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경찰’ 이정범 감독 “꿈에서 뺨을 맞을 정도로 두려웠다”

2019-03-26 16:24 유현지 기자

[맥스무비= 유현지 기자] 이정범 감독의 대표작은 단연 ‘아저씨’(2010)다. 강렬한 액션이 돋보인 흥행작이었기에 감독의 차기작 ‘악질경찰’에도 사실적인 액션과 범죄 영화의 서사를 기대하는 관객이 많았다. 뚜껑을 열어본 ‘악질경찰’에는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아닌 한 남자의 사죄가 담겼다. 기대와 다른 차기작, 세월호를 소재로 한 첫 번째 상업 영화를 내놓은 감독의 속내를 들었다.

# 악질적인 경찰과 세월호가 만나게 된 과정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악질 경찰은 준비부터 개봉까지 5년이 걸린 영화입니다. 관객에게 선보이게 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감개무량합니다. 매일 기도의 연속이었거든요. 시나리오를 쓸 때는 영화를 만들게 해달라고, 프로덕션을 시작할 때는 영화를 끝맺을 수 있도록, 촬영 끝난 후에는 완성본이 가위질 당하지 않도록 기도했어요. 개봉하니까 욕을 안 먹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어요. 솔직히 개봉만 해도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표의 반은 이룬 것 같습니다.

영화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아픔을 갖게 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단원고 교실에 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실의 아이들이 전부 사라지고 없고, 다른 반도 마찬가지였어요. 갑자기 어떤 분들이 들어오셔서 책상을 닦으시는데, 가시면서 ‘또 올게~’라고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 슬픔을 참고 살아가시는 거잖아요. 그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범죄 영화와 세월호, 쉽게 그려지지 않는 조합입니다. 당시의 충격에서 악질경찰을 떠올리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세월호 소재의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액션 영화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안산에 있는 형사가 중국 형사랑 콤비 플레이를 펼치는 내용이었어요. 그 드라마에는 아무 관심이 안 갔고 안산의 형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세월호 얘기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쓰신 책을 보고 형사님들을 취재하면서 영화의 윤곽을 그렸어요.

# 세월호 다룬 상업 영화, 쉽지 않은 균형 잡기

상업 영화 중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것은 악질경찰이 처음입니다. 기획 자체로도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요.

두려웠죠. 욕먹을 것도 알았고요. 근데 저는 ‘이제 세월호 좀 그만해’ ‘시기상조 아니야?’라는 말을 이해 못 하겠어요. 세월호는 현재 진행 중이잖아요. 아직 해결된 게 없는데 그만하라고 하거나 정치 프레임을 씌우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누군가는 자식을 잃었는데 아무도 사과를 안 하고 있으니까 울분이 생긴 거예요. 제가 가수나 소설가가 아니라 상업 영화감독이라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다가 ‘악질경찰’이 나오게 됐습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범죄 장르의 상업 영화다 보니 대중성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소재를 다루는 장르 영화로서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상업 영화와 세월호 소재 사이의 균형에 민감했어요. 장르적인 쾌감이나 영화적 재미 때문에 소재의 진정성을 훼손시킬까 걱정됐고, 반대로 거의 100억이 들어가는 영화인데 상업적인 부분은 무시해도 될지 고민이 컸습니다. 웬만한 영화 두 편을 찍는 것처럼 힘들었어요. 장르 영화라면 저도 편하게 찍을 수 있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관객 반응에 대한 고민도 안 할 수 없었을 텐데요, 작업 과정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 기자와 관객은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진짜 두려웠던 건 유가족 분들이었죠. 너무 두려워서 꿈에서까지 뺨을 맞기도 했습니다. 시사 후에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유가족분들이 고맙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두려움 때문에 이런저런 수정을 했다면 지금의 ‘악질경찰’은 안 나왔을 것 같아요. 이게 맞다고 봤고 그 모습에 대해 (유가족들이) 힘내라고 말씀해주셔서 버팀목이 됐습니다.

# 5년이나 걸렸지만 후회 없는 여정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촬영 전에도 투자, 캐스팅이 어려웠고 촬영 후 개봉까지도 2년이 걸렸습니다. 힘들었던 과정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가족 분들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한테서 세월호가 잊히는 게 가장 두렵다.’ 본인들은 매일이 지옥이고 살아 있는 내내 싸워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그만하라고, 피곤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가장 두렵다고 하셨어요. ‘악질경찰’ 스태프와 배우를 합치면 465명인데, 적어도 465명의 사람들만은 안 잊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을 지나 악질경찰이 결국 관객들을 만났네요.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하는 작업이었는데, 완성본을 통해 원하는 바를 100% 펼쳤다고 할 수 있을까요?

네. 사실 배급사분들이 저를 많이 괴롭혔어요.(웃음) 1년 내내 저를 설득하고 편집 가지고 싸움을 했죠. 그런데 제가 이겼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유가족 분들께는 부끄럽지 않아요. 또 한편으로는 배급사분들에게 감사해요. 저에게 져주시고 저를 용인해주셔서요.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정범 감독에게 악질경찰은 분명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한 마디로 말씀해주신다면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어요. 아무도 사죄하지 않으니까, 사죄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공신력 있는 감독이 100억에 가까운 돈을 들여서 찍는 영화인데 고작 미안하다는 한 마디 하려고 찍었냐’고 물으신다면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할 거예요. 그리고 ‘대신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를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릴 겁니다. 앞으로 세월호를 다룬 영화가 더 많이 나와서 유가족분들이 더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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