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무비= 정찬혁 기자] 올 여름 ‘엑시트’가 기존 재난 영화 틀을 벗어난 새로운 전개와 재미로 극장가를 사로잡았다. 이미 ‘엑시트’로 흥행 맛을 본 CJ엔터테인먼트에서 연말을 장식하기 위한 승부수로 또 하나의 재난 영화를 공개했다.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 김병서)은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인 백두산 마지막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신과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덱스터스튜디오 신작으로 순제작비 260억 원이라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 압도적인 스케일을 예상케 했다. 여기에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등 흥행력을 보증 받은 배우들이 한 작품에 모여 관객 기대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재난영화 특성상 결말은 정해져 있다. 재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공멸하는 작품은 극소수다. 특히 한국형 재난 영화는 대부분 재난을 극복하거나 절망 속에서 일말의 희망을 제시하며 끝을 맺는다. 좁은 선택지 안에서 결정되는 재난영화의 성패는 관객을 얼마나 실감나게 재난의 현장 속으로 이끄느냐에 달렸다.
‘신과함께’ 시리즈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덱스터스튜디오가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협업을 통해 CG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화려한 볼거리는 예고됐다. 마침내 공개된 ‘백두산’은 시작부터 강남역 일대 건물이 붕괴되고 지반이 침하되는 등 관객을 재난 한복판에 내던진다. 백두산 폭발로 한반도가 초토화된 후 대한민국 정부는 남은 세 차례 폭발을 막기 위해 백두산 폭발을 연구해온 강봉래 교수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어 특전사 EOD 대위 조인창이 이끄는 부대가 북한으로 잠입하고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과 접선해 비밀작전을 수행한다.
시작부터 백두산을 폭발시키며 거침없이 전개되는 영화는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되는 초·중반부까지 실감나는 그래픽, 박진감 넘치는 전개, 배우들의 호연으로 역대급 재난 영화의 탄생을 기대케 한다. 그러나 여러 이야기 줄기가 하나로 모인 중반부 이후부터는 느슨하게 풀어지며 기존 영화를 답습하는 안전한 전개를 택해 아쉬움을 남긴다.
국내 재난 영화가 흔히 쓰는 구도는 무능한 정부와 평범한 영웅이다. 영화는 한반도를 초토화시킨 초유의 재난을 그렸기에 주변 국가 개입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에 무엇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는 그 동안 숱하게 봐온 구도다. 정부를 대신해 개인이 나서는 전개 역시 마찬가지다. 반복된 지진으로 건물과 도로가 모두 파괴됐음에도 차량으로 무리 없이 모든 장소를 이동하는 주인공도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영웅 서사를 위한 선택이지만 좀 더 과감한 관계 설정이나 클리셰를 뒤튼 전개가 필요했다.
영화는 긴 러닝타임을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피로도를 환기 시키기 위해 유머 코드를 녹였다. 올해 흥행한 다수 한국 영화들이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반복되는 긴박한 재난 속에서 리준평, 조인창은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을 연출한다. 하지만 폭발까지 몇 시간 남지 않은 긴급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웃음 코드는 오히려 피로도를 더한다. 언론시사회에서 이해준 감독은 이 같은 연출에 대해 “관객이 리듬감 있게 볼 거라는 판단에 그렇게 연출했다. 재난이라고 해서 모두가 24시간 심각하게 있을 수 없다. 용변도 보고 웃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눈물샘을 자아내는 후반부 장면도 재난 영화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의 여정에서 우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강조하기 위해 삽입된 장면은 사족처럼 보인다.
‘엑시트’ 제작비는 130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은 약 350만 명이었다. ‘백두산’의 경우 260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은 700만 명 이상이다. 올해 개봉한 국내 영화 중 관객수 700만 명을 넘긴 작품은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 3편이다. 2018년 개봉작 중 700만 명을 넘긴 국내 영화는 ‘신과함께-인과 연’이 유일하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고 손익분기점이 올라갈수록 과감한 선택보다는 안전한 선택, 상업코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