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박훈정 감독이 들려주는 핏빛 필모그래피의 비하인드

2018-06-30 00:15 채소라 기자

[맥스무비= 채소라 기자] “피가 튀어야 되는 장면에서는 당연히 피가 튀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잔혹하더라도 영화 분위기에 맞다면 현실적인 장면 묘사가 필요하다는 박훈정 감독. 그가 각본, 연출한 작품 중 반 이상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영화이지만 그 시작점은 겹치지 않고 다채로웠다.

악마를 잡으려다 악마가 되는 이야기, 각본작 악마를 보았다

‘악마를 보았다’는 박훈정 감독이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되어 가는 평범한 사람을 보여주려고 한 작품이다. 사진 쇼박스
‘악마를 보았다’는 박훈정 감독이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되어 가는 평범한 사람을 보여주려고 한 작품이다. 사진 쇼박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악마를 보았다’는 각본가로 입봉한 박훈정 감독의 첫 작품이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이 영화는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과 그에게 살해된 약혼녀를 잃은 국정원 경호요원 김수현(이병헌)이 펼쳐내는 잔혹함의 향연이다. 평범한 남자였던 김수현은 연쇄살인범을 죽을 만큼의 고통만 가하고 놓아주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응징한다.

박훈정 감독은 “장경철을 진짜 악마라고 생각하지만 그 악마에게 복수하는 김수현도 악마가 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악마를 보았다’에 대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설명했다. 박훈정 감독은 “기사 밑에 달린 댓글창”에서 인간의 악마성을 발견했다. “글 쓴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댓글 내용은 잔인함의 끝을 달린다”는 점에 주목해 시나리오를 썼다.

경찰청을 찾아간 대통령 실화, 각본작 부당거래

류승완 감독이 연출했던 ‘부당거래’는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찰청에 찾아가 여론이 들끓었던 납치 미수 사건 수사를 독촉한 실화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류승완 감독이 연출했던 ‘부당거래’는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찰청에 찾아가 여론이 들끓었던 납치 미수 사건 수사를 독촉한 실화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박훈정 감독이 각본을 쓴 두 번째 영화. 전작에 이어 다시 한 번 연쇄살인범 이야기 썼고 또 청소년관람불가로 완성됐다. 경찰은 대통령의 지시로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에 경찰 최철기(황정민), 검사 주양(류승범), 조폭인 경찰 스폰서 장석구(유해진)가 가짜 범인, 가짜 범행과정을 만드는 이야기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는 바로 쓰레기장 신. 유해진이 가짜 범인을 협박하면서 악랄한 인간의 표본을 연기했다.

가짜 범인을 만든다는 설정은 실화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2008년에 벌어졌던 일명 ‘일산 엘리베이터 폭행, 납치 미수사건’이다. 초등학생을 구타한 후 납치하려던 한 남성의 모습이 CCTV에 찍혔지만 이후 경찰은 범인의 동선이 CCTV에 다 담기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이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찰청을 전격 방문해 경찰을 독촉했고 다음날 바로 범인이 잡혔다. 박훈정 감독은 “경찰은 ‘동선이 없어서 못 잡는다’고 말했었다. 어떻게 다음날 잡지? 진짜 범인이 맞나?” 하는 의문을 품고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조선 귀향병의 만남 혈투

박훈정 감독은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캐릭터 관계를 사극 장르로 탄생시켰다. 사진 KT, 싸이더스
박훈정 감독은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캐릭터 관계를 사극 장르로 탄생시켰다. 사진 KT, 싸이더스

박훈정 감독의 연출 데뷔작. ‘혈투’(2011)는 광해군 11년 만주벌판에서 적진 한가운데에 고립된 세 조선군 현명(박희순), 도영(진구), 두수(고창석)의 난투극이다. 세 사람은 청군의 추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 장검, 단도, 도끼를 움켜쥔 채 살의를 품는다. 전쟁영화이지만 전투 액션보다 낙오된 세 인물의 심리에 집중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종족이 세 개라고 하더라. 그 세 종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약자라고 들었다.” 게임을 즐기지 않았던 박훈정 감독은 PC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가위바위보처럼 약점이 맞물린 캐릭터의 관계를 인물 관계에 반영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박훈정 감독은 “예산이 적어서 한 장소에서 찍어야” 했으며 “치고 박고 해야 하니 현대물 보다 사극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전에 생각했던 전투에서 항복하고 살아남은 귀향병 이야기를 합쳐 ‘혈투’가 탄생했다.

