자·영화감독 ‘성혜의 나라’ 정형석 감독

2018-06-12 00:00 채소라 기자

[맥스무비= 채소라 기자] 올해 19회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작 ‘성혜의 나라’를 연출한 정형석 감독. 그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연극판에 뿌리를 둔 공연 제작자이자 베테랑 배우다. 일터의 중심을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가는 중인 정형석 감독에게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 ‘성혜의 나라로 전주 영화제 대상 받다

정형석 감독은 첫 연출작 ‘여수 밤바다’로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연이어 올해에는 두 번째 작품 ‘성혜의 나라’로 초청받아 대상을 받았다. 사진 시티카메라(임영웅)
정형석 감독은 첫 연출작 ‘여수 밤바다’로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연이어 올해에는 두 번째 작품 ‘성혜의 나라’로 초청받아 대상을 받았다. 사진 시티카메라(임영웅)

두 번째 연출작 성혜의 나라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작년에 첫 연출작 여수 밤바다’(2017)로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하고 올해 두 번째로 간 거로 알고 있어요.

네, 두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대상을 받았을 때는 ‘젊은 감독들도 많은데 내게 왜?’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감독으로서 저는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이거든요. 제게 상을 주신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영화 작업을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상을 주신 분들이 헛수고 하게 되어 버리니까요. 상이라는 것이 확실히 동기부여가 됩니다.

뒤늦게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여수 밤바다’ ‘성혜의 나라’처럼 저예산 영화를 찍고는 있지만 사실 독립영화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극단에서 배우로 시작해서 지금도 공연 제작을 하고 있습닏. 연극판 자체가 사실은 독립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상업적이지도 않고요. 상업영화는 투자 받는 단계부터 오래 걸리고 진이 빠지잖아요. 그럴 바에는 연극 하나 만들 듯이 가볍게, 적은 예산으로 영화연출을 시도해봤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하자’라는 취지로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성혜의 나라는 취업준비생 성혜(송지인)와 공무원고시준비생인 성혜의 남자친구 승환(강두)의 일상을 다룬 청춘영화입니다.

사실 청춘세대가 그 세대를 그리면 정확하게 짚어볼 수는 있겠죠. 저는 청춘들 가운데에 있기보다 바깥에서 보는 지켜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촬영도 다큐멘터리처럼 한 발 떨어진 거리에서 했습니다.

감독님과 주인공은 세대도 다르지만 성별도 달라요.

청춘이 겪는 고통스러움과 현실에 대한 어려움을 끄집어내려고 보면, 현재까지는 남자와 여자가 어려움을 겪는 지점이 다릅니다. 같은 세대라고 하더라도요. 더 힘든 부분을 보여주려면 여자의 이야기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여자가 겪는 어려운 점이 더 많잖아요.

제목을 고심 끝에 ‘성혜의 나라’로 지은 이유도 관객이 ‘성혜가 살아가는 나라’를 봐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가장 좋다고 해서 세 번 만에 확정했어요. 그 전에는 ‘해피’ ‘그녀는’ 같은 추상적인 제목이었습니다.(웃음)

‘성혜의 나라’는 취업준비생 성혜와 설렁설렁 공무원고시를 준비하는 그의 남자친구 승환의 이야기다. 느리고 무기력한 호흡으로 오늘날 청춘의 초상을 담았다. 사진 19회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성혜의 나라’는 취업준비생 성혜와 설렁설렁 공무원고시를 준비하는 그의 남자친구 승환의 이야기다. 느리고 무기력한 호흡으로 오늘날 청춘의 초상을 담았다. 사진 19회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

흑백영화이기도 한 성혜의 나라는 결말도 독특합니다. 취업하지 못한 성혜가 도전 혹은 포기하는 게 아니라, 돌연 전혀 다른 인생을 결심해요. 그레타 거윅 주연작 프란시스 하’(2014) 같은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그 작품을 참고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분위기인 것 같긴 합니다. 단조롭고 루즈한 흐름을 담고 싶었습니다. ‘성혜의 나라’를 지인들에게 모니터링 할 때도 한 쇼트의 호흡이 굉장히 길고 느리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이 이야기에 느린 흐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긴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업영화가 아니니까 하고 싶은 대로 찍으면 된다면서 밀어붙인 거죠. 또 영화보다 공연에 익숙하다 보니 한국영화에서 보이는 관습적인 클리셰가 적게 들어간 것 같기도 해요.

