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 ‘프랑스여자’ 김희정 감독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영화”

2020-06-07 08:00 이유나 기자

[맥스무비= 이유나 기자] “영화는 시네마다. 영화만의 표현이 뭘까 항상 고민한다. TV로는 대체할 수 없는 영화적인 걸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여자’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만든 작품이다.”

김희정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김희정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김희정 감독의 바람대로 그의 네 번째 작품 ‘프랑스여자’는 다분히 영화적이면서,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움으로 중무장한 진면모를 드러냈다. 서사는 흥미롭고, 강렬한 미장센이 스크린을 장악한다. 프랑스에서 20년을 살아온 한국 출신의 여자가 한국에 돌아가 마주하는 현실과 환상의 교차는 감각적으로 연출됐다.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희정 감독은 영화의 앞뒤를 헤아리거나 의미를 찾는 과정은 권하지 않았다. 그저 꿈을 꾸듯 보라는 것이다.

“꿈에서 항상 주인공은 나 자신이고, 주변은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온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 ‘프랑스여자’는 그런 꿈같은 영화다. 주인공인 중년 여성이 자기가 가장 돌아가고 싶어 하는 순간을 찾아간다. 꿈을 위해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기 직전인, 꿈이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던 시간이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에게도 스스로에게 그런 시간은 언제였는지, 내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언제인 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미라처럼 그리운 과거를 갖고 계신 여성 관객분들이 보면 좋을 영화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 미라는 40대 중반의 중년 여성이다. 흔히 영화라는 매체에서 주인공으로 잘 내세우지 않는 성별인 동시에 잘 다뤄지지 않는 세대기도 하다. 그렇기에 감독은 40대 중년 여성인 미라가 영화에 대한 흥미를 보다 돋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저도 곧 쉰이다. 예전에는 정말 많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아직 수명이 50년 더 남았을 수도 있는 젊은 나이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를 소비하는 세대 폭이 넓다. 중장년층에게는 2030 세대가 느낄 수 있는 고민보다 더욱 중층적이고, 인생을 살아봐서 느낄 수 있는 고민들이 있다. 경험치가 있으니 더 재미있게 과거를 회상하고, 삶의 의미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세대다. 그 정도 연륜이 있는 분들은 이 영화를 잘 이해하고 즐기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다양한 장소와 시간, 현실과 환상 등을 오가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흐름을 이어나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공간 중에서도 술집은 가장 주요한 장소다. 과거와 오늘날을 연결해 주는 교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술집은 미라에게 과거의 장면들이 떠오르게 해주는 곳이다. 20대, 30대 때도 술을 마셨는데, 지금 돌아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가움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옛날에 와봤는데 그동안 하나도 안 변했네?’라는 감상을 안겨주는 장소가 꼭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것들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다 보니 주로 그 공간에서 오늘날과 과거가 유독 많이 교차된다.”

술집에서 재회한 미라와 영은, 성우가 신나게 회포를 푸는 장면은 재치있는 대사의 힘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영화는 미라의 내면을 깊숙이 잠입하며 음울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젖어든다. 영화가 자아내는 독보적인 분위기의 비결은 바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감독은 강조했다.

“분위기는 학습되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거다. 기술이 부족해도 괜찮다. 기술은 공부할 수 있어도, 분위기는 공부할 수 없는 거니까. 만약 배우들이 어리고 경험 없었으면 잘 안 나왔을 분위기인데, 우리 배우들은 어느 정도 연륜이 있었고 촬영할 때도 열심히 하니 영화의 분위기가 더 잘 우러나온 것 같다.”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중심에는 주인공 미라 역을 맡은 김호정이 있었다. 연극,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 저변을 넓혀온 베테랑이 극을 이끄니, 가히 리딩롤의 중요성을 체감케 한다. 특히 김호정이 그 많은 불어 대사를 외우는 장면들에서 감탄이 잇따르게 된다.

“김호정의 연기력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영화를 끌어나가야 하는 역할이라 영화에 대한 확신과 풍부한 해석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김호정은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명확했다. 호정 씨가 했기에 무게감 있는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다. 물론 호정 씨가 불어 연습을 할 때는 정말  힘들어했다. 불어를 왜 이렇게 많이 넣었냐고, 내가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나중에 프랑스 지인에게 호정 씨의 프랑스어 장면이 담긴 편집본을 보여줬는데, 정말 놀라워하더라. 어떻게 모르는 언어로 감정연기를 이렇게 잘할 수 있냐면서 감탄했다.”

김호정은 2017년 겨울 출연을 결정지었고, 촬영은 이듬해인 2018년에 했다. 예술영화는 개봉하기까지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린다. 2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개봉을 하게 됐는데, 마침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하며 극장가에 여파를 끼치고 있었다.

감독은 이러한 상황에 아이러니를 느낀다며 ‘재난시대의 감수성’을 언급했다. 영화에서 재난은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광화문의 세월호 텐트를 찾아가는 미라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을 비롯해 삶에 대해 고민할 지점을 안겨주는 장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예술영화는 특히 개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흘러 영화가 개봉하게 됐는데, 마침 이 영화가 코로나 시대에 참 어울리더라. 언론시사회에서도 말했지만 요즘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재난시대의 감수성에 대해 교육하고는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재난을 당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누가 그런 가습기를 쓰고 싶었겠나.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산 거란 말이다. 수학여행을 가던 중 아이들이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으며, 버스 타고 가다가 다리가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나. 요즘은 코로나 시대와 마주하면서, 우리가 지금과 같은 재난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김희정 감독은 인터뷰 초반에도 언급했던 당부를 말미에 재강조했다. 텍스트에 의미를 두지 말고, 영화를 그저 보고 느끼라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저 자신의 생각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무릇 영화를 보는 자세는 그게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니냐면서.

“영화의 의미는 각자 찾으면 좋을 것 같다. GV에서 얘기한 적 있듯 꿈은 그저 사소한 한 장면이 생각나는 것일 수도 있고, 논리적이지 않게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것들일 수도 있다. 누군가 영화를 보고 서글프다고 했는데, 정말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슬픔, 기쁨을 안겨주는 것만큼 좋은 영화가 있을까. 이처럼 영화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주시면 좋겠다.”

이유나 기자 / ly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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