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나래미디어 유현택 대표, 높은 가격에도 ‘가버나움’ 포기 못한 이유

2019-01-24 19:19 유현지 기자

[맥스무비= 유현지 기자] ‘시스터’(2012)를 시작으로 ‘프란시스 하’(2014) ‘꾸뻬씨의 행복여행’(2014) ‘폭스캐처’(2015) ‘스틸 앨리스’(2015) ‘본 투 비 블루’(2016) ‘패터슨’(2017) ‘원더’(2018)까지. 수입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가 7년 동안 선보인 영화들은 누군가의 인생 영화 목록에 들어가기 충분한 따뜻한 감동이 가득했다. 2018년 그린나래미디어는 눈에 띄는 변화를 맞았다. ‘디트로이트’(2018)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등 강렬한 스릴러 영화를 선보이며 장르의 영역을 넓힌 것. 오로지 마음을 움직였다는 이유로 수입한 ‘가버나움’은 이들의 또 다른 도전이다. ‘가버나움’의 개봉을 맞아 그린나래미디어 유현택 대표를 만났다.

# 새해 첫 영화, 희망을 전하는 가버나움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장소협조 studio_modu)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장소협조 studio_modu)

2019년 그린나래미디어의 첫 번째 영화는 가버나움입니다. 새해 첫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버나움’이 희망을 주는 영화라 생각했어요. 물론 유쾌하고 밝은 영화는 아니죠. 오히려 그 반대지만 그래서 희망이 생기고 힘이 나는 영화라고들 하시더라고요. 제게도 그랬듯이 ‘가버나움’이 관객에게 희망을 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가버나움71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린나래미디어는 수상 전에 구매를 결정했죠. 어떤 이유였는지 궁금합니다.

‘가버나움’은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온 영화였습니다. 칸영화제 당시에 개인적으로 의욕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영화 시장이 침체되기도 했고, 뭘 해도 안 됐으니까요.(웃음) 그런데 ‘가버나움’을 보는 순간, 심장이 다시 두근두근 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로 얼마의 돈을 벌고 몇 명의 관객을 모을지 생각하기도 전에 ‘이 영화를 사고 싶다’라는 동기부여를 받았죠. 제게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소중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가버나움은 비전문 배우가 출연하는 레바논 영화입니다. 낯선 인상에도 관객들이 공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가버나움’은 보기 전에는 관심도가 낮을 수 있겠지만, 보고 나면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회가 배경이 된다 해도 충분히 가능하니까요. 많은 분이 ‘가버나움’을 보고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배경도 다르고 색감도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또 ‘가버나움’이 칸영화제에 출품되기 전에 미국에서는 소니 클래식이, 프랑스에서는 고몽이라는 미디어 대기업이 판권을 구입했어요. 그래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대중성을 짐작할 수 있는 반증이기도 하니까요. 낯선 나라의 낯선 배우들이 낯선 언어로 연기하는 영화지만 대중적인 지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칸에서도 상영 후에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많은 수입사가 관심을 보였다죠?

사실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구매했어요. ‘가버나움’을 원하는 수입사가 있어서, 가격이 많이 올라갔죠. ‘난 이 돈을 주고라도 이 영화를 사고야 말겠어’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진짜 그 가격에 사게 됐습니다.(웃음)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오랜만에 수입 과정 자체가 즐거운 영화였어요.

# 시나리오만 보고 수입한 패터슨대표작으로 우뚝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최근 시나리오 단계에서 수입하는 작품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구매한 작품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 있다면요?

대표적으로 ‘패터슨’을 꼽을 수 있겠죠. 제가 좋아하는 영화기도 하고요.(웃음) 보통은 메일로 시나리오를 받아서 팀원들과 함께 읽고 수입을 결정하는데, 가끔 파일로 공유하지 않고 세일즈 회사에 출력물로 비치하는 경우가 있어요. ‘패터슨’이 그랬죠. 베를린 영화제 기간에 세일즈 회사 부스에서 ‘패터슨’ 시나리오를 읽고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패터슨하면 반복적인 일상이나 아름다운 색감이 먼저 떠올라요. 시나리오만 보고 어떤 매력을 발견했는지 궁금합니다.