화면은 처음부터 흑백으로 구상했습니다. 예산이 적은 것도 이유이긴 했지만, 이야기가 너무나 현실적이다 보니까 반대로 판타지처럼 느껴지도록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모호하고 모순적이기도 한데, 현실적인 이야기가 강하게 와 닿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감독님은 지금의 청춘세대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저는 1980년대에 청춘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지금 청춘을 기성세대와 비교하잖아요. 그러다보면 ‘우리 때는 더했다’고 하면서 우리 세대보다 노력을 안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요즘 청춘들한테 먹고 사는 문제만 생각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인간은 누구나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해요. 당연한 겁니다. 다만 1980년대에는 아날로그 시대라서 낭만이라도 있었다고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드림시어터컴퍼니라는 극단에서 예술감독을 하고 있는데, 젊은 친구들 보면 걱정도 돼요. 젊어서야 열정으로 산다지만 나이 들어서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을 겁니다. 돌아갈 수도 없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청춘시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성혜의 나라’에 그렸습니다.

# 영화 강남 1970’ 같은 삶, 그 후 도전한 연극

젊은 시절 상경한 정형석 감독은 우연히 연극계에 입성했다. 처음 연기활동을 시작한 곳은 현대극단이다. 사진 시티카메라(임영웅)
젊은 시절 상경한 정형석 감독은 우연히 연극계에 입성했다. 처음 연기활동을 시작한 곳은 현대극단이다. 사진 시티카메라(임영웅)

처음 연극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고향은 전라도인데 서울에 올라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젊을 때는 당연히 큰물에 가고 싶은 욕심 때문에 상경했어요. 지금 들으면 엉뚱해 보이는데 처음 서울에서 시작한 일이 ‘부동산 브로커’였습니다. 올림픽이 시작하고 서울에 아파트들이 들어설 때 복부인에게 분양해주는 일이었죠. 제 젊은 날은 딱 영화 ‘강남 1970’이었어요.(웃음) 물질의 맛도 봤지만 폭력적인 이면까지 보게 됐죠. 거기에 비춰보니 제 미래도 눈에 훤하더군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인생이 이렇게 흐르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 후에는 우연히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하게 됐죠.

처음 들어간 극단은 어디였나요?

현대 극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40년 넘은 무척 큰 극단이죠. 현대극단 창단 멤버는 이순재 선생님이시고 선배들은 연구생 1기가 김갑수, 개그맨 임하룡, 이혜영, 가수 윤복희 등등 계십니다.

정확히 만 8년 동안 현대극단에서 활동했습니다. 연극, 뮤지컬 공연에 서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인공도 하고 연봉도 극단에서 제일 많이 받을 때에 그만두고 나왔어요.

배우 생활을 그만 둔 이유가 무엇인가요?

잘 안 풀려서가 아니라 사실 해볼 만큼 다 해봤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20대 청춘을 무대 위에서 보내봤으니 30대는 다른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었죠. 늘 ‘이렇게 삶을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으로 보내온 것 같습니다. 당시에 배우는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배우 생활을 접고 30대에 도전한 일이 방송작가, 영화 각본가인 거군요.

배우 경력으로 직장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우연히 작가교육원 모집 공고를 보고 ‘그래, 글쓰기를 좋아했으니까 공부해보자’ 싶어서 교육원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영화계로 발을 들였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 작업도 하고, 방송 작가로도 일했어요. 그런데 방송계는 비즈니스 성향이 강하고 수직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저랑 맞지 않았어요.

