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소리도 없이’ 유재명 “이야깃거리 많은,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작품이길”

2020-10-13 13:08 위성주 기자
    “친근하고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캐릭터”
    “모호한 경계를 통해 표현하고 싶던 인간의 본성”

[맥스무비= 위성주 기자] 유재명, 유아인 주연 영화 ‘소리도 없이’가 베일을 벗었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유영하는 이야기를 통해 친근하면서도 섬뜩한 감상을 남기는 작품으로, 유재명의 생활감 넘치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소리도 없이’의 주연을 맡은 배우 유재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재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재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는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아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재명은 극 중 말은 많지만, 다리가 불편한 범죄 조직의 신실한 청소부 창복을 연기했다. 

선과 악이 모호한 작품의 결을 따라 유재명이 연기한 창복은 어중간한 경계선에 서 있는 인물이다. 창복은 생존을 위해 시체처리를 생업으로 삼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신실하게 생활하는 인물이다. 그는 시체를 태연하게 유기하면서도, 지나가던 길에 만나는 할머니를 향해 꾸준히 호의를 베푼다. 

그렇다면 창복은 특별한 인물인가. 시체를 유기하는 끔찍한 일을 업으로 삼고 태연하게 유괴된 아이를 담보로 돈을 받아내려 하는 창복이지만, 유재명은 오히려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삶의 경계에 서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바라본 창복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재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재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전 미팅을 할 때 캐릭터에 대한 다양한 디테일을 이야기 했지만, 결국 중요했던 것은 현재를 충실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중점으로 그리자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그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시체를 처리하며 죄책감을 갖고 기도도 하고, 신앙심으로 빌기도 한다. 규정지을 수 없는, 개인으로 봤을 때는 그저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다.” 

나름대로 이유와 변명을 통해 합리화를 하지만, 결국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라는 창복. 악행을 저지르지만, 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 한다는 점에서 유재명의 전작 ‘나를 찾아줘’의 홍경장 캐릭터와 일면 유사한 바가 있었다. 

“자신만의 신념과 이유, 목적과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란 점에서 두 캐릭터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다만 작품 자체가 갖는 에너지와 결이 달랐다. 홍경장보단 친근하고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캐릭터였다.” 

영화 '소리도 없이' 촬영 현장.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촬영 현장.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물이었던 만큼, 창복을 연기함에 있어 자연스러운 생활감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동네 시장을 찾으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정겨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이가 섬뜩한 행동을 생업이라는 변명을 무기로 자행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극명한 대비와 아이러니가 자아내는 기묘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 

“자동응답기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르면 바로 나오는 추임새와 눈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힘을 주거나 에너지를 과하게 표현하려 했던 것은 빼고 담백하게 연기했다. 어둡고 무거운 소재와 배경인지라, 창복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한 것 같다.  

창복은 범죄를 저지르지만 합리화를 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범죄에는 크고 작음이 없는데, 우리는 소소하게 무단횡단을 하기도 하고,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기도 하지 않은가. 창복을 통해 순간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속성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재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소리도 없이' 배우 유재명.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얼핏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현학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로 능숙하게 표현해낸 유재명. 충무로를 대표하는 베테랑 배우인 그는, 상대역에게 대사가 전혀 없었음에도 단번에 분위기를 휘어잡아 영화를 이끌어갔다.  

“작업자 입장에서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상대로 나온 태인(유아인)이 말이 없는 인물이라 전체적인 완급을 혼자 조율해야 했다. 말을 하면서도 서로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태인의 느낌을 나 스스로 판단해야 한 것도 있다. 허나 달리 보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어떤 과정이기도 했다. 대사량이 많긴 했지만, 창복의 말이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생활형인 대사들이라 아무 말을 해도 감독이 좋아했다.” 

풍부한 미장센과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 위에 유재명의 능수능란한 연기가 더해져 남다른 인상을 남긴 ‘소리도 없이’. 지난해 촬영을 진행했다는 이 작품은 어느새 관객과 인사를 나눌 채비를 마쳤다. 유재명은 ‘소리도 없이’의 개봉을 앞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매 작품마다 떨린다”며 “영화관을 찾아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소리도 없이’를 통해서 또 하나를 배우고, 조금이나마 성숙한 것 같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 한 번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상기하셨으면 하고, 지인들과 술 한잔 나누면서 작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운이 많은 영화이길 바란다.”

위성주 기자 / whi9319@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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