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세 l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넘기지 않았던 페이지를 보고 싶었다”

2018-07-04 00:15 성선해 기자

[맥스무비= 성선해 기자] 민규동 감독의 세계는 영화적 실험과 현실의 재현을 오간다. ‘간신’(2015)이 전자였다면 ‘허스토리’는 후자다. 위안부 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한 관부재판을 담았다. 이들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23차례 일본을 오갔다. 6년간의 법정 공방은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민규동 감독과 만나 반일을 넘어 반전을 말하는 ‘허스토리’에 대해 들었다.

# ‘허스토리’ 출발부터 달라야 했다

'허스토리'는 민규동 감독이 오랫동안 구상한 이야기를 담았다. "혼자 잘 사는 게 미안해서"라는 극 중의 대사는 민규동 감독이 항상 품어왔던 마음을 담긴 문장이기도 하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허스토리'는 민규동 감독이 오랫동안 구상한 이야기를 담았다. "혼자 잘 사는 게 미안해서"라는 극 중의 대사는 민규동 감독이 항상 품어왔던 마음을 담긴 문장이기도 하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구상했습니다. ‘허스토리가 탄생하기 전 3편의 시나리오가 있었어요.

10여년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재작년 김문숙 정신대 문제 대책 부산협의회장을 만나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영화 속 문정숙(김희애)의 실제 모델이죠. 그간 많은 자료를 살펴봤었습니다. 덕분에 관부재판을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두 달 만에 ‘후루룩’ 시나리오를 완성했죠. 목표는 하나였어요. 단순하고 용감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스타일링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려고 노력했어요.

언론시사회 때 또 위안부 이야기야?’라는 반응이 있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주인공이라 (감정적으로) 아주 힘든 이야기니까요. 위안부 문제는 아시아의 홀로코스트입니다. 하지만 70년 넘게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어요. 아주 긴 상흔을 남겼음에도 말이죠. 홀로코스트가 만화, 연극, 드라마, 수필 등 많은 장르를 통해 수없이 예술적 재현이 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피해자들을 향해 ‘입을 다물고 살아라’라고 암묵적으로 몰아넣었으니 말이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그럴수록 저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허스토리'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치열한 법정 드라마다. 또한 인물들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사진 NEW
'허스토리'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치열한 법정 드라마다. 또한 인물들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사진 NEW

관부재판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거둔 거의 유일한 승리입니다. 그럼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법정신이 중요했던 이유입니다. 후반부의 배경이 법정이지만, 사실은 4회차밖에 촬영을 못 했어요. 넉넉한 조건에서 작업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출자로서는 촬영 기간을 하루만 더 늘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게 영화의 운명인가 보다’ 싶었죠. 실수를 만회할 여건이 안 되다 보니 현장의 집중도가 굉장했어요. 스태프와 배우들은 초긴장 상태였죠. 다행히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훌륭해서 빠른 속도로 만들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는 일제 시대에 해당하는 과거 회상신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같은 소재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쉽게 갈 수 있는 공식을 피하고 싶었어요. 신작들은 매일매일 홍수처럼 넘쳐납니다. 유익한 지점이나 새로움이 없으면 공해가 됩니다. 기존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룬 작품들과는 달라야 했어요. 촬영을 시작하기 전 고민이 많았어요. 새로운 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성별과 국적, 세대를 넘나드는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담고 싶었거든요. 또한, 단순한 반일 영화를 넘어 반전 영화로 귀결되고 싶었습니다. 과거를 재현하지 않은 이유도 비슷해요. 신파가 주는 힘은 강력하지만, 강박적인 선동에 머물러서는 안 되니까요.

# 역사가 남긴 상흔, 박물관 유리벽을 넘다

'허스토리'는 그간 미디어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요구한 무결성을 거부한 영화다. 그들 역시 실수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진 NEW
'허스토리'는 그간 미디어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요구한 무결성을 거부한 영화다. 그들 역시 실수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진 NEW

그간 창작물에서 위안부 피해자는 역사적 진실을 말하는 사람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허스토리주인공들은 달라요. 현실을 외면하기도 하고, 거짓말과 욕도 하죠.

동시대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과거의 상처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피해자로서도 흠결이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중요한 건 착취를 당한 이들이 함께 움직였다는 겁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박물관 구석에 전시된 유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유리문을 몇 겹씩 사이에 두고 바라보려 합니다. 거리를 두고 싶어 하니까요. 저는 그 창을 넘어서 이전에는 넘겨보지 않았던 페이지를 보고 싶었어요.

