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제주 4·3 사건 그린 영화들

2020-04-03 13:26 위성주 기자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72년 전 제주는 지옥과 같았다. 젊은 남성은 죽임을 당했고, 노약자는 가차 없이 버려졌으며, 여성은 모진 학대와 성폭력을 견뎌야 했다. 그렇게 수년에 걸친 학살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 이상이 희생됐다는 제주 4·3 사건은, 언급만 해도 ‘빨갱이’로 몰릴 수 있었던 수십 년 세월에 묻혀 왔다. 제주 4·3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며, 당시의 참상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들을 살펴봤다.

영화 '레드 헌트: 빨갱이 사냥' 스틸. 사진 조성봉 감독 유튜브 캡처
영화 '레드 헌트: 빨갱이 사냥' 스틸. 사진 조성봉 감독 유튜브 캡처

조성봉 감독의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 빨갱이 사냥’(1996)은 4·3 사건을 조명한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영화는 67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지옥과 같은 당시를 직접 겪었던 사람들의 한 맺힌 증언과 삶을 통해 제주 참상의 실상을 드러냈다.

영화는 민주화 이후 사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 시점에 개봉했음에도,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경찰에 기자재가 압수되고 상영장은 봉쇄됐다. 서울 인권영화제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레드 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구속까지 당했다. 경찰은 “’레드 헌트’는 이적성이 짙은 내용을 담고 있어 상영을 허용할 수 없다”며 “강행한 관련자를 사법처리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성봉 감독은 그에 굴하지 않고 1999년 후속편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 2: 국가 범죄’는 악몽의 세월을 공유하고 있는 아홉 노인의 삶을 따라가며, 온갖 죄목으로 ‘빨갱이’로 몰렸던 일화들과 참혹한 학살의 현장을 들춰냈다.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 스틸. 사진 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 스틸. 사진 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제주도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영화도 있다. 제주도 출신의 김경률 감독 작품 ‘끝나지 않는 세월’(2005)은 2004년 7월 제주 지역 사람들로 구성된 배우와 스태프들로 제작이 시작됐으며, 독립영화 지원금과 제주도민의 모금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영화 주연과 조연, 보조 출연을 포함 총 300여 명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영화의 완성을 돕기도 했다.

‘끝나지 않는 세월’은 제주 4·3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차 시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극명한 대비가 과거 사건의 끔찍한 단상을 더욱 부각한다. 영화는 지난 세월 동안 학살의 아픔을 가슴 속 응어리로만 담아왔던 노인의 눈을 통해 가해자의 사과가 이뤄지지 않고, 아픔은 여전하다는 현실을 일깨운다.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이 작품을 끝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김경률 감독의 의지는 같은 제주도 출신의 오멸 감독이 이었다. 그는 영화 ‘지슬: 끝나지 않는 세월 2’(2012)로 사건 당시 동굴에 숨어 지내다 토벌대에 발각돼 희생당했던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의 이야기를 알렸다. 제주 4·3 사건 담은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여타 학살 소재 영화들과 같이 흑백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대사가 제주 방언으로 이뤄져 있어 표준어 자막이 나온다. 영화는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양정원, 박순동, 성민철 등이 출연했다.

‘지슬’은 제주 4·3 사건에 대한 관심이 촉구되기 시작하던 2013년에 개봉해 관객과 평단의 큰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독립영화를 다루는 국제 영화제 중 가장 권위 있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총관객 수 14만 5,398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영화 '레드 헌트' 스틸. 사진 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영화 '레드 헌트' 스틸. 사진 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그 명칭은 1948년 4월 3일에 있었던 대규모 소요사태에서 유래했다. 당시 미군과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로 규정하고, 1948년 10월 17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해안선 5km 이상 지역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모두 사살하는 초토화 작전을 시행했다.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남조선노동당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제주도민들은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했다.

군부 독재 시기가 지나 민주 정부가 들어서며, 한국 현대사에 있던 비극을 조명한 영화들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1981년 부산 학생과 교사 등 시민들이 군사 정권의 조작으로 인해 무고하게 고문을 당했던 사건을 비롯,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지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제주 4·3 사건만은 다뤄지는 일이 많지 않았다. ‘상업 영화로는 만들기 힘든 소재’라는 등의 이유로, 학살을 기억하는 이들은 점차 적어져만 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을 그린 영화들이 국내 관객들에게 수없이 많이 회자되고 감동을 선사했음에도, 정작 우리 역사에 있던 끔찍한 참상을 그린 작품이 적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올해로 제주 4·3 사건은 72년이 지났다. 아픈 과거를 들춰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슴 아픈 역사는 정면에서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당시의 참상을 전승할 의무가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과거 사건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그를 탄압하고 억압하던 의지도 사그라든 만큼, 많은 영화인들이 당시를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주길 기원한다.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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