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세 | ‘튼튼이의 모험’ 고봉수 감독 “영화의 매력은 변수에서 오는 희열”

2018-06-22 20:45 채소라 기자

[맥스무비= 채소라 기자] 고봉수 감독이 17회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작 ‘델타 보이즈’(2016)에 이어 신작 ‘튼튼이의 모험’으로 돌아왔다. 고봉수 감독의 두 장편영화는 모두 철저한 애드리브 연기로 이루어진 작품. 그는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 영화의 매력을 느낀다.

# 고봉수 감독과 배우들의 삶을 녹인 ‘튼튼이의 모험

‘튼튼이의 모험’은 ‘방자전’ 김대우 감독이 고봉수 감독에게 함평농업고등학교 레슬링부 이야기를 들려주어 영화화 됐다. 사진 SWAVE STUDIO(강민구)
‘튼튼이의 모험’은 ‘방자전’ 김대우 감독이 고봉수 감독에게 함평농업고등학교 레슬링부 이야기를 들려주어 영화화 됐다. 사진 SWAVE STUDIO(강민구)

함평 올로케이션이라는 영화 소개가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를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촬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튼튼이의 모험’은 함평농업고등학교 레슬링부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입니다. 촬영지는 그 학교 체육관을 쓰고 싶다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실제 학교의 레슬링부 감독님이 ‘촬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오시라’고 흔쾌히 빌려주었어요. 그 감독님이 아이들 전지훈련까지 취소시키면서 ‘튼튼이의 모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영화화 하게 됐습니까?

‘방자전’(2010) 김대우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줬습니다. 예전엔 레슬링 명문 고등학교였는데 지금은 없어질 위기에 놓인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김대우 감독님은 이 소재로 로브 라이너 감독의 ‘스탠 바이 미’(1986) 같은 영화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저는 그런 성장영화 보다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아이들을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 주인공들은 레슬링부 감독님을 중심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감독님은 설리반 선생님 같은 분이고 아이들도 인성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거기에 반했습니다.

영화에서 충길(김충길)은 홀아버지와 살고 진권(백승환)은 다문화 가정, 혁준(신민재)은 형, 누나와 함께 살아갑니다. 이같은 주요 인물을 구성할 때도 실제 인물들을 참고했습니까?

네, 실제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친구도 있고 고아도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레슬링이 이렇게 힘든 운동인지 처음 알았거든요. 매일매일 울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표정이 밝고 어른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도 합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꼭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영화에는 그런 제 마음이 표현이 다 안 됐어요. 안타깝습니다. 함평에 가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마 아실 거예요.

고봉수 감독은  ‘루저’로서 살아온 본인과 배우들의 삶을 영화에 담았다고 말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 인디스토리
고봉수 감독은  ‘루저’로서 살아온 본인과 배우들의 삶을 영화에 담았다고 말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 인디스토리

충길은 극중 가장 성실하고 레슬링 훈련도 5년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단 며칠 훈련받은 혁준이 하는 엎어치기도 못하고 혼나죠. 이런 비운의 캐릭터 충길은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충길 뿐만 아니라 극중 모든 인물은 사실 저와 배우들의 삶이 투영됐습니다. 저희 모두 ‘루저’로서 삶을 살아왔고 늘 밑바닥을 기고 있었어요. 영화를 계속 할지 말지 고민과 갈등을 매 순간 해왔던 사람들입니다. 배우들도 저렇게 재능이 많은데 10년 동안 프로필을 돌려도 어디 한 군데에서 연락 오지 않고, 저 같은 경우도 영화 200편을 찍었는데 어느 한 군데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었죠. 그 당시 저희의 감정을 캐릭터에 녹였습니다.

연출뿐만 아니라 직접 촬영감독까지 맡았습니다. 버스 신에서 룸미러를 비추는 장면이나 후반에 날라차기 신 등 흔히 볼 수 없던 화면 구도가 독특했어요.

