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천문: 하늘에 묻는다’ 한석규 눈에 비친 인간 세종

2019-12-24 13:50 박재은 기자

[맥스무비= 박재은 기자]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꿈을 펼쳐나간다는 것은 이상과도 같은 일이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는 이상을 현실로 이뤄낸 세종과 장영실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두 인물은 하늘을 수 놓은 별처럼 찬란한 조선을 만들어냈지만 눈시울이 시큰거릴 정도로 깊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두 인물에게 보여지는 인간적 면모를 통해 관객은 사람 사이 신뢰와 우정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배우 한석규는 ‘천문’에서 세종 역을 맡았다. 세종은 장영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어진 임금이었다. 그는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몸 사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조선의 안위를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냉철한 인물이기도 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출연한 배우 한석규.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출연한 배우 한석규.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한석규는 세종 역에 임하기 앞서 인간 세종이 놓인 상황을 연구하는 자세를 가졌다. 세종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사이 셋 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조선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왕이지만 어쩌면 왕좌에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역사적 배경에서 세종의 모친 원경왕후는 왕자의 난을 도와 태종을 왕 자리에 앉히는 것에 일조했지만 권력을 잡은 태종은 민씨 집안 남성들을 경계해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태종과 원경왕후는 철천지원수로 돌아서게 된다. 한석규는 세종이 이뤄낸 업적보다 인간 세종이 겪었을 상처와 아픔에 집중했다. 혼란한 나라와 부모 사이 갈등을 목격하며 자랐을 그의 인생에 초점을 맞췄다.

“세종은 선한 사람이었을 거다. 아니, 선해지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을 거다. 생각지도 못했던 왕 자리에 앉게 됐고 자신에게 휘몰아쳤을 일들이 내면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세종이 어진 임금이 된 배경엔 유년시절 받은 상처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절대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지’ 하는 끊임없는 검열이 세종을 어진 임금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해석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세종이 왕으로서 품었던 너그러운 마음은 관노출신 장영실이 가진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장영실을 뛰어난 과학자로 성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이들의 아름다운 동료애를 엿볼 수 있다. 한석규는 신분이라는 편견을 허물고 세종과 장영실이 나눴던 애틋한 우정에 대해 자신의 오랜 벗 최민식을 떠올렸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최민식이라 답한다. 최민식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배우다. 어떤 생각을 말해도 ‘나도!’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이다. 세종과 장영실도 아마 이런 모습일거라 생각했다.”

이어 그는 세종이 왕에 자리에 앉았을 때 떠올렸을 마음가짐에 본인이 연기자가 됐을 당시 포부를 겹쳐 생각해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연기 경력 33년, 이제는 거장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한석규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해석해내는 방식에서도 관록이 묻어나는 연기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캐릭터에 끊임없이 몰두하고 그 인생에 침투하려 노력한다던 그는 오랜 시간 품어왔던 연기에 대한 고뇌를 털어놨다.

“배우는 결국 내가 아닌 타인을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아야 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연기를 잘 한다는 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어떠한 답을 듣고 싶어서 묻는 것은 아니지만, 연기를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고뇌한다. 나에게 연기란 죽어야 끝나는 공부다.”

이어 한석규는 배우를 함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어머니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내로라하는 배우인 그도 대학을 갓 졸업한 후 방황했던 시기가 있었음을 털어놨다. 단지 예술을 하고 싶었던 20대 한석규에게 큰 위로이자 버팀목이 됐던 건 그의 어머니였다.

“대학 졸업하고 방황을 겪었다. 속상한 마음에 맨날 집을 나가 남산에 올라서 시간을 죽였다. 어머니도 내심 속이 상했을 텐데 한 번도 뭐라 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는 최민식과 함께 했던 대학 졸업공연을 통해 나의 첫 연기를 봤다. ‘내 눈에는 너희들이 곧 잘해 보였어. 너네 밥은 먹고 살겠다’고 했다. 어머니 말처럼 정말 밥은 먹고 산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출연한 배우 한석규.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출연한 배우 한석규.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한석규는 그 동안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영감을 준 고마운 인연들을 생각했다. 세종과 장영실을 좋은 벗이라 표현했던 것처럼 그의 연기 인생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좋은 방향으로 끌어준 인연들을 떠올렸다. 사색에 잠겼던 그는 다시금 세종과 장영실 사이 끈끈한 관계성에 대해 입을 열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세종과 장영실, 두 사람은 왜 그때 만나게 됐을까라고 계속해서 떠올리게 됐다. 곧이어 왜 하필 그때 세종의 안여가 부서졌을까 생각했다.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종은 가슴 한편에 자신이 아끼던 장영실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둘의 만남을 운명이라 표현하고 싶다.”

박재은 기자 / jeunny@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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