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감독 “아이들의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다”

2019-01-29 16:17 유현지 기자

[맥스무비= 유현지 기자] ‘가버나움’의 주인공은 레바논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이다. 자인은 소란스러운 거리의 한 가운데서 마약 주스를 팔며 밥벌이에 나서고, 덩치 큰 어른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영특한 소년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한 경위를 쫓아간다. 출생신고 기록도 없이 태어나고 방치된 아이들의 현실이 낭만적일리 없다. 이 불편한 현실을 직면하고 영화로 옮긴 나딘 라바키 감독은 ‘가버나움’을 통해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 혼돈의 도시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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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은 방치된 아이들의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급합니다.

‘가버나움’은 제가 본 익숙한 풍경에서 시작됐어요. 레바논 거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요. 어느 새부터인가 거리의 아이들은 도시의 일부분이 됐고, 계속 늘어나고 있었어요. 일순간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하지 않고, 그저 차를 타고 지나쳐버리잖아요. 이 아이들을 지속적인 위험에 방치하는 게 진짜 범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들의 생각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버나움’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제목을 가버나움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 가버나움은 성경에 등장하는 저주받은 마을의 이름이에요. 그런데 최근 프랑스 문학에서는 혼돈과 기적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모든 모험이 ‘가버나움’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혼돈의 안갯속에서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잖아요.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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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심사위원상까지 수상했습니다. 세상에 알리고 싶던 이야기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정말 기쁜 승리였죠. 4년 동안 함께해준 모든 스태프와 모든 배우들이 일궈낸 커다란 성과입니다. 사실 칸영화제에 참석하기 일주일 전까지 배우들은 법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아무도 신분증이 없었거든요. 이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투쟁을 담은 영화로 영웅이 됐어요.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되었고요.

# 사실적으로 담아낸 처절한 현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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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주인공 자인(자인 알 라피아)이 부모를 고소하면서 시작됩니다. 자신을 태어나게 했다는 것이 이유죠. 충격적인 설정은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요?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생각하게 됐어요. 거리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마지막으로 ‘넌 사는 게 행복하니?’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는 여기에 있는 게 행복하지 않아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고, 죽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말도 못 듣고 배고픈데 먹지도 못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들의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세상 앞에 서서 ‘당신들은 내게 이렇게 행동할 권리가 없어! 이제 그만해!’라고 외치는 이야기를요.

아이들이 처한 처절한 현실이 영화 속에 사실적으로 그려졌어요. 실제로 보고 느낀 레바논의 상황을 반영한 거겠죠?

맞아요. 아니, 실제로는 훨씬 더 심각하니까 영화 속 풍경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죠. 4년 넘게 영화를 준비하면서 제가 본 것들, 이 세계를 겪은 사람들과 만나며 느낀 것들을 현실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도 모두 비전문 배우고요. 실제 삶에서 거의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영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셈이죠.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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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도 비전문 배우에요. 연기 경력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자인에게도 영화와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자인은 레바논에서 8년을 산 시리아 난민이에요. 영화에서처럼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왔죠. 학교에도 다닌 적이 없어서 12살인데도 자기의 이름을 쓰지 못했어요.

연기 경력이 없는 소년에게 주연을 맡기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4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니까요.

엄청난 도박이었죠.(웃음) 자인과 함께하는 것이 힘든 도전이 될 것을 알았지만 자인을 만나자마자 느낌을 받았어요. 날 것과 총명함을 동시에 갖춘 소년이라는 것을 눈빛에서 알 수 있었어요. 또 영화 속에서 보여줄 아픈 현실을 실제로 겪었기 때문에 연기하거나 흉내 낼 필요도 없었죠. 자인의 모든 것이 영화 속에 담겼어요.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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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비전문 배우로 이뤄졌습니다. 전문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요?

영화와 비슷한 경험을 겪어보지 못한 인물을 캐스팅했다면, 이 정도의 충격을 안기지 못했을 거예요. 영화의 모든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역을 맡았죠. 판사 역의 배우는 실제로도 판사고, 자인의 엄마는 그 지역에 사는 여성이었어요. 모두 영화에서 다루는 현실과 비슷한 상황에서 살고 있었죠.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큰 성장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지혜와 유연함, 다양한 경험에서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배웠습니다.

#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꾼 가버나움 프로젝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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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도전이었을 것 같습니다. 힘든 점도 많았을 거고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게 가장 힘들었죠. 실제 장소에서 촬영을 하면 제 현실이 뒤섞이는 기분이었어요. 의자에 앉아 아이들이 우는소리를 들으면서 그 전쟁 같은 삶을 바라보다가, 밤이 되면 제 삶으로 돌아오죠. 집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침대에 누우면 그 사람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왔다는 걸 깨닫곤 했어요. 아주 많이 힘들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도 삽입되었듯이 촬영을 마친 후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한 아이들과 가족들을 보살피는 재단이죠.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인은 가족들과 함께 노르웨이에 정착했어요. 처음으로 학교에도 가게 됐고요.(웃음)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집에서 침대를 갖게 됐고, 공원에서 놀 수 있게 됐어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거죠. 자인 외에도 출연자 모두를 돕고 있고 계속 노력하는 중입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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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으로 아이들의 인생도 바뀌었지만 나딘 라바키 감독 본인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변화를 겪었어요. 죄의식이 떠나지 않았고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죠. 관객들도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살 자격이 없다거나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이 변화를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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