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톰보이’ 홀로 견뎌내고 있는 아이야, 넌 누구니?

2020-05-11 09:00 이유나 기자

[맥스무비= 이유나 기자] 방학이 한창인 여름, 짧은 머리에 잘생긴 얼굴이 돋보이는 한 아이가 작은 동네에 새로 이사 왔다. 그런 아이에게 동네의 예쁜 소녀 리사가 다가와 이름을 묻는다. 아이의 이름은 미카엘. 처음에는 낯을 가리며 멋쩍어하던 아이는 곧 친구들과 어우러지고, 뛰어난 축구 실력을 발휘해 인기쟁이가 된다. 싸움까지 잘하는 데다, 동네 남자아이들과는 뭔가 다른 미카엘에 홀딱 반한 리사는 미카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미카엘에게는 아이들에게 말 못한 커다란 비밀이 하나 있다. 잘생기고 축구 잘하는 소년인 줄로만 알았더니, 사실 미카엘이 아니라 로레라는 이름의 여자아이인 것이다.

영화 '톰보이' 스틸. 사진 영화사진진
영화 '톰보이' 스틸. 사진 영화사진진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상 수상을 비롯해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영화 ‘톰보이’가 세상에 공개된 지 9년 만에야 국내 극장가에 선보이게 됐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전 세계적인 팬층을 형성한 셀린 시아마 감독이 세상에 두 번째로 선보였던 작품이다. 영화는 한 아이의 지난한 성장통을 그린다. 여성의 몸이라는 현실과 남성의 정체성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순수함 이면에 불안감으로 가득 찬 유년 시절의 모호성을 그려냈다.

영화는 자신의 성별을 속일 만큼 소년이 되고 싶었던 미카엘/로레의 일상에 여러 차례 찾아오는 위기를 그리며 성장통을 극대화한다. 아직 2차 성징이 이뤄지지 않아 다른 아이들처럼 웃통을 까고 놀 수는 있지만, 소변 한번 보려면 풀숲 깊숙이 몰래 숨어들어가야 하는 신체적 구속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리사가 학교 전학생 명단에 미카엘이라는 이름이 없다며 다그치는 바람에 난처해지는 순간이 발생하기도 하다. 다행히 아직 아이들은 둔하고,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 덕에 위기들은 번번이 사그라들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도 만족할 수도 없는 어린 날의 처량한 단상이다.

영화 '톰보이' 스틸. 사진 영화사진진
영화 '톰보이' 스틸. 사진 영화사진진

자신의 거짓말로 말미암아 언제나 불안감에 휩싸여 엄지손가락을 쭉쭉 빠는 미카엘/로레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허나 ‘내가 원하는 나’가 되고 싶은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비단 아이들의 것만은 아니기에 쓰라린 감상을 자아낸다.

그동안 성 정체성과 젠더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수없이 많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톰보이’는 뭔가 다르게 반짝거린다. 다소 무겁고 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흘러가는 일상처럼 고요하며, 매 상황을 현실적이고 아이답게 그려낸 점이 가장 도드라진다.

자극적인 연출 없이도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사회의 시선을 가슴 아프게 담아낸 기량이 엿보이기도 한다. 미카엘/로레의 행각을 알게 된 엄마의 반응은 성별을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보는 사회의 냉정하고 폭력적인 시선을 대변한다. 로레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낄낄거리며 몰아세우는 아이들 역시 이에 속한다.

영화 '톰보이' 스틸. 사진 영화사진진
영화 '톰보이' 스틸. 사진 영화사진진

이와 반대로 언니를 로레가 원하는 대로 미카엘로 타자화해 받아들여주는 여동생 잔과, 미카엘이 아닌 로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리사와 같은 인물들은 수용과 이해의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누구나 여자도, 남자도 아닌 다채로운 가능성을 지닌 온전한 개인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다.

미카엘/로레 역을 맡은 어린 배우 조 허란의 불안에 가득 찬 얼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톰보이 캐릭터 그 자체인 그는 복잡다단한 성장통 가운데서 홀로 속앓이 하는 아이의 면면까지 탁월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냈다. 귀여운 여동생 잔 역의 말론 레바나는 미카엘/로레의 외로운 성장통에 희망과 위로가 되는 존재로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개봉: 5월 14일/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출연: 조 허란, 말론 레바나, 진 디슨/감독: 셀린 시아마/수입: ㈜블루라벨픽쳐스/제공: ㈜헤이데름컴퍼니/배급: ㈜영화특별시SMC/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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