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 영웅주의 VS 군국주의, 영화로 보는 미국-일본 태평양 전쟁 시각 차이

2020-01-03 14:41 정찬혁 기자

[맥스무비= 정찬혁 기자] 수출규제, 지소미아 문제 등으로 악화된 한일관계가 올해도 평행선을 걷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신년사를 통해 또다시 개헌 의지를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를 단계적으로 손질해 궁극적으로는 일본이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도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고 한다.

반일감정이 강한 시국,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침몰시킨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영화 ‘미드웨이’(감독 롤랜드 에머리히)가 개봉해 주목 받았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미드웨이’는 스펙터클한 전투신과 진한 드라마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태평양 전쟁을 두고 승전국인 미국과 패전국 일본은 각자 다른 온도로 사건을 기억하고 그리고 있다.

영화 ‘미드웨이’ 스틸. 사진 누리픽쳐스
영화 ‘미드웨이’ 스틸. 사진 누리픽쳐스

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로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미국의 대일석유수출 금지로 경제적, 군사적 타격을 받은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이후 일본은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일대를 점령했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후 기세가 하락했다. 점령지 대부분을 상실한 일본은 항복을 거부하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1945년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에게 태평양 전쟁은 야욕이 극에 달한 일본을 잠재운 승리의 기록이며 수많은 영웅이 탄생한 숭고한 역사다. 이러한 인식은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영화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미드웨이’는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해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잡게 된 미드웨이 해전을 그렸다. 미드웨이 해전은 열세 전력을 극복하고 일본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태평양 전쟁 최대 승전보다. 영화는 일본함대 암호를 해독한 정보장교부터 목숨을 걸고 일본군을 폭격하는 군인들까지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일궈낸 다수 영웅들을 통해 전우애와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미드웨이’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들과 그 역사에 집중했다면 ‘진주만’(2001)은 전쟁에 휘말린 세 인물의 엇갈린 사랑과 우정을 그렸다. 마이클 베이 감독이 연출한 ‘진주만’은 영국 본토 항공전부터 진주만 공습, 둘리틀 특공대 공습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주요 인물들의 드라마를 입혀 미국식 영웅주의를 보인다.

반면 일본은 반전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있지만, 주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입장을 취하며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만들었다. 일본 극우 세력은 여전히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대동아 전쟁은 일본이 서구열강 침략으로부터 아시아 국가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패전 후 금지된 용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는 지금도 극우 세력들이 참배하고 태평양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고 주장 중이다. 지난해 9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자위대 고급간부 회동 간담회에서 대동아 전쟁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올랐다. 이러한 극우 세력의 인식, 정부 태도는 일본이 전범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에게 피해자, 희생자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영화 ‘영원의 제로’ 포스터. 사진 도호 주식회사
영화 ‘영원의 제로’ 포스터. 사진 도호 주식회사

2013년 일본에서 개봉해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영원의 제로’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는 형식의 영화다. 영화는 태평양 전쟁에서 사용된 전투기 제로센 조종사를 주인공으로 국가적 폭력과 가족의 사랑을 다뤘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폭탄 대신 사용한 가미카제(자살 특공대)를 미화하는 등 희생으로 나라를 지키는 군국주의 사상과 연결된다. 동명 원작 소설 작가인 햐쿠타 나오키는 위안부 피해자,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등 대표적 우익 인사로 유명하다.

‘남자들의 야마토’(2005)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이 보유한 세계 최대 전함인 야마토 격침을 다룬 영화다. 야마토에 승선한 신병을 중심으로 전쟁의 광기에 빠져든 일본군부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일본 전함의 위용을 자랑하고 일본군 사투를 미화했다. 일본이 자행한 침탈 대신 미국 폭격에 희생된 선량한 일본인에 포커스를 맞추며 피해자 논리를 펼쳤다.

미국, 일본이 합작한 영화들은 이러한 양측 시선을 모두 담아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는 1945년 이오지마 전투를 일본 관점에서 그렸다. 태평양 전쟁 격전지 이오지마 주둔 일본군 사령관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이 집으로 보낸 편지와 가족 이야기를 기반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아버지의 깃발’과 함께 만든 영화다. ‘아버지의 깃발’은 미군 시선으로 전개된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희생되는 일본군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잔혹한 일본 군부와 무책임한 정부 행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1970년에 제작된 ‘도라 도라 도라’는 진주만 공습을 소재로 한 미국 일본 합작 영화로 두 나라 감독들이 각기 자국 장면을 감독하며 촬영했다. 미국판 감독은 리처드 플라이셔, 일본판은 마스다 토시오, 후카사쿠 킨지 감독이 맡았다. 영화 제목인 ‘도라 도라 도라’는 공격 성공을 알리는 일본군측 암호다. 영화는 역사적 고증에 따라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진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충실하게 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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