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봉준호가 존경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무관에 그친 거장

2020-02-12 09:30 정찬혁 기자

[맥스무비= 정찬혁 기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작품상 포함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에 올랐다. 개인적이며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기생충’은 전 세계에 통용될 정도로 보편적이며 동시에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학도 시절부터 그에게 영감을 줬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영광을 나눴다.

영화 ‘아이리시맨’ 스틸. 사진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 스틸. 사진 넷플릭스

지난 9일 오후(미국 현지시간)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이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주요 부문을 휩쓸며 최다 수상인 4관왕에 올랐다.

‘아이리시맨’ 마틴 스코세이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1917’ 샘 멘데스 등 수많은 명감독이 있었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감독상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어릴 때 영화를 공부하며 가슴에 새긴 말이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다. 책에서 읽은 말이고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한 말이다”며 함께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언급했다. 봉준호 감독의 발언에 모든 이들이 자리에 일어나 박수를 보냈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도 이에 화답하며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봉준호 감독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그가 연출한 ‘아이리시맨’은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무관에 그쳤다. 앞서 열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아이리시맨’은 수상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1967년 ‘누가 내 문을 두드리나’을 시작으로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 등 수많은 명작을 연출했다. 1976년 제2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1986년 제39회 칸 영화제 감독상, 1990년 제4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 1991년 제44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 2003년 제60회 골든글로브시상식 감독상 등 해외 유수 영화제, 시상식에서 수많은 수상 기록을 남겼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벗어난 뉴욕파 감독의 대표주자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 ‘아이리시맨’은 미국 마피아 조직원이자 전미트럭운송조합 간부였던 프랭크 시런의 증언을 토대로 현재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은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다룬다. 영화는 20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안에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당선과 암살, 워터게이트 사건 등 미 현대사 주요 사건들도 담았다. 영화 ‘카지노’ 이후 23년 만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작품에 출연한 로버트 드 니로를 비롯해 알 파치노, 조 페시 등 명배우들이 이 작품을 위해 뭉쳤다.

영화 ‘아이리시맨’ 스틸. 사진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 스틸. 사진 넷플릭스

명연출과 명연기가 더해진 ‘아이리시맨’은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오스카 레이스 초반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꼽혔으나 결국 아카데미의 외면을 받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불리지만 유독 아카데미 수상과 인연이 없었다. ‘성난 황소’로 1981년 제53회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6번이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갱스 오브 뉴욕’은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단 한 개의 트로피도 받지 못했다. 이후 7번째 감독상 후보에 오른 ‘디파티드’로 2007년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첫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로 공개된 작품으로 불리한 출발선에서 오스카 레이스를 시작했다. 여전히 다수 아카데미 회원들은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극장 방식의 기존 영화업계를 교란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아이리시맨’, ‘결혼이야기’, ‘두 교황’, ‘클라우스’, ‘내 몸이 사라졌다’, ‘아메리칸 팩토리’ 등 넷플릭스가 투자, 배급한 작품들이 24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여우조연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2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마블 영화를 겨냥한 발언도 영화 관계자와 영화 팬들 사이에서 격한 의견들이 오가게 만들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지난해 10월 진행된 강연에서 마블 영화에 대해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영화(cinema)가 아니라 테마파크”라고 평했다. 그의 발언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지지하는 관객, 마블과 관계된 영화인들을 자극했고 논쟁의 규모가 확대됐다. 마틴 스코세이지 발언에 관해 당시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아카데미 위원회 젊은 회원들에게 반발을 살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거장의 마스터피스는 오스카 레이스에서 조금씩 하강 곡선을 그렸지만,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처럼 마틴 스코세이지는 여전히 우리의 위대한 감독이다.

정찬혁 기자 / hyuck2777@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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