예수정이 연기한 박순녀 역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법정에서 욕설도 하고, 시원하게 내지르기도 하죠. 그간 미디어에서 묘사한 위안부 피해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실존 인물이에요. 김문숙 회장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일본 법정만 들어서면 욕설을 퍼부어서 통역하느라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기골이 정말 장대한 분이었습니다. 예수정 배우가 법정신에서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토해냈어요. 그러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쾌감이 대단하더군요. 저는 평소 욕을 안 하고 살아서 그런지 더욱 시원했어요. 즐거웠습니다.

예수정 선배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박순녀 역이 마음이 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하나코'라는 연극에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예수정 배우는 조소가 아닌, 조각을 통해 박순녀를 완성해나갔습니다. 불필요하거나, 불균질한 요소들을 지워나간 거죠. 감독들은 욕심이 과해서 그러기 쉽지 않아요. 배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에는 주인공들의 처신을 탓하는 택시기사가 등장합니다. 그게 실제로 과거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한 많은 사람의 태도이기도 했고요.

맞아요. 그래서 피해 사례 중 극히 일부만이 증언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이미지를 넣고 싶었어요. 피해자들에게 입을 다물고 살라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요.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탓이죠. 당사자가 용기를 내면 '창피한 줄 알아'라고 손가락질했어요. 택시기사의 말을 통해 그런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많이 변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모순과 부조리는 존재합니다.

# 영화, 시대를 재현하는 기록이 되다

민규동 감독은 '허스토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재현한 기록이 되길 바랐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민규동 감독은 '허스토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재현한 기록이 되길 바랐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콘텐츠는 앞으로도 계속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일이니까요. 접근 방향성에서 본다면 '허스토리'가 일종의 분기점이 될 것 같네요.

재현되지 않는 현실은 현실이 아니라는 말이 있어요. 홀로코스트의 경우 생존자들이 남긴 기록이 많습니다. 하루에 몇 조각의 빵을 먹었는지까지 적어요. 펜과 종이를 식량과 바꿔가면서 말이죠. 그 기록이 구전되면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죠. 반면 위안부 피해자가 남긴 기록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귀향하자마자 터전에서 쫓겨났습니다. 창피한 줄 알라고 손가락질했고요.

그들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해방 뒤 용기를 낸 사람들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허스토리'는 시대를 재현하는 중요한 도전이었어요. 물론 증언은 조작할 수 있고, 흔들리기도 하죠. 옛날이야기라 퇴행과 과장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그럼에도 그들의 목소리와 눈빛, 손짓과 떨림, 에너지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기록입니다. 영화는 그것을 기록하는 뒤늦은 작업이라고 봐요. 세상은 바위가 아니고, 우리도 달걀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허스토리'에서 잘 보였으면 합니다.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인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간신'은 폭군으로 불린 제왕이 주인공이었으나, 그 역시 나약함을 숨기지 못한 인간이었다. 사진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인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간신'은 폭군으로 불린 제왕이 주인공이었으나, 그 역시 나약함을 숨기지 못한 인간이었다. 사진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민규동 감독의 영화에는 사회적 소수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심지어 '간신속 연산군마저 연약하고 애처로운 구석이 있었어요.

한국 사회는 유교적 관습과 정치적으로 꼬일 대로 꼬인 시스템 때문에 제대로 시선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온전히 행복하지 못한 이들도 마찬가지고요.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시선이 가더라고요. 시작부터 소수자 영화를 다뤄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교 시절 약자에 대한 기억이 깊게 각인되어서 그런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들을 표현하는 방식은 권력자와 슈퍼 히어로를 통해서도 가능하니까요. 다양한 도전에 대한 꿈은 늘 있습니다. 저 역시 할리우드 키드이니까요.

완벽주의는 현장에서 민규동 감독을 수식하는 단어들입니다. '허스토리'를 작업하면서 건강이 안 좋아진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하하, 완벽주의라니요. 완벽의 '이응(ㅇ)'에도 다가가지 못했습니다.(웃음) 작품마다 늘 데뷔작이라고 생각하고 임합니다. 사실 '간신'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작업할 때도 쓰러진 적이 있어요. 저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상일 변호사 역의 김준한은 막판 일주일을 남기고 맹장염이 걸렸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붕대를 감고 촬영했습니다. 그럼에도 법정신에서 우렁차게 연기했죠.

