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웅의 특별한 리뷰 | <이장> 가부장의 독(毒)에 맞서 해독(解毒)하는 가족

2020-02-26 09:00 허남웅 기자

[맥스무비= 허남웅 기자] 가부장은 독(毒)이다. 집안의 중대사를 장남과만 논의하고 장남이 부재하면 제사도 진행하지 않고 장남이 없으면 집안 행사도 취소하는 장남의 ‘천하지대본 長男者天下之大本’, 즉 장남이 이 세상의 근본이라는 가부장의 숙주가 이 사회에 퍼트린 분란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 '이장' 스틸. 사진 인디스토리
영화 '이장' 스틸. 사진 인디스토리

화장(火葬)이다. 시체를 불에 살라 장사를 지내는 일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가부장은 죽어서도 무덤 밖으로 손을 내밀어 장남 제일주의와 같은 남성 기득권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산 자들, 남은 자들, 특히 여자들은 그 뒤처리로 열 뻗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첫째 혜영(장리우)은 이번만큼은 아빠의 시체를 화장해서 가부장의 폐해를 아주 가루 낼 생각이다. 둘째 금옥(이선희)과 셋째 금희(공민정)와 넷째 혜연(윤금선아)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큰아버지의 생각은 다르다. “어떻게 장남도 없이 무덤을 파냐” 연락이 두절된 막내아들이면서 외동아들이면서 아들로 치면 첫째인, 실상은 이 집안의 골칫거리인 승락(곽민규)을 찾아오라는 불호령에 네 자매는 한목소리로 대꾸한다. “장남이 무슨 벼슬이야!”

남자가 무슨 벼슬인 줄 알고 사는 <이장>의 남자들, 아니, 이게 어디 영화에만 해당할까. 아무튼, 여자들 속 끓이는 데 선수다. 무슨 사고를 쳤는지 승락은 연락을 끊었고, 금옥의 돈 많은 남편은 부인은 나 몰라라 바람피우고, 결혼을 앞둔 금희의 예비 신랑은 칫솔과 치약과 같은 생필품은 엄마네 집에서 가져오면 된다고 철없는 소리나 하고 있다. 대학에 다니는 혜연은 학내 성폭행을 일으킨 남학우들을 향한 문제 제기로 투쟁 중이다.

영화 '이장' 스틸. 사진 인디스토리
영화 '이장' 스틸. 사진 인디스토리

혜영의 초등학교 아들 동민(강민준)도 세상 저밖에 모르는 말썽꾸러기인데 가부장의 뿌리에서 좀 벗어나 있다. “우리 아빠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엄마는 미국으로 일하러 간 아빠가 백 밤만 자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 해서 굳게 믿었는데 아직도 안 오고 있어 도대체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아마도 혜영을 골치 썩인 일로 헤어진 것이라 추측되는데 영화는 굳이 자세한 설명을 누락한다.

중요한 건 동민이 가부장의 때를 타지 않았다는 것. 엄마와 이모들과 큰집 내외의 보살핌에 순응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내빼는 아이가 유독 승락의 전(前) 여자친구에게는 옆에 붙어 손을 놓을 줄 모른다. 동민이 고분고분하는 윤화(송희준)는, 관람을 예정하는 분들을 위해 승락과의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 정도만 밝힌다. 다만, 누나들이 승락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달리 윤화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응대하여 승락을 꼼짝 못 하게 한다.

가부장이 독인 상황에서 윤화는 해독(解毒)을 대리하는 존재다. 승락과의 문제를 풀기 위해 혜영 남매와 함께 이들 아버지 묘의 이장(移葬) 길에 오르는 윤화는 처음에는 불청객이었다. 이장은 한 번 장사 지낸 사람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장사를 지내는 일이다. 무덤으로 들어간 가부장, 그 가부장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건 과거를 끄집어내 다시금 재현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밑거름’으로 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장을 강제하는 큰아버지에 맞서 가부장에 학을 뗀 혜영 자매는 화장을 주장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곧 죽어도 이장을 고집하는 큰아버지의 존재는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런데도 가부장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기득권의 마지막 발악을 역설한다. 시효가 만료한 과거를 화장해 밝은 미래의 거름으로 쓰기 위해 필요한 건 연대.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어도 승락으로 연결된 윤화는 네 자매와 공동으로 가부장제와 작별에 나선다.

영화 '이장' 스틸. 사진 인디스토리
영화 '이장' 스틸. 사진 인디스토리

태어나면서부터 가부장에 골치 썩은 혜영과 금옥과 금희와 혜연과 다르게 극 중 가족사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 윤화는 가부장과 거리를 둔 한국의 신인류다. 아빠의 존재를 아예 몰라 가부장의 개념조차 없는 동민이 윤화와 손을 잡은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가부장이 독이 되고 어깨를 나란히 한 가족이 해독이 되는 행간과 뉘앙스의 가족주의 안에 <이장>이 꿈꾸는 사회가 담겨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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