인물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게 중요해서 흔치 않은 앵글이 나온 게 아닐까요. 이 영화는 콘티 없이 촬영했고 대사나 액션도 배우들의 애드리브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한 화면에 등장인물을 담아내야 했죠. 버스 신 같은 경우는 룸미러에 두 명이 비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나온 장면입니다. 사실 제작비가 여유로웠다면 당연히 다른 영화처럼 카메라 여러 대를 설치해서 배우 얼굴을 정면으로 찍었을 거예요. 저희 영화에 거울이 유독 많이 등장합니다. 중국집이나 체육관 장면 등 모두 여러 인물을 한 장면에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촬영해서 시간을 줄이기 위한 작업방식이죠.(웃음)

영화는 여러 스태프들이 협업하는 작품인데 콘티 없이 촬영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머리속으로 생각한 그대로 영화가 나오면 무슨 재미일까요? 저는 변수를 만나면서 탄생하는 장면들이 좋습니다. 그런 순간이 너무 재미있고 희열이 느껴져요. ‘튼튼이의 모험’에서는 상다리가 부서지면서 뜨거운 라면이 엎어졌습니다. 현장에서는 무척 놀랐는데, 편집 과정에서는 ‘와, 끝내준다’ 싶었습니다. 그 장면을 영화에 그대로 다 쓸 때 영화에 매력을 느낍니다. 날라차기 신에서도 지나가던 동네 아저시가 슬쩍 들여다 보십니다. 그때도 ‘나이스~’ 외쳤죠.

고봉수 감독은 큰 틀만 시나리오에 쓰고 구체적인 상황, 대사는 배우들에게 애드리브 연기로 맡겨 영화를 만든다. 현장에서 나오는 변수가 고봉수 감독에게 희열을 안긴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 인디스토리
고봉수 감독은 큰 틀만 시나리오에 쓰고 구체적인 상황, 대사는 배우들에게 애드리브 연기로 맡겨 영화를 만든다. 현장에서 나오는 변수가 고봉수 감독에게 희열을 안긴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 인디스토리

배우들도 애드리브 연기를 했고 화면 자체도 극영화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의도한 부분인가요?

코미디일수록 오히려 장난스럽게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델타 보이즈’ 때부터 다큐멘터리처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코미디가 유발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델타 보이즈’ ‘튼튼이의 모험’이 모두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맞닿는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극중 주인공들의 가족 이야기도 비중 있게 나옵니다. 가족들은 레슬링 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거나 대학에 진학할 기회로 생각하는데, 감독님이 생각하는 가족과 꿈의 상관관계를 설명하자면요?

가족 자체가 애증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향해서 달려가다 보면 발목을 잡는 존재가 가족일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걸 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해.’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 보니 충길처럼 레슬링의 꿈을 가로 막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설정을 집어넣고 싶었습니다. 또 가족은 꿈을 강력하게 가로막을 수 있는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영화든 연극이든 예술계통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식구들한테는 고통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거 한다. 정신 좀 차려라.’ 이런 반응들이 오잖아요. 그 말들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튼튼이의 모험으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요?

‘우리의 젊은이들이 야성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마이웨이’를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야성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야성은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 고봉수 사단: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

(왼쪽부터)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 세 배우는 10년 지기이며 고봉수 감독은 배우들과 4년째 영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 인디스토리
(왼쪽부터) 고봉수 감독, 배우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 세 배우는 10년 지기이며 고봉수 감독은 배우들과 4년째 영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 인디스토리

델타 보이즈에 이어 이번 영화도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와 함께 했습니다. 고봉수 사단과 어떻게 인연을 이어왔는지 궁금합니다.

단편영화까지 포함해서 일곱 편 정도 함께 영화를 찍은 것 같습니다. 단편영화 ‘쥐포’(2015)가 인디포럼 영화제에 소개됐고 그 전에는 습작이었습니다. 한 작가 소개로 백승환 배우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백승환 배우가 데려온 친구들이 김충길, 신민재입니다. 세 배우는 10년 지기인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배우들과 4년 정도 함께 했습니다.

배우들과 가장 잘 맞는 점이 있다면요?

