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 일상의 존귀함이란 별을 향하여

2019-10-05 22:13 성선해 기자

[맥스무비= 성선해 기자] ※ '애드 아스트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 후 읽기를 권합니다. ※

때로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해왕성까지 가서 깨달은 남자의 이야기, '애드 아스트라'다. 아버지를 찾아 우주로 향한 그의 여정이 특별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순간이다.

사진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사진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주인공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미 육군 소령으로, 베테랑 우주 비행사다. 우주 안테나를 점검 중이던 그는 전류 급증 현상인 '써지'로 인해 지구로 추락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의 근원은 그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토미 리 존스)다. 인간의 행동반경을 태양계 끝까지 넓힌 영웅이다.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찾기 위한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 중 실종됐다. '써지'로 인해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이는 해왕성을 향해 떠난다. 클리포드가 마지막으로 흔적을 남긴 행성이다.

'애드 아스트라'는 여러모로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영화다. 인류 구원이란 임무를 짊어진 영웅의 서사는 익숙하지만 달콤하다. 누가 적인지 피아식별만 확실하면 된다. 우리의 주인공은 온몸을 바쳐 지구에 가해진 위협에 맞설 것이다. 그것은 곧 주인공에게 이입한 관객의 쾌감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주연이 브래드 피트라니. 인류의 대재난에 맞설 최후의 적임자로 이만큼 믿음직한 얼굴이 있을까.

그런데 '애드 아스트라'에는 명확한 좌표가 없다. 우주 끝에 은신한 미지의 적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시작하지 않는다. 브래드 피트는 멋들어진 액션이 아닌, 공허한 얼굴을 보여준다. 이것은 로이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연출자가 고뇌하는 개인을 다뤄왔던 제임스 그레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장르적 재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사진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사진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그렇다면 '애드 아스트라'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던 인간이 겪는 내면의 성장이다. 이 모든 건 로이를 통해 드러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인물 드라마라는 점에서 '퍼스트맨'(2018) '그래비티'(2013)와 닮았다고 볼 수 있지만, 로이의 여정에 서스펜스를 부여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 영화가 SF 스릴러로 분류되는 이유다.

지구와의 의도적인 거리두기는 SF 영화의 클리셰다. 가까운 미래라는 배경에는 외계에서 온 낯선 생명체, 국적 불명의 스판덱스 소재 의상, 무채색의 첨단 도시 등의 설정이 따라온다. '애드 아스트라'가 우주를 대하는 방식은 이들과 정반대다. 인간은 달과 화성을 넘어 해왕성까지 넘볼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지구를 갈망한다. 햇빛과 나무, 흙의 흔적은 로이가 잠시 머문 화성 기지에도 남아있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결정체인 우주선에 탑승한 조종사들은 임무를 수행을 앞두고 신에게 경건한 기도를 올린다.

반면 로이는 지구와 적정거리를 유지한다. 허공에 떠있을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우주 비행사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로이의 심박수는 80을 넘긴 적이 없다. 인생이 공허하기에 두려움도 느끼지 못한다. 로이의 삶은 우주복을 입고 있을 때만 유의미하다. 그의 현실은 지구가 아닌 우주에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기 위해 태양계 끝을 향해 떠난다. 주어진 일상에 대한 순응을 "게으름"이라 칭한 클리포드의 유전자는 로이에게도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이는 아버지와 다른 선택을 한다. 홀로 해왕성 탐사 우주선에 탑승한 로이는 79일간의 고립을 겪는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져가는 공간에서 점점 미쳐간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모습을 만난다.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다. 20여 년 만에 마주한 클리포드는 그가 알던 인류의 영웅이 아니다.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를 찾겠다는 욕망은 클리포드를 집착에 잠식당한 광인으로 전락시켰다. 아버지의 처참한 실상을 본 로이는 그제서야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마음의 상처를 떠나보낸다.

사진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사진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지구에서 해왕성까지, 외로웠던 항해는 로이의 변화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자발적 고립을 택했던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와 공존의 가치, 커피 한 잔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체감한다. 광활하고 적막한 우주는 현실을 마주보기 두려워하던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로이가 탑승한 우주선이 푸른 바다와 녹음이 우거진 숲이 보이는 대기권에 진입한 순간, 인생의 2막이 시작된다. 직면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다. 그럼에도 지구에 두 발을 딛고 선 것만으로도 그의 삶은 바뀔 것이다. 태양계의 끝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일상의 존귀함이 바로 이 영화가 쫓던 별의 실체이다. 낯설게 바라봐야 보이는 평범함의 진가, 그것이 '애드 아스트라'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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