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2019’ 인터뷰① | ‘김복동’ 송원근 감독, 일본 아닌 대한민국을 차갑게 돌아보다

2020-01-01 13:00 이유나 기자

[맥스무비= 이유나 기자] 지난 1992년, 평화운동가 김복동 할머니는 일생 동안 숨겨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그 후 약 27여년 동안 전세계를 순회하고 인권운동가로 활약하며 일본 정부의 속죄와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일본은 과거를 추호도 인정하지 않았고, 숙원을 풀지 못한 할머니는 후세대를 향한 걱정만 가득 안은 채 지난해 1월 8일, 93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이후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갈등이 촉발됐고, 국내에서는 유례 없던 항일정신이 광연하며 일본 불매운동이 야기됐다.

일본 불매운동이 가장 맹렬하게 일어났던 지난 8월,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이 세상에 공개됐다. 뉴스타파 송원근 감독이 연출한 ‘김복동’은 김복동 할머니가 이어온 인권 활동과 우리가 몰랐던 할머니의 일상 및 아픔을 담아내며 뜨거운 화제작으로 부상했다. 수많은 유명인들이 영화 관람을 촉구했고, 영화를 뛰어넘은 ‘무브먼트’(Movement·움직임)가 일어났다. 당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던 일본 불매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 이 시대 꼭 봐야 할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다.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사진  인턴 기자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사진 인턴 기자

그럼에도 송원근 감독은 ‘김복동’이 반일이나 극일 정신을 기저에 둔 작품이 아니라며 여러 자리에서 설명하고는 했다. 일본을 향한 분노가 아닌 우리네 각성을 요구하고, 김복동 할머니를 추억하는 게 연출 의도였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여름에 개봉된 영화를 겨울에 와서 다시 돌아보면서도 그 목적과 정신이 결코 변질되지 않았음을 피력했다.

“일본 불매운동으로 뜨거웠던 상황에서 이 영화를 바라봐주시던 시선들과는 차이가 있는 영화다. 영화가 소개될 때마다 ‘반일’이나 ‘극일’이 마치 상징적인 단어처럼 붙어 다녔지만, 이는 영화가 만들어진 의도와 다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바라고 요구하는 것들을 제대로 관심 갖고 알려 한 적 있었나 싶었다. ‘김복동’은 김복동이라는 촛불이 꺼져가던 당시, 이 촛불이 가진 의미를 알리고, 이 촛불의 모습을 보존해 역사로 남겨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게끔 만들어졌다. 이와 동시에 우리 자신을 차갑게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처음부터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을 둔 건 아니었다. 지난해 봄부터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한참 읽었던 게 연출 계기가 됐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아리랑’을 읽을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의아했다. 계속 읽다 보니 마지막 권이 돼서야 자세한 묘사가 등장하더라. 그 소설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역사인 위안부 문제가 마치 해결된 듯한 역사처럼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 백 년을 어떤 형태로든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 찰나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정리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휴먼 다큐가 아닌, 우리나라 근현대사 100년 중 일본 위안부 역사를 놓고 그 안에 김복동 할머니의 인생을 들여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취재를 통해 하나씩 깨달아가는 과정을 오롯이 담았다.”

영화 '김복동' 스틸.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김복동' 스틸. 엣나인필름 제공

정의기억연대와 미디어몽구로부터 김복동 할머니가 담긴 자료들을 건네 받아,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냈을 때 역사로 남을 법한 장면들만 추렸다. 그 자료들을 뼈대로 두고 취재를 통해 살을 붙여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만큼 또 많이 걷어내기도 했는데, 실지 못해 아쉬운 장면들이 빼곡하다.

“김복동 할머니의 공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 중 후자에 초점을 둬야 했다. 할머니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나비 기금’을 만드는 등 큰 행적을 남겼다. 그럼에도 이런 장면들이 위인전처럼 보이게 할까 싶어 편집해야 했는데, 꽤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작성한 제작 노트를 나중에 봤더니, 영화 첫 장면으로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처럼 할머니의 인간적인 면들을 좀 더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영화는 김복동 할머니가 인권 활동을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하거나, 약한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평소 활기차게 지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적재적소 배치돼 따뜻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송원근 감독은 할머니의 희로애락 모두를 영화에 담아내면서 할머니를 보다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사진  인턴 기자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사진 인턴 기자

“할머니 생일 장면을 봤을 때, 기뻐해야 할 생일날 왜 우시는 걸까 궁금했다. 그런 일상들도 27년 동안 이어져온 역사들을 차례대로 배치해 들여다보니 더욱 이해가 됐다. 영화 중간중간 관객들이 할머니도 한 명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장치를 뒀다. 물속에 잠겨 거칠게 헤엄치다가도, 때로는 얕은 물에서 물장구 치듯 찰방찰방 노는 듯한 할머니 일상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위안부 문제를 김복동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남겨진 기록들 속 김복동 할머니는 굉장히 까칠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무섭게 혼내는 할머니라고도 했다. 송원근 감독은 영상들을 수없이 되돌려 보며 그 까칠함 속에 묻어나는 할머니의 정서와 근간을 짚어낼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유독 마음이 아파오는 이유다.

“영상들을 통해 바라본 할머니는 굉장히 ‘정’에 목말라 했던 것 같다. 그 결핍이 역으로 까칠하고 퉁명스럽게 드러난 것 같았다. 절연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도 있겠고, 지금은 만날 수 없고 손잡을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을 거다. 그 그리움을 다잡고 더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활동해왔을테다. 미디어몽구나 할머니 동생분에 따르면, 할머니는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고 한다.”

이유나 기자 / ly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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