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항일' 기획② | 한일 갈등 속 하나되는 영화인들…“성숙한 문화교류 필요해”

2020-01-01 13:00 박재은 기자

[맥스무비= 박재은 기자] 지난 여름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인해 일본 불매 분위기가 들끓었다. 분야 불문 일본과 관련된 수많은 산업이 직격타를 맞은 가운데, 그 여파가 영화계까지 확산돼 많은 영화인들의 우려를 야기했다.

지난 8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개최될 무렵, 상영 예정작에 올랐던 7편의 일본 영화를 즉각 상영 중단하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영화제 측은 해당 영화가 일본 정치와 무관하다는 의사를 밝히며 일단락 시켰지만, 사건은 한일 갈등이 문화 예술 산업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 가운데 영화인들은 입을 모아 성숙한 문화교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국을 오가며 남다른 소신을 밝혀온 영화인들의 잇따른 행보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날씨의 아이'를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사진 티캐스트, 맥스무비DB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날씨의 아이'를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사진 티캐스트, 맥스무비DB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 등 작품들을 통해 국내에서도 팬덤을 형성하며 사랑 받은 감독이다. 자국 내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실제 사건들을 각색해 현대 사회 속 문제점을 꼬집는 작품들을 연달아 내며 세계적인 명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 사회가 관용을 잃어가고 있으며 공동체 문화와 가족문화가 붕괴되고 있다”고 자국 정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비판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 10월 글로벌 프로젝트 작품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기자회견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일본 우익세력의 압박에도 끊임없이 소신을 밝혀왔던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쏟아진 한일 갈등에 대한 질문에 “정치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영화인들이 연대를 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중히 입을 열었다. 이어 자국 도쿄영화제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점을 들추며, 부산국제영화제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역시 한일 갈등 와중 국내에 직접 방문하며 각별한 애정을 내비쳤다. 2017년 ‘너의 이름은’으로 국내 371만 관객(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동원하며 이례적인 흥행을 일으킨 그는 3년만에 발표한 신작 ‘날씨의 아이’로 내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해당 자리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데뷔작부터 관심을 보내준 팬들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한일 관계가 좋아지길 바란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 사진 신문기자' 스틸. 사진 더쿱
영화 '신문기자' 스틸. 사진 신문기자' 스틸. 사진 더쿱

국내 배우 심은경은 한일 갈등이 촉발된 가운데 일본 활동에 도전하며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드라마 ‘블루 아워’를 통해 일본에 진출한 그는 지난 10월 개봉된 영화 ‘신문기자’로 본격적으로 일본 활동을 시작했다. ‘신문기자’는 도쿄일보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가 작성한 동명 저서를 원작으로 익명 제보를 통해 정부가 은폐하려는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실제 아베 정부 하에 벌어졌던 가케 학원 특혜 비리 의혹을 시작으로, 언론과 유착관계에 있는 일본 현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주목 받았다.

심은경은 극중 요시오카 에리카 기자 역을 맡아 한일 양국 모두에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일본 내에서도 수많은 배우들이 고사한 작품을 선택하는 소신 있는 행보로 한일 양국에서 호평 받았다. 급속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일본 영화계는 아베 정부가 취하는 부조리에 대해 인식하면서도 정작 비판 의식을 전하는 작품이 전무했다. 이때 등장한 작품 ‘신문기자’는 이들이 자국을 돌아보고, 심은경이라는 국내 배우를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 '주전장' 스틸. 사진 시네마달
영화 '주전장' 스틸. 사진 시네마달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 정부가 은폐하는 진실에 직접적으로 접근했다. 감독은 지난 7월 개봉된 ‘주전장’으로 위안부 이슈 관련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 증언과 일본 우익세력이 펼치는 논쟁을 가감없이 담아냈다. 해당 작품은 위안부 이슈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풀어낸 수작이라는 평을 얻었다.

데자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 경험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위안부 이슈가 가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이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국내를 향해 지속되는 아베 정부 경제보복과 깊어가는 한일 외교 갈등 속에서 영화인들은 저마다 소신이 담긴 메시지를 전했다. 제천국제영화제 측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미키 데자키 감독은 아베 정부가 보이는 부당한 처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입을 모아 비판했다. 심은경은 지속되는 한일 갈등 속에서도 일본 진출을 감행,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에 출연해 현지 영화계에 본보기를 보였다.

‘김복동’을 연출한 송원근 감독은 “일본에서도 많은 문화 인사들이 한일 갈등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들을 알고 있다. 이런 예술인들이 점점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믿으며, 예술인들이 한일 교류를 통해 알아야 할 일을 알아가고, 알려야 할 일을 알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은 성숙한 문화교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외교 문제 완화에 대해 전해온 뜻 깊은 메시지는 갈등 개선을 위해 올바른 비판이 향해야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상기시킨다. 깊어가는 한일 외교 갈등 속, 영화인들이 이어나갈 행보와 지속적인 문화 교류에 관심이 필요한 때다.

박재은 기자 / jeunny@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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