웃음 포인트가 잘 맞아요. 그래서 뭘 해도 신나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런 거 해봐. 이거 웃겨’라고 말했는데 취향이나 코드가 안 맞으면 더 이상 코미디를 이어갈 수가 없거든요. 저희는 이제 ‘아’ 하면 ‘어’, 척하면 척이죠.

# 영화인생 15, 필모그래피만 200여 편

어린 시절부터 영화 마니아였던 고봉수 감독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적은 돈으로  ‘엘 마리아치’를 만든 이야기를 본 후 뒤늦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사진 SWAVE STUDIO(강민구)
어린 시절부터 영화 마니아였던 고봉수 감독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적은 돈으로  ‘엘 마리아치’를 만든 이야기를 본 후 뒤늦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사진 SWAVE STUDIO(강민구)

재작년에 델타 보이즈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영화감독을 시작했고 영화 작업은 15년 정도 이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영화를 찍게 됐습니다. 워낙 어릴 적부터 영화 마니아였습니다. 어느 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자서전을 읽고 영화가 하고 싶어졌어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단 7,000달러로 ‘엘 마리아치’(1992)를 만든 이야기를 보고 너무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때 바로 영화학원을 찾아가서 카메라 작동법, 편집을 배웠습니다. 단편영화 작업도 바로 시작했죠. 첫 번째 영화는 레슬링부 코치 역할을 맡은 고성완 배우와 찍었습니다. 제 삼촌이에요. 그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일과 영화작업을 병행했습니다. 당시에 반응도 괜찮았어요. ‘컵 오브 커피’라는 단편영화로 수상도 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관객으로서는 영화라는 것이 현실도피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삶이 워낙에 비루하다 보니까 뭐 하나 즐거운 게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에 빠져들었습니다. 고전 걸작을 보면서 영화에 빠져들었고 감독이 누군지 찾아보게 되고, 그 감독에게 빠지게 됐습니다.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영화 매력이라는 것에 대해서 계속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감독으로선 영화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출이든 연기지도든 잘하는 건지,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의 기준은 무엇인지요. 기준이 모호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영화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관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보니까 점점 영화를 제 취향에 따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라는 생각입니다.(웃음)

델타 보이즈튼튼이의 모험을 이어갈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한국형 히어로 액션 영화입니다. 영화제작사 덱스터에서 제작하는 영화라서 규모가 조금 더 커질 것 같습니다.

+ 고봉수 감독이 말하는 고봉수 사단

(왼쪽부터) 김충길, 신민재, 백승환, 고봉수 감독은 맥스무비와 인터뷰를 위해<b> </b>‘고봉수 사단’ 콘셉트 화보를 제안했다. 사진 SWAVE STUDIO(강민구)
(왼쪽부터) 김충길, 신민재, 백승환, 고봉수 감독은 맥스무비와 인터뷰를 위해 ‘고봉수 사단’ 콘셉트 화보를 제안했다. 사진 SWAVE STUDIO(강민구)

김충길은 정말 매소드 연기자인 것 같습니다. 외국 배우로 따지자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와킨 피닉스 같아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도 그 배우들한테는 연기지도를 안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제게 김충길 배우가 그런 배우입니다. 가급적이면 터치하지 않으려고 하는 배우예요.

신민재는 워낙 유머감각이 탁월합니다. 선천적인 코미디 감각이 있죠. 그래서 애드리브 연기를 할 때마다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어줍잖은 시나리오가 있는 것보다 배우에게 맡겼을 때 나오는 코미디가 더 좋은 배우입니다.

백승환은 존재만으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 같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받쳐주는 역할을 잘합니다. 백승환 배우 덕에 ‘델타 보이즈’나 ‘튼튼이의 모험’에 진중한 느낌이 안 나왔을 겁니다. 백승환의 역할은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20대 고봉수 감독에게 보내는 한 마디.

“너무 울지 말아라.”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는 거니까요. 모든 예술인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안 힘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도 다 이겨내시면서 하고 계시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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