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항일' 인터뷰③ | 이승현 감독, 사죄를 향한 염원이 담긴 ‘에움길’을 걷다

2020-01-01 13:00 정지은 기자

[맥스무비= 정지은 기자] 에움길이란 에워서 돌아가는 굽은 길을 뜻하는 단어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이 사죄를 받으려 돌아온 먼 길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영화 ‘에움길’을 제작한 이승현은 감독이자 배우다. 그는 ‘귀향’(감독 조정래)에서 조선인 출신 군인인 다나카 역을 연기한 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어두운 역사 속 진실을 알리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 ‘에움길’을 제작했다.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 사진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 사진

이승현 감독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에 대한 증언집과 영상들을 살피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중대한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반성했다.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에움길’을 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며 제작 초기 당시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에움길’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이 지내는 복지 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이 보낸 일상과 추억이 담긴 작품이다. 이승현 감독은 할머니가 생활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극영화 대신 다큐멘터리로 ‘에움길’을 제작했다. 제작에 필요한 자료와 테이프 영상들은 나눔의 집에서 제공받았다.

“할머니들의 역사가 담긴 귀중한 자료를 나눔의 집에게 제공받은 후 데이터화 작업을 시작했다. 영상 속에는 할머니들이 나눔의 집에 모여 일상을 보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아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익숙한 친할머니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 감정을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정래 감독이 제작비와 인력 문제에 대해 도움을 줬다.”

이옥선 할머니 모습이 담긴 영화 '에움길' 스틸. 사진 영화사 그램
이옥선 할머니 모습이 담긴 영화 '에움길' 스틸. 사진 영화사 그램

그는 영화를 촬영하기 전 주인공인 이옥선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경기도 광주를 방문했다. 나눔의 집 근처에 숙소를 잡아 할머니들과 일상을 함께 보내며 친분을 쌓았다.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말문을 열 때마다 이상한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되지 않을까’라는 조바심이 있었다. 첫 한 달은 촬영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할머니들과 같은 일상을 보내며 어색한 분위기를 줄여나갔다.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도 할머니들 생활하는 공간이 불편하지 않게 스태프들을 전부 다 물렸다. 최소 인원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언제나 할머니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그는 편집 과정에 할머니들이 밝힌 의사를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가슴 아픈 역사를 자극적으로 연출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경각심을 가졌다.

“할머니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자극적인 이야기고 슬픔이 깔린 역사로 비친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 결국 사람은 행복을 느끼기 위해 살아간다. 작품 속에서도 증언하는 모습보다는 활기 넘치고 밝은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에움길’을 본 대중들도 피해자 할머니들을 과거를 극복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운동을 주도한 존경스러운 대상으로 보길 바랐다.”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 사진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 사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역사다.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누구도 가해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가슴 아픈 진실은 ‘에움길’ 마지막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이승현 감독은 생존자 할머니 수가 표기됐던 엔딩 신을 꼽으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

“’에움길’ 마지막 장면에서 피해자 할머니 생존자 수를 표기했다. 촬영을 시작하던 때는 생존자 수가 50명이 넘는 숫자였는데 점차 줄어들었다. 빨리 작업을 해서 개봉이 되지 않더라도 할머니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2년이 지난 후 개봉된 최종 버전에는 21명만 표기가 됐다.”

이승현 감독은 적은 예산으로 ‘에움길’ 제작을 시작했다. 개봉 후에도 소수 상영관에 공개돼 높은 관객 수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는 관객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그는 ‘에움길’을 홍보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홍보도 미흡했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관객들이 시사회에서 좋은 말을 전해줬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끄러우면서 울컥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영화였음에도 ‘에움길’은 다양한 목표를 달성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고, 인권 운동가가 된 생존자 할머니들이 외친 목소리를 담았다. 그 중에서도 이승현 감독은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소망을 밝히며 ‘에움길’에 담긴 진심을 드러냈다.

“’에움길’을 제작하며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관객 수를 늘리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관객들이 극장에서 추억을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들도 극장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옛 추억을 되짚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슬픈 역사가 아닌 행복한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정지은 기자 / jea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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