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우의 배우만발 | 마동석의 각성

2019-12-23 17:35 정시우 기자

[맥스무비= 정시우 기자] 태초에 ‘미키 성식’이 있었다. 마동석이라는 이름이 대중에 낯설었던 2007년. TV 드라마 <히트>에서 남성식 형사를 연기한 그는 야성적인 외양에 어울리지 않게 몸에 딱 달라붙는 귀여운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즐겨 입으며 ‘미키 성식’이란 별명을 얻었다. ‘미키 성식’을 시작으로 마동석은 큰 덩치와 험상궂은 이목구비가 주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방법으로 대중의 뒤통수를 쳤다. <베테랑>은 그의 그러한 면모가 춤을 춘 영화로, 형사와 재벌 2세의 싸움을 구경하는 군중들 틈으로 심각하게 걸어 나온 마동석은 “나, 여기 아트 박스 사장인데”라는 외침으로 1000만 관객의 허를 제대로 찔렀다.

영화 '굿바이 싱글' 스틸. 사진 쇼박스
영화 '굿바이 싱글' 스틸. 사진 쇼박스

이후 ‘마요미’ ‘마블리’ 등으로 스윗함에 맹위를 떨치던 마동석은 <굿바이 싱글>에서 ‘마쁜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니, 이는 김혜수가 ‘마동석+이쁘니’를 조합해 하사한 네이밍이었다. 여세를 몰아 마동석은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한 화장품 광고도 찍었다. 광고에서 마동석은 핑크색 도트 앞치마를 두르고 등장, 그 유명한 <베테랑> 대사를 패러디했다. “나, 여기 OOO 사장인데.” 광고는 아무나 찍나. 대중의 반응을 가장 예민하고 냉정하게 살피는 게 CF 시장이다. 근육질 안에 숨은 마동석의 섬세한 이미지가 상업적으로 파급력이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이 시기, 마동석의 주가와 인기는 좀비 영화 <부산행>을 타고 다시 한번 도약했다. 아내 앞에서 쩔쩔매던 상화(마동석)가 우람한 팔뚝으로 좀비를 위협하는 모습을 본 관객들은 <부산행>을 이렇게 불렀다. ‘마동석이 좀비 때려잡는 영화’라고. 1년 후 등장한 <범죄도시>는 마동석에게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날 것 같은 히어로 이미지를 입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맨주먹 하나로 범죄자들을 요리하는 모습이란. 빛이 강할 때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범죄도시>의 반전 흥행 이후, 그럴싸한 서사보다는 적을 ‘독고다이’로 섬멸하는 마동석 주먹에서 오는 쾌감을 노린 영화들이 우후 죽순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마동석의 자기 ‘캐릭터 복제’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남자가 절체절명의 순간 ‘각성’해서 적을 박살 내는 흐름이 <원더풀 고스트> <성난 황소>로 이어지며 ‘마동석 이미지 소모론’에 힘을 싣기도 했다.

영화 '범죄도시' 스틸. 사진 메가박스
영화 '범죄도시' 스틸. 사진 메가박스

최근 개봉한 <시동>은 한동안 식상하다 평가받던 마동석 표 캐릭터의 새로운 변주가 있는 작품이다. 잠자고 있던 마동석의 ‘마블리’스러운 매력이 오랜만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2014년 연재된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시동>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장풍반점의 정체불명 주방장 ‘거석이 형’. 우람한 체구와 살벌한 표정의 마동석은 익숙하다. 그런데 분홍 티셔츠에 물방울무늬 수면 바지를 입고 걸그룹 트와이스의 댄스곡 ‘낙낙’(Knock knock) 안무를 따라 하는 마동석은 봐도 봐도 새롭다. 화룡점정은 유머 감각 가득한 단발머리. 이 분야 최고봉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 표 단발머리와 견줄만한 단발머리다. 웹툰 독자들의 탄탄한 지지를 받았던 거석이형 캐릭터는 스크린에서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사랑스러움과 만나 그 매력이 보강-증축된 케이스다. 다만 이 영화의 재미는 마동석이 ‘각성’하는 순간, 그러니까 주먹을 드는 순간 급격하게 식어버리는 면이 있다. 캐릭터 비틀기만큼이나 그에게 필요한 건 캐릭터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고민임을 알려주는 힌트이기도 하다.

영화 '시동' 스틸. 사진 NEW
영화 '시동' 스틸. 사진 NEW

<시동>보다 하루 늦게 개봉한 <백두산>은 마동석이 단 한 차례도 근육의 힘을 쓰지 않는 드문 영화다. 영화에서 그는 백두산 폭발을 3년 전에 예견했던 미국 국적의 강봉래 교수를 맡아, 주먹 대신 머리를 쓴다. 사실 재난을 예측해 위험을 경고하는 과학자 캐릭터는 재난 영화에서 전형적으로 쓰이는 일종의 클리셰다. 무색무취일 확률이 높다. <백두산> 제작진 입장에서는 그래서 더 마동석이 필요했을까.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캐스팅은 성공적이다. 마동석이 지니고 있는 기존 이미지에 힘입어 전형적인 캐릭터가 그나마 덜 식상해 보이니 말이다. <백두산>에서도 마동석의 ‘각성’은 등장한다. 한반도의 위기에 관심 없다며 발뺌하던 미국인 강봉래의 ‘각성’은 한반도 위기 상황에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제공한다. 이쯤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동석이란 남자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각성’은 배우 본인뿐 아니라, 제작진들이 저글링 하고 싶어 하는 각색 포인트임을. 2020년에도 마동석의 걸음은 빠를 예정이다. 그 중엔 마블 코믹스의 <이터널스>도 있다. 이 영화는 마동석이란 배우의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까. 그는 영화 안에서 또 어떻게 각성할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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