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농인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싶었다”

2020-05-20 17:50 위성주 기자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코로나 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만연한 요즘, 잠시나마 관객들의 마음에 따스한 위안을 건네줄 영화가 개봉 소식을 알렸다. 영화 ‘나는보리’는 가족과 같아지고 싶은 열한 살 소녀의 귀여운 이야기를 통해 각박한 삶에 지쳐가는 관객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서울 맥스무비 본사에서 ‘나는보리’를 연출한 김진유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사진
영화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사진

영화 ‘나는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열한 살 보리(김아송)가 가족들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에, 특별한 소원을 빌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김진유 감독은 자칫 민감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장애’라는 소재를 보리네 가족의 자상한 미소에 부드럽게 녹여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농인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나 자신이 살았던 모습만을 보여줘도, 대중이 농인을 보다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이러한 삶이 있고, 별반 다르지 않게 생활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특별히 대단한 사건을 넣지 않으려 했다.”

영화 '나는보리'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 '나는보리'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는 코다(CODA, 농인 부모를 둔 자녀)로 성장한 김진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극 중 잠시 소리를 잃은 척했던 보리가 겪어야 했던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어린 시절 김진유 감독이 직접 겪었던 일들이다.

“극 중 보리가 단오제에서 길을 잃었던 것과 옷 가게에서 무시당하고 차별받았던 것, 어른을 대신해 은행 일을 보는 것 등 영화 속 보리가 겪었던 일들은 대부분 나 자신의 이야기다. 물론 특별히 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코다라면 대부분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코다, 농인 가족분들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그려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농인 가족 사이에서 자라고, 이웃에도 농인이 있었다던 김진유 감독은 농인을 특별한 대상이 아닌 평범한 주변 이웃으로 바라봐 주길 희망했다. 그는 “부모님은 물론 외숙모와 외삼촌, 동네 이웃 등 주변에 농인이 많았다”며 “그렇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봐서, 농인을 다른 무엇인가로 인식하기보다 그저 동네 이웃으로 바라봤다. 다른 분들도 그저 일상적인 모습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나는보리'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 '나는보리'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영화 중반, 보리의 아빠(곽진석)는 보리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사실 아기 때 네가 안 들리게 태어난 줄 알고 기뻤어”라고 말하는 아빠의 고백은 농인과 큰 접점이 없던 관객이 보기에 다분히 낯설고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김진유 감독은 “그 고백은 실제 농인 부모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라고 말하며 일반인들은 몰랐던 농인 가족의 심경을 상세히 설명했다.

“대부분 농인 부모들이 아이를 낳을 때, 자식도 농인이길 희망한다. 부모와 자식이 같은 언어로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농인으로 태어나, 소리가 없는 것이 당연한 분들에겐, 농인 자녀를 맞이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소리를 잃고 싶었고, 농인 수어통역사 현영옥씨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었다고 하더라. 그랬던 내 과거와 현영옥씨의 말에 모티브를 얻어 ‘나는보리’를 썼다.”

영화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사진
영화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사진

‘나는보리’를 통해 장편 영화에 데뷔한 김진유 감독은 신인 감독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는 완숙한 연출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수상을 비롯해 제24회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과 켐니츠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박수세례를 이끌어냈다. 그는 “다시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상을 받게 됐다”며 “감독 선배들이 주는 상이라 한번은 더 도전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진유 감독은 차기작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20대 여성 농인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와 바다를 두고 서핑을 즐기는 남자와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해녀의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나는보리’를 통해 장애를 소재로 했던 지난 영화들과 달리 특별한 시선을 보여줬던 김진유 감독인 만큼, 다음 작품으로 선보일 사랑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호기심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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