현장에서는 색다른 조건이 주는 스트레스와 마주하게 되죠. 집중도도 높아지고요. 영화감독들은 대부분 끝까지 가길 원하고, 그 너머에서 에너지를 찾으려 하죠. 그러다 보니 선을 넘어 육체가 감당하지 못하는 무리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민규동 감독에게 영화가 천직인 이유

연출자란 꿈을 가진 적이 없었던 민규동 감독. 하지만 반복된 우연은 그를 카메라 뒤로 이끌었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연출자란 꿈을 가진 적이 없었던 민규동 감독. 하지만 반복된 우연은 그를 카메라 뒤로 이끌었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대학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민규동 감독의 20대는 어땠나요?

기성 사회에 대한 반발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욕구가 강렬했던 시절이었죠. 제가 88학번이거든요. 전두환 정권이 막 끝나던 시점이었죠.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되고, 분노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길거리로 뛰쳐나가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허스토리'의 시작점이 된)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도 봤었고요. 하지만 당시에는 영화감독이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저 글 쓰는 걸 좋아했었고, 창작을 통해 표현하는 순간을 즐겼죠.

학부 시절에는 경제학도였습니다. 영화가 업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대학시절에는 연극 공연을 주로 했습니다. 당시 영화는 사치스러운 일이었어요. 집에 전화기도 없던 시절이니까요. 카메라를 본다는 것 자체가 럭셔리한 판타지였죠. 주로 노래와 춤이 섞인 뮤지컬을 많이 했었어요. 그걸 배우러 미국에 가고 싶었고요. 졸업 전 부산 시네마테크에서 다양한 영화들을 접했습니다. 장 뤽 고다르의 작품도 그때 봤고요. 킬링 타임용이 아닌, 깊이 있는 예술 매체로서 영화를 만났습니다. 그걸 계기로 단편 영화 만들기에 도전했었어요. 부족함을 깨닫고 공부를 위해 영화 아카데미에 진학을 했고요.

'영화감독으로 살아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은 데뷔 후에 했습니다. 늘 '이번에 만들면 끝이야'라고만 여겼죠. 영화감독이라는 말도 낯간지러워서 단편 영화에 저를 연출자로 표기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굳힌 뒤 영화를 실컷 보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어요. 당시에는 DVD도 없던 세대라 영화를 보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영화감독을 업으로 삼고자 의도를 갖고 설계한 적은 없었습니다.

민규동 감독이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떠나보내는 방법은? 또 다른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민규동 감독이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떠나보내는 방법은? 또 다른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작품을 만들 때 말고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삶의 낙을 느끼시나요?

이야기를 기획하고 구상해요. 그게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는 좌절을 느끼기 전이죠. 꿈을 꾸는 단계입니다. 그런 마약성 도취 속에서 바보 같은 행복감을 느껴요. 물론 현실로 돌아오면 고통과 자책의 연속이죠. 자기 한계와 마주하면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고요.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 폴더를 만들어 냅니다. 마치 아이를 낳는 것과 비슷해요. 한 번 낳고 나면 산후 고통 때문에 '다시는 안 낳을래'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그 고통을 잊고 또 낳게 되는 것처럼요. 판타지 속에서 제 동력을 찾아가는 거죠. 속고 또 속으면서 버텨나가는 삶이랄까요. 하하.

오랫동안 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완성해 관객의 품으로 떠나보냈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평소 제 영화를 돌아보지 않으며 떠나보내는 편입니다.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살아있는 텍스트로 퍼져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저만의 이야기는 아닌 거죠. 다른 이야기를 잉태해야 하는 거고요. 요즘은 다양한 책들을 보고 있어요. SF 서적부터 시작해서 수전 손택의 책까지 말이죠. 최대한 다른 세계로 가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 20대 당시 민규동 감독에게 보내는 한 마디

거칠 것이 없었던 대학시절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 민규동 감독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거칠 것이 없었던 대학시절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 민규동 감독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사진 임영웅(시티카메라)
"사회적 기대에 어긋나는 삶을 살기를 잘했다."
대학시절 강의를 땡땡이친 기억이 많아요. 전공 대신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사고 체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어요. 또한, 그 시절 처음 대중 앞에서 춤을 추고 연극을 했죠. 광대로서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재미를 터득했습니다. 정말 마음껏 놀면서 세상에 대고 고함을 쳤어요. 분명 불효였고, 사회적 기대에 어긋나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제게는 중요한 동력이에요.

※ 감독만세(萬世)는 맥스무비의 감독 전문 인터뷰 코너입니다. 감독의 만 가지 세상, 만 명의 감독을 만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http://news.maxmovie.com/379852

http://news.maxmovie.com/379565

http://news.maxmovie.com/379352

http://news.maxmovie.com/378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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