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올 화이트’ 인종 차별 논란…시작 전부터 시끄러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2020-01-09 18:00 정지은 기자

[맥스무비= 정지은 기자]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영화인들이 매년 영화계 판도를 바꾸며 편견을 깬 작품들을 선보이는 가운데 시대를 역행하는 시상식이 있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BAFTA)은 지난 7일 제 73회 BAFTA 수상 후보 리스트를 공개한 후 구설수에 올랐다.

영화 ‘밤쉘’ 배우 샤를리즈 테론, 영화 ‘결혼 이야기’ 배우 스칼렛 요한슨,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배우 마고 로비 모습이 담긴 스틸(왼쪽부터).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넷플릭스, 소니픽쳐스
영화 ‘밤쉘’ 배우 샤를리즈 테론, 영화 ‘결혼 이야기’ 배우 스칼렛 요한슨,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배우 마고 로비 모습이 담긴 스틸(왼쪽부터).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넷플릭스, 소니픽쳐스

문제는 연기상 후보인 배우들이 모두 백인이라는 점이었다. 스칼렛 요한슨은 ‘조조 래빗’(감독 타이카 와이티티)과 ‘결혼 이야기’(감독 노아 바움백)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그를 비롯해 샤를리즈 테론, 로라 던, 플로렌스 퓨 등 백인 배우들이 후보로 선정됐다. 그중에서도 마고 로비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밤쉘’(감독 제이 로치)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부문에 두 번 이름을 올렸다.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아담 드라이버, 호아킨 피닉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행크스를 포함한 백인 배우들만 후보로 꼽혔다.

BAFTA는 유색 인종 배우들을 넣은 이미지를 온라인 홍보 용도로 썼지만 정작 후보에서 배제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다. 유색 인종 배우들은 연기상을 제외한 라이징 스타상과 신인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아콰피나도 연기상이 아닌 라이징 스타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외에도 2019년 눈부신 활약을 펼친 배우인 제니퍼 로페즈, 에디 머피, 루피타 뇽,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설 자리는 없었다.

영화 ‘해리엇’ 배우 신시아 에리보 모습이 담긴 스틸. 사진 퍼펙트월드픽쳐스
영화 ‘해리엇’ 배우 신시아 에리보 모습이 담긴 스틸. 사진 퍼펙트월드픽쳐스

‘올 화이트’ 논란이 식기도 전에 연이어 다른 논란이 등장했다. 신시아 에리보는 2019년 ‘해리엇’(감독 카시 레몬즈)으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다.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인 해리엇이 펼친 삶을 완벽하게 재현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그는 BAFTA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문제는 BAFTA 측이 후신시아 에리보에게 뮤지컬 공연을 요청한 사실이었다. 사건이 보도된 후 여론은 거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후보에 선정되지 못한 유색 인종 배우에게 무대 요청을 하는 행위가 무례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불에 기름 붓는 격으로 커진 논란은 BAFTA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만들어냈다.

이후 각종 SNS에서 ‘#BAFTASSoWhite’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이 게재되며 백인 후보 논란을 저격하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중은 BAFTA가 후보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논란에 대해 BAFTA 집행위원장인 마크 사무엘슨은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와 나눈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혔다. “다양성이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지만 우리가 원하는 만큼 업계가 진보적이지 못하다”며 BAFTA를 대변했다. 여론은 업계 탓으로 돌리는 행위에 실망스러운 반응을 표했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로고 이미지. 사진 BAFTA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로고 이미지. 사진 BAFTA

BAFTA는 오랜 시간 동안 백인 후보를 지지해왔다. 비즈니스 행동심리학 연구소인 펀 칸돌라는 BAFTA가 1943년부터 연기상 후보로 지명한 배우들 중 92%가 백인이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밝혔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흑인 남성 배우는 5명, 여우주연상 후보에 선정된 흑인 여성 배우는 6명에 불과했다. 동아시아 출신 배우들은 단 한 번도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BAFTA가 백인 후보를 선호한 사실을 담은 조사 결과는 영화계가 앓는 고질적인 인종 차별 문제를 시사했다.

시상식은 한 해 동안 작품을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 영화인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자리다. BAFTA가 저지른 잘못된 선택은 시상식이 가져야 할 마땅한 명성과 권위에 민폐를 끼쳤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지닌 영화인들이 펼칠 미래를 제한하고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제 73회 BAFTA는 오는 2월 2일 영국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BAFTA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전초전이라 불리며 많은 영화인들에게 존경 받는 시상식이다. 시대를 역행하며 내린 잘못된 선택을 극복하고 밝은 영화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정지은 기자 / jea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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