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② | 김희정 감독이 지나온 청춘의 집대성 ‘프랑스여자’

2020-06-07 08:00 이유나 기자

[맥스무비= 이유나 기자] 영화 ‘프랑스여자’에는 ‘한잔할 청춘아’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술집이 등장한다. 주인공 미라(김호정)와 은영(김지영), 성우(김영민)가 오랜만에 재회해 회포를 풀고, 추억에 잠기는 장소다. 흥미롭게도 ‘한잔할 청춘아’는 실존했던 장소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김희정 감독이 아주 예전에 실제로 자주 드나들었던 친목의 장이었다. 가난한 연극쟁이들이 모이던 추억의 장소를 영화에 재현했다. 감독에게는 새로운 감회를 안겨주는 순간이었다.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안내상이 운영하던 술집을 영화에 옮겼다. 아주 예전에 공연예술아카데미를 같이 다녔다. 워낙 친해서 늘 내상 형이라고 불렀다. ‘한잔할 청춘아’는 곧 안내상이었다. 그래서 영화에 ‘한찬할 청춘아’의 사장 역으로 출연하기로 했는데, 스케줄이 너무 바빠 결국 자우림의 이선규가 역할을 대신했다. 안내상의 절친 우현도, 안내상이 최근 출연한 ‘저 산 너머’의 최종태 감독도 전부 술집을 했었다. 그 술집들에 나는 술 마시러 다녔다. 가난한 연극인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곳이다. 술도 공짜로 먹고.”

감독은 자신의 어릴 적 추억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향 일부를 영화 속 캐릭터에 녹이기도 했다. 김지영이 연기한 은영은 단연 감독의 특징이 다분하게 묻어나는 인물이다. 친화력 좋고 의리 있으면서 화통한 성격 그대로다.

“그중에서도 가장 닮은 건 낙천적인 성격이다. 영은이가 미라한테 욕먹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라는 영은에게 예술가가 그렇게 고민 없이 낙천적이기만 하면 예술을 할 수 있겠냐고 꾸짖는다. 그런데, 기질은 타고나는 거니 어쩔 수 없다. 나 자체도 기질에 반하는 걸 안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이렇게 예민하거나 여성적인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인간은 참 복합적이다. 한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적으로 표출되는 성격 외에도 여러 가지를 볼 수 있게 되지 않나.”

김희정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김희정 감독.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연극배우가 되고 싶어 프랑스로 떠난 미라처럼, 김희정 감독 역시 연극에 대해 심층적으로 공부하고자 폴란드로 훌쩍 떠나갔다. 사정상 연극학교가 아닌 영화학교로 갔지만 감독은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음을 확신했다.

“영화가 제게 가장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땐 배우를 하려고 했었다. 연극 연출을 해보기도 했고, 희곡도 써봤다. 많은 분야를 돌고 돌았던 이유는 내게 가장 잘 맞는 걸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지금 조선대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항상 너희들이 뭐가 될지는 알 수 없는 거라고 말해주고는 한다. 다른 길들이 또 있을 수 있으니, 절망하지 말고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다. 폴란드에서 공부하며 가장 좋았던 건 스태프들의 문화였다. 그곳은 나이 많은 전문적인 스태프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감독이 되려 하지 않나. 감독이야말로 주인공 포지션이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폴란드 영화계에서는 굳이 감독이 아니어도 각자의 역할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해있다. 단지 역할이 다를 뿐이고, 서포트하는 게 자신에게 잘 맞을 수 있다는 걸 아는 문화인 게 좋았다.”

워낙 친화력이 좋았던 덕에 폴란드 유학생활 중에도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지금도 폴란드에 가면 공항에 서로 나오겠다는 친구들이 여러 명일 정도다. 타국에서 만든 인연들은 길게 이어졌고, 영화를 만들고 있는 지금에도 연이 닿아 협력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여자’의 영화음악은 폴란드에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 마줴나 마이헤르가 맡았다. 영화학교를 다닐 적 졸업작품을 함께 했던 친구다. 파리에서 한창 ‘프랑스여자’ 촬영을 진행하고 있을 무렵 유명한 촬영감독인 자신의 남편과 함께 찾아오기도 했다. 파리에서 열심히 회의를 했고, 아름다운 음악이 그 결과물로 탄생했다. 덧붙이자면 영화음악은 바르샤바의 콰르텟 스튜디오에서 실제 악기들로 녹음해 완성됐다.”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글로벌한 인맥으로 성사된 프로젝트에 걸맞게 샌디에이고 아시안 영화제, 폴란드 시네르기아 영화제 등 국제 영화제에서도 ‘프랑스여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음악영화를 담당한 마줴나의 경우 시네르기아 영화제에서 큐엔에이를 진행했고, 영화에 미라의 남편 쥘 역으로 출연한 프랑스 배우 알렉산드르 구안세 역시 이에 동참했다. 감독은 알렉산드르 구안세와의 독특한 인연을 전하며 영화를 향한 그의 열정을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르는 코미디 프랑세즈라는 유명 극단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연기활동을 하고 있던 친구다. 2010년도에 ‘청포도 사탕’이 칸영화제 레지던스 10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선정돼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었다. 영화 시나리오를 불어로 번역해 남녀 배우들이 읽는 시간이 있었고, 그 중 남주인공 역할을 알렉산드르가 연기했었다. 칸영화제 측을 통해 알렉산드르의 연락처를 얻어 ‘프랑스여자’의 쥘 역할을 제안했더니, 정말 하고 싶어 하더라. 시네르기아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후에는 제게 메신저로 장문의 감상평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우리 영화 홍보 게시글을 올리며 애정을 보이고 있다.”

‘청포도 사탕’ 시나리오를 집필하던 당시에는 프랑스에 머물렀다. 파리에서 반년, 노르망디에 있는 물랑 예술가의 집에서 4개월을 지냈고 두 도시를 오가며 너무나도 상반되는 두 개의 삶을 체험했다.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파리는 외국인이 많아 덜 폐쇄적인데다 코스모폴리탄적이었다. 반면 노르망디는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불어를 못하는 내게도 불어를 고집하는 등 배려가 전혀 없었다. 모두들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숟가락 하나만으로도 한 시간 동안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밥 먹기 전에 전채를 두 시간은 갖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지내며 노르망디 사람들의 그런 면들을 많이 관찰했었다. 당시에는 불어만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이번에 ‘프랑스여자’를 촬영하러 노르망디에 다시 온 것만큼은 참 의미 있었다. 무형적이던 게 실체적으로 이뤄진 느낌이랄까. 감개무량하더라.”

김희정 감독은 국제 프로젝트도 꾸준히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여파가 극심하지만, 영원히 못 만들지는 않을 테니 지금은 차기작에 대한 고민을 거듭할 때다.

“머릿속에 많은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다.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한이야기를 펼칠 수도 있을 테고, 코로나로 인해 생겨나는 이야기도 있을 테고, 지금까지는 오리지널 각본을 고집했지만 좋은 단편소설을 각색해보고 싶기도 하다. 현재는 10대 아이를 다룬 ‘미래는 빛나는 별이다’라는 작품을 계획 중이다. 기성세대와 다른 10대가 ‘나는 용감하게 잘 살 거야!’라며 씩씩하게 나아가는 느낌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이유나 기자 / lyn@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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