대부의 기업형 범죄조직 버전 신세계

박훈정 감독은 범죄조직 골드문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진 NEW
박훈정 감독은 범죄조직 골드문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진 NEW

관객 468만 명을 모은 박훈정 감독의 최고 흥행작 ‘신세계’는 한국영화사에 대표적인 누아르 영화로 기록된 작품이다. 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과장(최민식)이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국내 최대 범죄 조직 ‘골드문’에 잠입 수사를 명하면서 시작된다. ‘신세계’라 명명한 작전의 성공만 바라보는 강과장, 진정으로 의리를 나눈 골드문 실세 정청(황정민)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자성이 배신과 동지애를 느낀다.

평소 누아르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박훈정 감독은 “갱스터 에픽 장르”를 만들고 싶었다. ‘대부’ 시리즈가 가문의 이야기라면 ‘신세계’는 범죄조직 골드문의 이야기로 이어가고 싶었어서 시작하게 된 것. 박훈정 감독은 “개인보다 조직의 흥망성쇠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며 “골드문이 해체될 때까지 계속 나올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시대를 마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대호

대호는 한 시대를 마감하는 사람들과 그 삶을 상징한다. 사진 NEW
대호는 한 시대를 마감하는 사람들과 그 삶을 상징한다. 사진 NEW

‘신세계’ 이후 최민식과 재회한 영화다. 1925년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이 조선 마지막 호랑이 대호를 찾아 헤매고 또 교감한다. 대호를 좇는 또 다른 한 축은 일제강점기의 일본군이다. CG로 만들어낸 주인공 대호에 한국의 아픈 과거사를 투영한 이야기가 독특했던 작품이다.

박훈정 감독이 처음 주목했던 것도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대호가 상징하는 건 한 시대를 마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그 호랑이가 사라짐과 동시에 “자연과 삶, 그에 어우려져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가 바뀌었다”고 영화를 설명했다.

시스템이 제기능을 못하는 비극 브이아이피

‘브이아이피’는 등장인물을 통해 국제정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작품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브이아이피’는 등장인물을 통해 국제정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작품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마녀’ 이전의 최근작 ‘브이아이피’는 남한의 국정원과 CIA가 기획해 북에서 내려온 VIP 김광일(이종석), 김광일을 유력한 살인범임을 직감한 경찰이 등장한다. CIA와 국정원 사이의 기획 귀순자를 둘러싼 알력 다툼, 경찰의 봐주기 수사, 검찰과 경찰의 거래까지 다양한 국내외 정세가 한 데에 얽혔다. 이 중심사건 이전에 드러난 재력가 사이코패스 김광일의 살인사건은 잔인하게 묘사되면서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다.

박훈정 감독은 각 인물들에게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투영시켰다. 그는 “시스템이 붕괴돼 사회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생기는 비극”을 이야기 하려고 했다. 또 잔혹한 장면에 대해선 “이 영화에 그 정도 수위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소신을 밝혔다.

재패니메이션 영화화라는 오랜 꿈 마녀

‘마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 박훈정 감독이 오랫동안 영화화를 꿈 꾼 작품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마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 박훈정 감독이 오랫동안 영화화를 꿈 꾼 작품이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신작 ‘마녀’는 의문의 사고가 일어난 시설에서 홀로 탈출하고 기억을 잃은 소녀 구자윤(김다미)의 이야기이다. 구자윤은 탈출 후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한 초능력소녀다. 의문의 사고를 그린 영화 오프닝 신에 피가 잔뜩 묻어난 죽은 아이의 발이 등장해 시작부터 섬뜩하다.

평소 박훈정 감독이 좋아했다는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를 영화화하고 싶어서 쓴 이야기다. ‘마녀’는 ‘대호’를 만들기 전에 이미 완성했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필모그래피에 처음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지만 박훈정 감독은 “이 이야기에는 소녀, 여성 전사가 어울려서 쓴 것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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