다시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영화감독을 준비했습니다. 그때 함께 고생하며 가장 친하게 지냈던 멤버가 ‘범죄도시’(2017) 강윤성 감독입니다. 그 힘들고 우울한 시기를 같이 보냈던 동료예요.(웃음) 저는 40대가 넘어가면서 더 이상 세월을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연극 제작자로 자리를 잡았는데, 강윤성 감독은 이때까지 죽어라 한 우물을 파서 성공했죠. 저는 다시 돌아가도 그같이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극이 저랑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이렇게 자리를 잡고 나니까 또 과거에 성취하지 못했던 영화에 욕심이 생겼어요.

# 영화계로 중심 옮겨 연기와 연출생활 이어간다

정형석 감독이 출연한 영화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2016) 진행자 역, ‘아수라’ 송감찰관 역, ‘범죄도시’(2017)회갑연 사회자 역, ‘1987’ 서울지검 고참기자 역, ‘골든슬럼버’ 차형사 역.
정형석 감독이 출연한 영화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2016) 진행자 역, ‘아수라’ 송감찰관 역, ‘범죄도시’(2017)회갑연 사회자 역, ‘1987’ 서울지검 고참기자 역, ‘골든슬럼버’ 차형사 역.

포털사이트에 정형석 감독을 검색하면 배우로서 쌓은 필모그래피가 대부분입니다. ‘아수라’(2016) ‘범죄도시’ ‘1987’(2017) ‘골든슬럼버’(2017)까지 한국 상업영화에 단역, 조연으로 출연했어요.

사실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된 배우이기도 합니다.(웃음) 아무래도 업계에 인맥이 있다 보니 많은 영화에 출연하게 된 거고, 지금은 출연료가 제 수입원이에요. 연극은 돈 까먹는 일이에요. 창작활동으로 돈을 벌 수 없잖아요. 제 영화 출연료를 벌어서 연극배우들 출연료를 주죠.(웃음) 소속사에서 보기에 제가 영화 연출하는 건 ‘딴짓’일 겁니다.

배우에 연극 제작자, 영화감독까지.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공연이 제 일의 중심입니다. 이제 ‘여수 밤바다’나 ‘성혜의 나라’ 같은 영화를 계기로 그 중심을 영화 쪽으로도 가져가 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연극을 제 집 같아요. 대학로에 잡은 터전을 버릴 순 없으니 ‘두 집 살림’이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지금은 영화와 연극 제작사를 모두 만들어서 둘 다 잘 키우려고 합니다.

세 번째 연출작은 앙상블이라는 영화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영화인가요?

전주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만들게 된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2017년에 전주 영화제에서 우연히 감독 공고를 보고 응시했는데 운 좋게 최종 선정됐습니다. 전주 지역에서 공연됐던 희곡을 영화화하는 프로젝트라서 저와 잘 맞는 작업입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원작에 얽매이지 말고 새롭게 바꿔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주라는 도시에서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따뜻한 이야기로 풀려고 합니다. 6월에 캐스팅을 진행하고 9월에 촬영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영화는 앞으로 1년에 한 편씩 꼭 만들 겁니다.

+ 20대 당시 정형석 감독에게 전하는 한 마디.

“더 공부해라. 뭐든지.”
후배들에게도 늘 하는 말입니다.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결국 사회생활에서 이기고 지는 싸움은 무엇이든 아느냐 모르느냐 차이에서 결판이 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계속 도전하고 부딪혀야 하니까 공부해야 해요. 시골애가 서울에 와서 힘든 이유는 무얼 몰라서죠. 체험으로 얻어지는 것도 있지만 시간이 걸리잖아요. 결국 먼저 겪어본 사람들한테 조언 얻거나 물어보면 좋을 텐데, 요즘은 기성세대와 청춘 사이에 교류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어른들에게 불신이 있어서 안 배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정형석 감독은 누구?

올해 19회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작 ‘성혜의 나라’를 연출한 정형석 감독은 연극 제작사 드림시어터컴퍼니의 예술감독이다. 현대극단 출신 배우로 독립 단편영화 ‘대리 드라이버’(2017)와 다양한 상업영화에서 단역, 조연으로도 출연한다. 지난해에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독립 장편영화 ‘여수 밤바다’를 시작으로 영화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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