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논란의 로만 폴란스키, 세자르상 불참…”페미니스트 괴롭힘 무서워”

2020-02-28 11:47 이유나 기자

[맥스무비= 이유나 기자] ‘피아니스트’ ‘올리버 트위스트’를 배출한 명장이자 아동성범죄 혐의로 도피생활 중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프랑스 세자르상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신작 ‘장교와 스파이’가 ‘프랑스의 오스카’로 불리는 세자르상의 최다 후보로 선정되면서 논란이 불거졌고, 이에 거센 항의가 이어지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사진 서밋엔터테인먼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 사진 서밋엔터테인먼트

앞서 지난달 29일(이하 현지 시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한 ‘장교와 스파이’가 28일 개최되는 제45회 세자르상의 작품상, 감독상 등 총 12개 부문에 지명됐다. ‘장교와 스파이’는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프랑스의 유대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된 ‘드레퓌스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장교와 스파이’는 개봉 전부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또 다른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가 제기되면서 논란작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11월 발렌틴 모니에라는 프랑스 여성이 일간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를 통해 로만 폴란스키 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이 계기였다. 이 여파로 ‘장교와 스파이’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지만, 영화는 프랑스 현지에서 15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해당 작품이 세자르상의 최다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되자 여성단체 및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프랑스 여성단체 오제 르 페미니즘은 트위터 계정을 통해 “강간이 예술이라면 모든 세자르상을 폴란스키에게 줘라. 도주한 강간범이자 아동성범죄자를 치하하는 행동은 희생자들의 입을 함구시키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마를렌 시아파 양성평등 담당 국무장관도 “프랑스 영화계는 성폭력 및 성차별을 위해 가야 할 길이 있음에도 여성과 성폭력을 고발한 희생자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화 '장교와 스파이' 스틸. 사진 Légende Films
영화 '장교와 스파이' 스틸. 사진 Légende Films

이 같은 논란에 세자르상 조직위 측은 “후보작 선정에 있어 선입견을 가지면 안된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고, 이는 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2일 200여 명의 프랑스 영화인들은 세자르상 조직위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압박을 느낀 세자르상 위원회는 다음날 21명 위원의 전원사임을 발표했다.

27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AFF 통신에 성명을 보내 “페미니스트들의 공개적인 린치가 두려워 세자르상에 불참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감독은 “운동가들은 이미 나를 공개적으로 괴롭히며 위협하고 시위를 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진실을 지키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며, 맹목적인 증오와 반유대주의에 관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총 네 번의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40년째 도피 생활 중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지난 1977년 배우 잭 니콜슨의 집에서 당시 13세였던 사만다 가이머에 술과 최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폴란스키 감독은 플리바겐(유죄 인정 후 감형 협상)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이듬해 달아나 지금까지 도피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프랑스와 미국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기 때문에 파리에서 거주 중이다. 미국은 폴란스키 감독을 여러 차례 자국으로 소환해 기소하려고 했지만 늘 실패했으며, 이로 인해 감독은 도피 생활 와중에도 유럽을 거점으로 다수의 영화를 연출할 수 있었다.

영화 '피아니스트' 스틸. 사진 포커스 피처스
영화 '피아니스트' 스틸. 사진 포커스 피처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아동성범죄 전력과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세계 유수 영화제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2002년 ‘피아니스트’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유령작가’로 베를린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2019년 ‘장교와 스파이’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등을 수상했다. 세자르 영화제는 지난 40여년 동안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총 6차례나 감독상 및 각색상을 수상하는 등 깊은 관계를 이어왔다.

영화 ‘피아니스트’로 지난 2003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지난 2017년 성폭력을 근절하려는 세계적 흐름인 ‘미투 운동’이 발생했다. 이에 미국 아카데미를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성범죄 이력을 가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을 영구 제명시켰다. 이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지난해 4월 로스앤젤레스 고등법원에 아카데미 회원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소송을 낸 바 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세자르상에 최다 부문 후보로 오른 사건은 거장의 성범죄를 묵인하는 영화업계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세자르상에 참석하지 않게 됐으나, 그의 작품인 ‘장교와 스파이’는 여전히 세자르상 12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있다.

제 45회 세자르상은 28일 파리 살 플레옐에서 개최된다.

이유나 기자 / ly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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