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웅의 특별한 리뷰 | <백두산> 폭발로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2019-12-27 10:48 허남웅 기자

[맥스무비= 허남웅 기자] (*영화의 결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예술 매체는 당대를 반영한다. 더 정확히는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는 창작자의 태도를 연출에 담는다. 백두산 폭발을 배경으로 하는 <백두산>은 아비규환의 한반도 위기 상황을 남측의 특전사 EOD 대위 조인창(하정우)과 북측의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이병헌)이 의기투합하여 극복하는 결말로 남북 화합의 시대정신을 녹여낸다. 아니, 녹여낸 듯 착시하게 한다.

실은 대한민국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백두산 폭발이 야기하는 재앙의 이미지를 현란하게 구현해 최대한 많은 관객, 즉 천만 영화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용암이 터지고, 그 여파가 남한에도 미쳐 강남의 고층빌딩이 거목 고꾸라지듯 바닥으로 쓰러지고, 팔당댐이 무너져 한강에 해일이 덮치는 등 상영 시간 내내 거대한 볼거리(?)로 관객의 시각을 마비시킨다.

영화 '백두산'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이미지는 불편한 진실을 숨긴다. 블록버스터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되는 까닭에 대개 박스오피스 1위의 검증된 흥행 요소를 복제하고 변주하고 답습하는 경우가 잦다. 그럴 때 영화는 보수적이 된다. 단순히 관객이 좋아할 만한 장면을 따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반영된 기득권의 가치마저 반복해 전파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큰돈이 들어간 블록버스터에서 스펙터클은 필수고, 파괴 이미지는 전면에 나선다.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한데 대개는 남성(들)이 소환된다. 이는 남성적 가치를 옹호한다는 의미의 우회한 인정이다. 남성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블록버스터는 가장이 나서야 나라가 바로 서고 나라에 근심 걱정이 사라져야 가정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 '백두산' 이병헌(왼쪽), 하정우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 이병헌(왼쪽), 하정우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이념을 달리해도 조인창과 리준평은 모두 가족이 있는 가장이다. 조인창은 출산을 앞둔 아내 최지영(배지수)이, 리준평은 선화(전도연)가 있다. 곧 전역을 앞둔 조인창은 아내에게 간단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백두산을 향한다. 리준평이 베이징 주재 북한 서기관으로 위장 활동하다 남측의 이중 첩자임이 발각돼 수감돼 있던 동안 아내는 약으로 인사불성 상태가 되었고 딸은 어딘가로 보내진 상태다.

이들에게 가족은 2순위다. 어서 남한으로 돌아와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확인하라는 아내의 절규에도 조인창은 꿈쩍하지 않는다. 리준평은 오랜 수감 생활로 만나지 못해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딸을 아내의 친정 오빠가 사는 지역에서 겨우 조우한다. 실어증을 앓는 딸은 리준평을 향한 원망이 가득함에도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서서히 마음을 열지만, 다시 홀로 남겨진다. 리준평이 2차 폭발을 막겠다며 백두산 인근의 갱도로 향한 까닭이다.

영화 '백두산' 수지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 수지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국가적인 재난을 이유로 조인창과 리준평에게 가족은 교환 가치로 치부된다. 우여곡절 끝에 갱도에 도착한 두 사람은 누가 기폭 장치를 터뜨릴 것인가 실랑이를 벌이고 이는 남과 북의 요원이 서로를 위해 희생하려는 눈물겨운(?) 남자들의 의리로 수렴한다. 실제로 희생당하는 건 리준평이 조인창에게 대신 맡아달라고 부탁한 딸과 백두산 2차 폭발을 막은 후에야 남편 조인창과 만나 드디어(!) 가족 봉합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는 최지영이다.

아빠 조인창과 엄마 최지영과 딸 순옥과 새로 태어난 아기까지, 그럼으로써 이룬 가족의 탄생. 가부장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는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의 가치는 배제되어 있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다시 떠나 상처가 클 순옥은 리준평의 부탁을 받은 조인창의 남한 행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였을까? 곧 아이를 낳을 최지영은 남편이 데리고 온 순옥을 별말 없이 가족으로 맞이했을까?

영화 '백두산'에 출연한 하정우(왼쪽), 이병헌.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에 출연한 하정우(왼쪽), 이병헌.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백두산>은 순옥과 최지영의 목소리는 배제한다. 국가와 가장과 남자라는 남성성과 집단의 가치 속에서 개인은, 여성은, 약자는, 기득권의 결정에 운명이 좌지우지된다. 영화 속 백두산 폭발은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초유의 재난으로 분류되는데 사실상 기득권에서 배제된 이들의 재난이다. 시대는 그동안 배제된 개인의, 여성의, 약자의 사연을 알리고 목소리를 듣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백두산>은 시대착오적인 블록버스터가 아닌가 말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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