‘패터슨’은 굉장히 시적인 영화예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잖아요. 역시나 읽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아무 내용이 없으니까요.(웃음) ‘아까 봤던 내용 같은데’ 생각하고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읽었어요. 그렇게 집중을 못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시나리오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반복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집중하게 되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나리오 부스에서 펑펑 울었어요. 저도 예상을 못 한 일이었죠. 원래 눈물도 없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큰 위안을 받았고 ‘이 영화가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어요.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관객들도 패터슨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어요. 뿌듯한 마음이 컸을 것 같습니다.

결과가 좋아서 깜짝 놀랐죠.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굉장히 잘 된 케이스잖아요. ‘패터슨’을 여덟 번 봤다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관객들 마음은 정말 잘 모르습니다.(웃음) 수입을 결정할 때 대해 팀원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 시나리오에 특별한 내용도 없었고, 제가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저를 믿고 지지해준 팀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 관객의 변화, 그린나래미디어도 변화 중

관객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어요. 한 영화에 열성적으로 반응하는 덕후나 팬 문화가 생겨났죠. 예술 영화의 경우, 더욱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예술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천만 관객이 드는 상업 영화나 마블 영화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영화뿐 아니라 문화산업 전반에서 팬덤을 겨냥하지 않은 마케팅이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관객 수 자체가 적은 예술·다양성 영화의 입장에서는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합니다. 관객의 취향을 빠르게 파악해야하는데, 생각보다 더 빨리 변화해서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정도죠.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소비자의 의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달라지면서 그린나래미디어도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방법이 다양해졌으니까요.

관객들이 그린나래미디어에 ‘굿즈나래’라는 애칭을 붙여주셨어요.(웃음) ‘프란시스 하’가 개봉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굿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한적인 홍보 방식 사이에서 영화를 알리기 위한 방법이었죠. 지금은 대부분의 영화가 굿즈를 만들기 때문에, 변별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지금은 한 가지를 만들어도 영화를 제대로 전달하는 굿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페이스북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페이스북

상영 시스템도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한 영화가 3~4주 정도 상영됐다면 지금은 짧게는 2~3주, 더 짧게는 1주일 만에 내려가는 영화가 많아졌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다 보니 마케팅으로 반응을 끌어내려고 하죠. SNS 시대잖아요. 튀지 않으면 묻혀 버리거든요.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영화 산업의 변화가 수입 작품을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관객 쏠림 현상이 심화되다 보니 수입사 입장에서는 생존이 가장 큰 미션이 되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 부분에 대한 그린나래미디어의 가장 큰 변화를 예로 들자면 ‘부탁 하나만 들어줘’가 될 수 있겠네요. 개봉작 중 가장 비용도 많이 들기도 했고, 상업적으로 기대가 있었어요. 미국에서는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으니까요. 저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고요. 그린나래미디어에게는 새로운 돌파구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규모뿐 아니라 장르 면에서도 새로운 선택이었어요. 앞으로 그린나래미디어에서 장르 영화를 많이 볼 수 있게 될 것 같은데요.

맞아요. 사실 예전에는 공포나 스릴러 같은 장르 영화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 관객들이 정말 좋아하시는 장르가 됐잖아요. ‘가버나움’처럼 마음을 울리는 영화도 계속하겠지만, ‘맨 인 더 다크’(2016)나 ‘겟 아웃’(2017)처럼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가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그린나래미디어만의 선택 기준이 있다면요?

감독에 대한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보통 대본 단계에서 구매하다 보니 어떤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가 영화를 만드는지를 검토해요. ‘부탁 하나만 들어줘’도 그렇고요. 폴 페이그 감독의 전작 ‘스파이’(2015)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이 감독이 이 시나리오로 블레이크 라이블리, 안나 켄드릭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죠. 제작비는 부수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감독과 시나리오의 시너지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선택합니다. 신인 감독이라면 프로듀서나 스태프를 보게 되겠죠.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장소협조 studio_modu)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장소협조 studio_modu)

2019년이 그린나래미디어와 유현택 대표에게 어떤 해가 되길 바라나요?

올해는 활기찬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양성 영화 시장이 한동안 침체되어 있었어요. 어떤 회사든 대박을 터트리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가버나움’도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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