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2019’ 인터뷰② | ‘김복동’에 끝은 없다…벨기에 넘어 일본으로

2020-01-01 13:00 이유나 기자

[맥스무비= 이유나 기자] 지난 7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전국적인 일본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전범국가 일본의 과거 만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가 적극적인 불매 운동의 원동력이 됐다.

그 분위기 속에서 영화 ‘김복동’이 개봉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의 삶을 조명한 영화는 오가타 린타로 일본 민주당 의원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정부 사이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해 벌인 치열한 논전을 그대로 담았다. 오가타 민주당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한번이라도 직접 사과하라”고 하자, 아베 총리는 “(사과를 한다면)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끝나지 않게 되며,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며 거듭 거부한다. 송원근 감독이 3분 가량 이어지는 해당 영상을 거의 통째로 영화에 집어넣은 데에는 의도가 다분했다.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사진  인턴 기자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사진 인턴 기자

“영화의 큰 틀은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지만, 이와 함께 일본이 사죄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알리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의 근저에 뿌리 내리고 있는 문제와,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 정부로부터 요구한 건 진심 어린 사과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국가 대 국가끼리 화해했다고 합의하거나, 화해치유재단을 만드는 행위들이 얼마나 피해 당사자를 모욕하는 것인지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알게 돼 뜨거운 열기와 차가운 이성의 조화를 이루기를 바랐다.”

‘김복동’은 비슷한 시기 개봉된 미키 데자키 감독의 ‘주전장’과 함께 큰 주목을 받았다. ‘아베가 돕는 영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당시 국민 정서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8만여 명을 넘는 관객수를 끝으로 상영관에서 내려졌다. 이후에도 단체 관람 상영 등을 통해 총 8만 9011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까지 기록했지만, 송원근 감독이 예상한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영화가 굉장히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100만은 넘지 않을까 싶었다. 시사회 반응도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개봉 이후의 한계가 존재했다. 그나마 극장이 소통 창구였는데 상영관 역시 그렇게 많지 않았다. 뜨거운 뉴스거리만 됐지, 영화에 발길이 들지 않았던 거다. 마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이야기 같았다. 이 영화는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불편한 이야기, 끔찍한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이야기로 선입견을 두고 바라봤던 게 아닌가 싶다.”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사진  인턴 기자
영화 '김복동' 송원근 감독. 사진 인턴 기자

일본 불매 분위기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기는 하나 그 열기는 점차 옅어져 갔다. 이와 함께 ‘김복동’도 상영관에서 내려졌지만, 시기와 무관하게 언제든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랐다.

“뜨거운 여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던 국민들은 일본 불매운동으로 행동을 보였다. 그 일환으로 ‘김복동’은 물론 ‘봉오동 전투’ ‘주전장’ 등 스스로를 잘 돌아볼 수 있는 영화를 한 편 더 보기도 했다. 그렇게 뜨거웠음에도, 모든 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하나 꿈꾸는 게 있다면 ‘김복동’ 만큼은 일회성의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는 이후에도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교과서에 한두 페이지 적시되는 게 아닌, 수십 년 동안 꿋꿋한 시간을 겪어온 할머니들의 삶을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 마음가짐으로, 여전히 기회가 될 때마다 관객들과의 만남을 꾸준히 가져왔다. GV 참석만 총 80여회, 배급사 대표가 “송 감독이 올해 순례한 느낌”이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영화가 가진 메시지를 구석구석 전하기 위해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디든지 다녀왔다. 직접 관객들을 만나 뵙고, 관객들의 질문에 설명해드리는 게 이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끝까지 책임지고 해야 할 일 같았다. ‘김복동’은 공동체 상영으로만 만 명 가까이 봤고, 지금도 대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 간 곳은 그저께 다녀온 울산의 한 중학교였다. 선생님들은 이 작품이 충분히 가치가 있고 아이들에게 크게 남을 수 있는 영화라는 걸 알아주시는 것 같다. 김복동 할머니가 미래 세대, 특히 학생들을 위해 활동해오신 만큼 나 역시 열심히 다니려 했다.”

영화 '김복동' 스틸.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김복동' 스틸. 사진 엣나인필름

성탄절이던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419번째 ‘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이날 수요시위는 올해 별세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 다섯 분의 넋을 기리는 행사로 진행됐다. 이제 남아있는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은 스무 명뿐이지만, 그 사이 변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 한국인들의 단단한 정신이 절실하다.

“첫 수요시위가 열렸을 때 할머니들 나이가 60대 중후반이었다. 그 할머니들이 이제 아흔넷, 아흔다섯이 됐다. 수요시위가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이뤄지고 있지만 할머니들의 주장은 90년대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범죄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법적으로 배상하고, 너희 나라 국민들에게 교육하라는 게 할머니들이 바라는 바다. 가장 중요한 건 할머니들의 요구사항을 우리가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일본 정부가 바뀌어도 우리가 정확히 기억하고 요구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김복동’은 국내를 넘어 점차 세상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벨기에에서 개최된 제7회 한국영화제를 다녀왔고, 오는 2월에는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다. 모두가 ‘김복동’ 상영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송원근 감독은 또 다시 본격적인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을 위해서라도 ‘김복동’에 끝은 없어야 한다.

“벨기에 한국 영화제에 갔을 때, 유럽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 내지는 80년전에 일어난 아주 오래된 일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150명의 유럽 관객들은 마치 오늘의 일처럼, 할머니의 슬픔을 잘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해왔다. 일본 관객들도 이 영화를 민족주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가 끝나고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라는 문장이 뜰 때, 그들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김복동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이유나 기자 / ly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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